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다
[이 아침에] 화장실을 도둑맞다
이 정 아/수필가
[LA중앙일보] 02.08.15 17:38
점잖은 체면에 화장실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우리네 교양이건만, 더구나 이 아침에 화장실 이야기를 하게 되어 죄송하다.
얼마 전 아침, 일터인 공사 현장으로 나간 남편이 간이 화장실이 없어진 걸 발견한다. 현장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아마 화장실 렌탈 회사에서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현장 인력들의 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한 간이 화장실은 원초적 생리현상과 관련된 절대적인 시설물이지 않은가? 렌탈 업체에선 픽업하라는 오더를 하기 전엔 가져가지 않는다며 수거하지 않았다고 했다. 공사 발주처인 엘세군도 시청에도 알아보니 자기들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적한 주택가와 면한 도로의 버스 정류장 공사여서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곳인데 화장실이 없어지다니, 도로나 공원 등 바깥 공사를 26년 넘게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작은 바늘도 아닌, 트럭이 있어야만 옮길 수 있는 큰 화장실을 무슨 이유로 가져간 것일까?
감쪽같이 없어진 화장실의 행방을 찾기 위해 경찰에 신고했다. 몇 주가 지나도 화장실의 행방은 묘연하고 도난당한 화장실 값으로 쓸데없는 지출 770불을 물어주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그런 손실은 비일비재하다며 작은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지만, 인간 본연의 기본욕구를 가지고 장난친 그 양심이 미웠다.
급한 볼 일이 생겼을 때의 그 당황함을 생각하면 얼마나 진땀나는 일인가? 공사하던 인부들이 남의 집이나 상점에서 일일이 볼일을 해결할 수 도 없는 터에 그걸 훔쳐간 도둑은 정말 불량하다. 먹거리 갖고 장난치는 이들이 가장 비양심적이라고들 하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변소 갖고 장난치는 이도 그에 못지않다 생각했다.
남편의 추측으로는 농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필요해서 가져갔을지 모른다고 했다. 워낙 광활한 곳이어서 포터블 화장실이 많이 필요했을 거라며 우리보다 더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갔을 거라고 한다. 정말 그랬다면 좋겠다. 팔아먹을 요량으로 가져간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가져갔다면 말이다. 함께 가져간 오물은 어찌 할꼬 공연한 걱정을 해본다.
잘 아는 교수님이 몇 년 전 '세계 화장실 협회'의 발기 총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며 그 일을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의 화장실 사건으로 그 일이 궁금해졌다. 2008년에 창립된 이 국제협회는 한국인이 회장으로 3대 째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후진국에 화장실 설치나 이동화장실 공급, 국내의 친환경 화장실 건립 등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화성시엔 '해우재'라는 화장실 박물관도 있다는 걸 알았다. 선암사 해우소, 송광사 측간 등 유명한 화장실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화장실이 더러운 공간이 아닌 쾌적한 공간으로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단다. 그 일을 한국이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화장실 선진국 출신답게, 포터블 화장실 하나 도둑맞았다고 흥분하지 말아야겠다. 훔쳐간 이가 그 용도에 맞게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오죽하면 화장실을 훔쳐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