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아 Aug 23. 2022

무궁화

무궁화를 보다가

무궁화 꽃을 보다가


이정아


오래전 한인타운 피오피코 도서관에 무궁화를 심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에 면 장갑 열 켤레를 챙겨 나갔다. 두 언론사에선 사진기자가, TV 방송에서도 카메라 기자가 나왔다. 나무 심을 사람들은 다 모였는데 정작 와야 할 무궁화가 안 온다. 무궁화 협회 회장님이 집에서 재배하는 것이기에 그분이 나무와 함께 오셔야 한다. 개인적인 약속도 아니고 미리는 못 올 망정. 30분 전에 와서 기다리던 나와 도서관장님은 열불이 났다.


한참을 지난 후 무궁화 컨셉(흰색 한복에 자주 옷고름) 을 떨쳐 입고 올린 머리에 신부화장을 한 무궁화협회 회장님이 나타났다. 미스코리아처럼 띠를 사선으로 두르고 나막신 같은 높은 신발을 신고. 아마 치장을 하느라 늦은 듯싶다. 한복에 썬 글라스라니 목 빠지게 기다리던 이들은 일제히 그쪽을 주시하다가 급기야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늦게 나타나 사과는커녕 얼굴 화장 매만지기 바쁘다.


내 남편이 그랬으면 쌩 화를 내고 집에 가버렸을텐데, 그날은 도서관 후원회의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으니 꾹꾹 참았다. 그리고 무궁화 회장님이 연세 많으신 분이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무궁화를 심는 뜻 보단 언론에 자기 얼굴이 나가는 것에 더 비중을 두는 분위기여서 씁쓸한 한편 팔순 노인이 그러시니 귀엽기도 했다.


도서관장님은 내 표정을 보시더니 참으라고 눈을 찡긋하시며 싸인을 보내신다. 나는 못마땅하면 얼굴에 금방 나타난다. 끝난 후 무궁화협회 회원들과 뒷전에서 애쓴 도서관 후원회원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였다. 무사히 행사는 끝났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대강 이렇다.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다고들 한다. 그건 한눈에 썩 들어오는 특징이 없으면 고심 끝에 내놓는 말이란 걸 안다. 예쁘다거나 키가 늘씬하다거나 하는 표현을 하기 힘든 경우 사람 좋아 보인다던가 목소리가 좋다든가 하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 것이다.


흐드러진 무궁화를 보니 우리나라 꽃에 대한 감상이나 꽃말 보다 열받았던 그날이 생각났다. 나는  성숙하고 철이 없다. 여러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따뜻하지도 않고, 누님 같지도 않다. 무궁화에게 미안하다.


작가의 이전글 통행 우선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