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조절은 덤
어렸을 적 사과 한 쪽도 못 먹었다. 먹으면 속이 쓰리고 아파 신과일은 절대로 먹지 못했다. 태어나 한 살이 안 되었을 때쯤 심한 장염을 알고 난 후 달고 살던 과민대장 증후군은 사춘기를 지나며 약이 좋아져 치유됐다. 스무 살쯤 심한 속 알이 후 위산이 많다는 진단과 술, 담배, 커피 등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약을 처방받은 게 바로 오메프라졸, 엄청 비쌌지만 먹으면 나을 줄 알았는데 이후 20년간 약을 달고 살았다.
20대 초반 어찌하여 한의원에서 체질 검사를 했다. 남이 할 때 같이 공짜로 봐줬는데 속이 허해서 뜨거운 것을 먹으라 했다. 냉면, 오이, 달걀흰자 등 차가운 것을 절대로 먹지 말고 뜨거운 것을 먹으라 했는데 이때부터 때가 되면 차를 마시고 꼭 더운 날도 뜨거운 국물을 마셨다. 결과는 원체 땀이 많은 내가 한여름에 삼계탕 먹고 커피 마시면 오후 내내 얼굴 벌게질 정도로 땀을 흘리며 쓰러질 정도였다.
20~30대는 역시나 절제되지 않는 삶으로 많이 먹고 마셨다. 혼자 살다 보니 챙겨 먹기도 힘들어 있는 데로 먹었는데 특히 우리 아버지를 닮아 먹성 또한 좋아 2~3인분은 기본이었다. 속은 항상 뜨거운 용광로와 같았고 속 쓰림은 역류성 식도염이 원인이었고 심하면 염증이 생겨 일 년에 3~4번 응급실에 실려가고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약은 그냥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40대가 넘으며 약 효과도 떨어지고 심해 몇 번 고비를 넘겼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아프다고 하니 꾀병 부리는 것 같았는데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나니 일단 술부터 끊게 됐다.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나 했는데 또 우연한 기회에 체질 의원에서 진찰한 결과 내 몸은 반대로 열이 많이 차가운 것만 먹어야 하는데 그동안 정반대로 먹어 이렇게 병을 키웠단다.
차가운 것을 먹자 속이 시원해지는데 어렴풋이 한여름에 냉면에 맥주와 아이스크림 먹고 속이 편해진 기억이 떠올랐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식 조절을 했다. 그렇다고 다 나아진 것은 아니다. 음식 조절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치유는 아니다. 약도 계속 먹으면 암 발병률이 올라간다는 기사를 접하고 더욱 조심하게 되는데 그래도 마지막 항생제를 먹은 후 절망적이었다.
의사는 고혈압, 당뇨병 환자가 평생 약을 복용하듯이 내 경우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여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딱 한 달 동안 복용했는데 정말 속이 편하고 삶이 바뀌었다. 식도염도 없고 특히 좋은 건 항상 뱃속에서 요동치던 미친 식욕이 급격히 준 것이다. 입맛이 줄었으며 이제 살도 빼면 되는데 심장질환이 늘 수 있다는데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