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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n 15. 2017

"저울아 저울아"

어려운 다이어트


   
[이 아침에] "저울아 저울아"

이정아 / 수필가

[LA중앙일보] 06.14.17 19:39
    
식탁 옆의 저울에 하루에 세 번은 올라간다. 과체중의 내가 그리 몸무게에 신경을 쓰면 좋으련만, 정상 체중인 남편이 그러니 여간 눈꼴신 게 아니다. 한국에서 온 친구는 조심스레 물어본다.

"네 남편 어디 편찮으시니? 작년보다 많이 여위었어" 살이 빠지며 얼굴에 주름이 생겨 폭삭 늙어 보이기에 요즘 들어 자주 듣는 질문이다.

봉양 못해 굶긴 것 같다는 말처럼 들려 기분도 별로이고 늙었다는 소리도 재미없어 "쭈그렁 망태 할배라던데?" 하고 과장되게 말을 전해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 집엔 쌀이 없다. 쌀 자체를 사지 못하게 한다. 곳간이 빈 듯 허전하다.

한 주에 두세 번 함께 대할 뿐인 저녁 식탁인데, 남편은 반찬을 깨작깨작 먹고 토끼처럼 생야채를 뜯어먹는다. 밥은 내 햇반을 반찬처럼 조금 떼어먹는다. 같이 밥상을 대하는 나는 밥맛이 없어진다(실은 식욕이 내 평생 떨어져 본 적은 없다).

모처럼 남편이 좋아하는 굴전이나 정구지 부침을 해도 즐거워하기는커녕 "저울한테 물어보고~” 이런다. 정성 들여 식사 준비한 사람 김 빼는 선수다. 저울에 올라가 본 후 먹을까 말까를 정한다. 맛있는 거 보이면 덥석 먹어야 인간적이지 그게 뭔가.

티브이의 건강프로그램을 유심히 보는 남편은, 소식과 채식을 진작부터 실천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여 혈압도 체력도 정상이 되었다. 그 덕에 남편의 신장 하나를 기증받을 수 있었음은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 해도 계체량을 통과해야만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처럼, 저울 눈금 하나에 연연하는 사람과 사는 게 쉽지는 않다. 남편 쪽 가계가 다 그런지 시누이들도 몸매를 위해 펜싱을 배우네 탱고를 배우네 야단이고, 남편도 자전거에 마라톤에 수영에 몸을 혹사하고 있다. 대화도 '무얼 해야 날씬을 유지하나'가 주제다. 책 읽기나 글쓰기가 삶의 전부인 고상한(?) 나는 속으로 '머리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를 좌우명처럼 되뇌며 그들에게 측은지심을 갖는다.

나는 모든 걸 글로나 삶으로 오픈하며 살아서 비밀이 없지만, 내 몸무게만큼은 남편이 모른다. 돈을 걸어도 안 가르쳐준다. 병원에 함께 가도 몸무게 잴 때만큼은 혼자 있는다. 간호사도 미리 알아 비밀을 지켜준다.

어떤 이는 삼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서 자신의 미모에 취해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공주 놀이를 했다지만, 나는 욕실과 식탁 옆에 놓인 저울을 지뢰처럼 피해 다니느라 바쁘다. 미용을 위해서가 아닌 건강을 위해서라도 체중감량이 필요하다고 주치의가 누누이 말하지만 세상은 넓고 난 아직 먹고 싶은 게 많은데 어쩌나.

"저울아 저울아 말해 보렴, 먹고 싶은 거 참으면서 길게 사는 게 좋은지 짧게 살아도 먹는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게 행복한 건지"

08122020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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