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엇인지
[이 아침에]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4.10.01 10:52
이정아/수필가
한국에 사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한국에 나갈 일이 없어졌다. 그러다 이번에 남편이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기에 얼른 따라나섰다. 가는 길에 대만과 일본 크루즈를 한 후에 한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한 달 가까이 집을 비우게 되었다. 뒷마당의 대추는 다 따서 나누었는데, 익어가는 단감을 두고 또 아보카도 수확철인데 따서 주변 사람들과 나눠야 하건만 여러 가지가 걱정스러웠다. 아들아이가 수시로 들르지만 과일까지는 신경을 못쓰기에 말이다. 연못의 금붕어밥 챙기고 우편함 체크 하는 정도뿐이다.
회사의 비서역할을 하는 John의 아내가 벌에 쏘여 입원을 해서 며칠째 결근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집 떠나려니 근심거리가 도처에 보였으나, 걱정은 접어놓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크루즈에서 놀기에 집중했다. 먼 걸음을 못 걷기에 배에서 스쿠터를 빌려 배 안과 밖을 쌩쌩 잘 누비고 다녔다. 장애인에게 유난히 친절한 크루즈 직원들과 대만의 관광버스기사의 서비스는 최고였다. 타이페이의 택시기사와 공항도우미들은 대부분 활발한 여성인 것이 눈에 띄었다. 언어 소통이 잘 안 되어도 눈치와 웃음으로 불편하지 않게 의사 전달이 되었다. 우리 내외보다 더 연로한 일본의 택시 기사들은 예의 바르고 깍듯했다.
두 나라를 보니 여성인력과 노인 인력을 잘 활용하는 게 보였다. 검소했고 깔끔했고 이타적이었다. 진심으로 약자를 도우려는 게 보인다. 장애인의 시선으로 더 잘 볼 수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선진국이라 불릴만했다.
배 안과 배 밖의 관광지를 두루 구경을 하고 크루즈도 거의 끝나가는 오늘 John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슬픈 소식이다. 벌에 쏘인 아내가 끝내 숨졌다고 전한다. 벌에 쏘인걸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충격이다. 평소 벌에 알레르기가 있었다고 한다. 벌에 쏘이자 쇼크로 기도가 붓기 시작하고 숨을 못 쉬게 되어 뇌사상태에 빠지고, 가족들과 의논 끝에 연명줄 제거에 동의했다는 이야기가 상세히 써 있다.
우리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일하고, 그 사이 결혼도 했으며 영주권도 받고 딸도 낳았다. 베지테리안인 그의 아내는 각종채소를 길러 내게 나눠주기도 하고 잘 지낸 사이인데 기가 막혔다. 누구는 희희낙락 놀고 있을 때 누구는 사투하고 누구는 아내와 이별하다니 너무 슬펐다. 도움이 못되어 미안했고 사정 모르고 논 것이 부끄러웠다.
오늘 시미즈항구 도착하여 후지산을 구경하고, 내일 요코하마항에 닿아 도쿄를 구경하면 크루즈가 끝난다. 남편과 나는 오늘 후지산을 보러 나가지 않고 그냥 배에 머물러있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예의일 것 같았다.
희비가 동거하는 삶. 이것이 인생인가? 속절없고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