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망 하다
[이 아침에]
땅 위의 위로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3.11.29 17:40 수정 2023.11.29 18:40
이정아/수필가
추수감사절 연휴를 지낸다고 3박 4일 빌린 맘모스 빌리지의 콘도에서 하룻밤만 자고 내려왔다. 호흡곤란이 와서 한숨도 못 잤다. 고산병이었다. 몇 년 전 수술직후 약한 몸으로 갔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 또 숨쉬기가 어려웠다. 하루정도 지나면 적응된다는데 고통의 밤을 다시 견디기 어려워서 남편을 졸라 하산했다.
마침 둘째 날 아침 스노보드를 타던 남편도 과하게 욕심을 내다가 타박상을 입어 갈비뼈에 통증이 왔다. 의좋게 내려올 수 있어 덜 미안했다. 아들내외와 후배내외의 근심을 뒤로한 채 내려왔다. 평소 잘 맞지 않는 우리 부부인데 나는 고산병으로 호흡이 어렵고 남편은 갈비뼈 통증으로 호흡이 어렵다니 하이 파이브를 해도 좋을 만큼 반가워서 웃었다. 살다가 이렇게 맞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아들아이가 8살부터 맘모스 스키장에 드나들었으니 햇수로는 30년이다. 남편과 아들은 해마다 Year Pass를 사서 자주 드나들고, 아들아이는 방학땐 알바를 맘모스 스키장에서 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연습하러 오던 올림픽 영웅 클로이 킴의 어린 시절도 옆에서 봤다. 평창 올림픽땐 클로이 킴을 응원하러 전지적 팬의 시점으로 한국도 다녀왔다.
이런 즐거운 추억도 있으나 , 어느 해인가는 남편이 조종하는 세스나를 타고 스키장인근 mammoth Lake 비행장에 내렸다. 갈 때는 무사했는데 돌아올 땐 강풍으로 프로펠러가 활주로 가장자리에 있던 sign box를 치는 사고가 났다. 보험처리가 되어 비행기는 수리되었고 다친 사람도 없는 사고였지만 그 안에 타고 있던 내게는 큰 일 날뻔한 비행사고 아닌가? 그 뒤로는 맘모스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별로 가고 싶지가 않은 장소가 되었다.
아마 이번에 호흡이 어려운 것도 몸의 컨디션에 정신적인 것도 합쳐진 것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휴가를 망치고 돌아와 주일이 되어 교회를 가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계속 머리가 아파 남편만 혼자 가게 되었다.
종일 약 먹고 누워있는데 교회에 다녀온 남편이 돈을 건넨다. 좋아서 벌떡 일어났는데 잔돈 조금이다. ”애걔 이게 뭐야?” 큰돈이 아니라 살짝 실망했더니 사연인즉, 교회의 J권사님이 당신이 아파 교회에 못 왔다고 하니 맛있는 것 사 먹고 얼른 나으라고 주시더란다.
순간 마음이 바뀌어 뭉클해졌다. 85세 노인 권사님이 마치 돌아가신 우리 엄마 같아서. 30불에 아픈 머리가 씻은 듯 나았으니 역시 나는 물욕에 어두운 세상적인 사람 맞다. 산에서 얻은 병이 땅에서 돈으로 위로받았다. 나는 언제나 철이 들고 점잖은 노인이 되려나.
어느새 배달맛집 리스트를 뒤적이는 나.
*남편은 왼쪽 갈비뼈 7,8,9번이 금이 가는 사고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