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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an 20. 2023

덤으로 얻은 삶을

기념한 여행

덤을 기념한 여행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3.01.19 20:37 수정 2023.01.19 21:37


이정아/수필가


2013년 1월에 남편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받았다. 남편의 콩팥을 바로 옆 수술실에서 전달받아 목숨을 건진 일이 이젠 추억이 되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벌써 10년, 당시의 심정으론 일 년만 더 살아도 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덤으로 산 세월이 10년 이라니 기적 같다. 그걸 기념하여 남편이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을 다녀왔다.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선 투석을 받지 않게 되어 삶이 무척 간단해졌지만, 기운도 없고 면역력도 없는 상태로 하루 한 움큼씩 약을 먹는 평생 환자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감사한 일이다. 이승과 저승이 어찌 비교 가능한 곳이겠나 말이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매일매일 사는 것이 조금씩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긴 해도 죽음을 예상하거나 기대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나도 이런 큰 수술이 없었다면 막연하게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았을 것이다. 게으른 내게 정신 번쩍 들게 한 사건이었고, 남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멀리 사는 동창들과 혈족들의 성원과 보살핌, 마치 우렁각시 같았던 도움의 손길들과 중보 기도의 힘을 생각하면 내 의지로 내 힘으로 사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긴 여행은 부담스러운데 신장을 떼어주고도 평생 옆에서 간병인 노릇을 하는 남편의 도움으로 무사히 다녀왔다. 파나마 운하를 보는 15박 16일의 중남미 크루즈였다. 기항지에서 외출하여 무얼 볼까를 결정할 때 내 체력에 맞는 게 많지 않아 고민해야 했다. 대신 책도 읽고 배에서 빌린 스쿠터를 타고  크루즈마을 속속들이 관광을 했다.


스페인 왕실이 후원한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 미국과 중앙아메리카 대륙의 일부를 발견하였다. 15세기 무역 중심으로 부상한 콜롬비아는 나라가 부강해지자 외세의 침입을 받게 되고 곳곳에 요새를 세우고 나라를 지킨 흔적이 남아있다.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한 나비효과가 결국 100년 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고 하니 흥미롭다.


수주일이 걸리던 뱃길이  파나마운하가 만들어지면서 반나절로 단축되었다고 한다. 크루즈배 한 척이 꽉 끼일 정도의 좁은 운하를 빠져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3단계로 수위를 조절한다는데, 그런 신기술의 공사가 1903년에 시작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하와이로 향하는 구한말 최초 이민선 갤릭호가 1903년에 떠나지 않았던가?


안티구와는 과테말라의 옛수도이다. 아직도 활화산이 있는 곳인데 지진이 잦아 수도를 지금의 과테말라시로 이전하였다. 화산재 틈에서 자란 커피콩이 유명해서 과테말라산 안티구와 커피는 맛이 좋아 전세계로 수출된다고 한다. 아즈텍 문양의 수공예품을 싸게 팔고 있는 순박한 도시였다.


바하 캘리포니아 Baja California 주는 멕시코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반도이다. 반도 남단에 Cabo San Lucas 가 위치해 있다. 이번에 지나온 멕시코의 휴양 도시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지금도 리조트 공사가 여러곳에서 진행중이다. 관광에 좋은 입지 조건이어서 다채로운 관광 옵션이 있다. 말타기, 낙타타기, 둔버기, 요트, 윈드서핑, 짚라인, 고래구경, 스노클링 등등.


온갖 크루즈선이 모이는 곳이지만 정작 항구는 수면이 낮아 큰 배는 접안하지 못하고 육지에서 먼 바다에 떠있어야 한다. 대신 크루즈선의 구명정에 나누어 타고 육지에 나가 관광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전에 유럽크루즈에서 프랑스 니스의 항구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독서는 앉아서의 여행이고, 여행은 길에서 하는 독서이니 독서는 지식이고 여행은 사색이다. 독서로 혜안을 얻고 여행에서 개안한다." 이런 흐뭇한 글귀가 있다. 앉아서 하는 여행인 독서만 하다가 서서하는 독서인 여행을 했으니 삶이 무척 풍성해진 기분. 곳간에 쌀 들인 듯 넉넉한 마음이다.





*2023 여행문화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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