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아 Jun 06. 2024

강림하다

지름신



[이 아침에] 강림하다. 지름신

[Los Angeles] 미주중앙일보

입력 2024.06.05 17:48


플러그 네 개를 끼울 수 있는 콘센트(power outlet)를 샀다.  보통 전기에 관한 물품은 남편이 사지만 리모트 컨트롤의 배터리 같은 것은 동네 편의점에서 내가 살 때도 있다.


내 방 화장실에서 전동칫솔, 워터피크, 헤어드라이어를 쓰려는데 이걸 빼고 저걸 끼우고 하려니 귀찮아서 네 구멍 짜리 콘센트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새 걸 턱 하니 끼우고 보란 듯이 불렀더니 “오호라~ 제법인데, 나 없어도 살겠네 “ 하며 과한 칭찬을 한다. 그런 소소한 건 앞으로 스스로 해결하라는 싸인인 듯싶었다. 한껏 고무되어서 시키지도 않은 정원가위, 과일나무 지지대, 모종 보호 커버, 과일 열매용 봉지, 블루베리 나무용 전체 그물망, 호미, 갈퀴등을 샀다. 우리 집 뒤뜰 미니 과수원용으로 산 것이다.


남편은 홈디포보단 저렴한데 품질은 별로이고 거기다 내가 산 것들은 필수용품이 아니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라며 웃는다.


그러나 내게 한번 강림하신 지름신은 나가질 않으신다. 매일을 온라인 주문으로 시작하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남편용으로 산 양말은 소녀용인지 작고 얇았다. 내가 억지로 발을 꿰어 신는 중이다. 무선 달걀 거품기는 개시하자 30초 만에 고장이 나서 반품했다. 코바늘 세트와 양면테이프는 그런대로 쓸만하다. 핑크색 도시락은 예뻐서 샀는데 아무도 도시락을 싸가지 않는다. 이를 어쩌나?


페북의 어떤 분이 손녀 백일떡을 근사하게 만드셨다기에 해보고 싶은 마음에 당장 주문을 넣어 약과틀과 떡 몰딩을 샀다. 떡에 장식하려면 짤 주머니도 필요하기에 함께 샀다. 그런데 아들내외는 아이 소식은 없다. 임신도 안 한 며늘아기 보기 민망하게 너무 일찍 샀나?


캘리그래피 교실에 나가면서는 먹물, 붓펜, 핑킹가위, 색종이등등을 샀다. 늘어놓은 학용품을 보더니 “니 점방 차리나?” 결국 한소리 들었다.


보통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본격 시작되는 샤핑이었는데, 요즘 싸구려 중국제품 온라인 상점 ’ 테무‘때문에 아무 때나 나타나는 지름신의 강림을 경계해야 한다.


테무(Temu)는 '여럿이 함께, 가격은 낮게(Team Up, Price Down)'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15불만 넘으면 공짜로 배달해 주므로 처음엔 속는 셈 치고 시작한 쇼핑이, 탈 없이 배달되자 믿음이 생겼다. 이젠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하며 사서 쟁여놓게 되었다.


쓸데없는 것 다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살겠다던 결심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되어 버렸다. “나 없어도 살겠네”하는 남편에게 “테무만 있으면 돼” 이런 망발을 해버린 나. 그나마 다행인 건 지름신이 ‘테무‘로 오신다는 거다. ’ 로데오 드라이브‘가 아닌.


이정아/수필가




작가의 이전글 염불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