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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날

노을의 기억

by 이정아

‘노을의 기억‘을 읽고


남편이 금요일 아침 스키장으로 떠났다. 스노우보드를 타러 가면서 “온전한 자유시간을 주노라!”하며 맘모스로 갔다. 내게 그리 말했지만 본인에게 쉼을 주겠단 선언 같았다.


바로 ‘노을의 기억‘을 읽을 시간이 온 거다. 작가의 말과 작가의 동생분 강진철 교수의 발문을 읽었다. 책 한 권을 벌써 완독 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편인 노을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엄청 공들인 소설이다. 비단천에 한 땀 한 땀 수놓은 동양자수 같은 소설. 디테일과 심리묘사 한마디로 ’ 죽인다 ‘. 비극을 쉽게 술술 쓸 수도 있구나. 새삼 생각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엔 빠짐없이 등장하는 4.3 사건.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다가 지쳐 던져두었는데, 그 아쉬운 마음이 ’ 노을의 기억‘으로 다 보상받은 느낌이다. 나머지 5편의 단편도 편하게 읽히는 Page Turner였다.


2001년에 Daum사이트에 다음 칼럼이라는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사이버 초짜인 내게 온갖 유익한 팁을 주시고 글 올리는 법을 찬찬히 알려주신 세심한 분. 당시엔 몰랐으나 P시의 같은 학교에서 함께 재직했던 동료교사이기도 했던 사이. 내 모교 앞에서 서점을 하던 책방주인.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 국제 우편으로 선물해 주시던 다정한 분. 수술차 한국에 있을 때 혈육보다 자주 안부하시고 위로차 방문하신 따뜻한 분. 봉담집에서 된장국과 보리굴비를 우리 내외에게 정성껏 대접해 주신 곰살맞은 촌부. 이 모든 모습이 책 속에 들어있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그간 25년 우정이 새삼 고맙다. 소설가로 이젠 우뚝 서신 분.


몸과 마음이 건강한 분이 쓰신 안정감 있는 소설이 눈 밝은 이들에게 두루 읽혀지길 바란다.


#노을의기억#강명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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