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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독립은 나폴레옹 때문?

1822년 9월 7일 포르투갈 왕국 이전

by 손정수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다. 항상 변하고 지속해서 변하고 있다 그 변화에는 환경. 시대. 발전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한 인물의 영향으로 펼쳐지는 역사도 있기도 하다. 사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9월 7일은 브라질 독립기념일이다. 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이 포르투갈에서 분리를 선언하며 나라를 형성했는데. 브라질 독립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프랑스의 불세출 영웅 나폴레옹. 유럽에서 호령하던 나폴레옹이 어떻게 이 멀리 남미 독립에 영향을 끼쳤는데 지금부터 하나씩 헤쳐 나가 보자.


지금은 남미 최대의 나라인 브라질은 원래 포르투갈 식민지로 개척되었다. 당시 유럽 변방국이며 늦게 국가를 형성한 포르투갈은 정신을 좀 차리고 당시 무대 중심 지중해로 눈을 돌렸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무역을 해야 하는데 옆 나라 스페인이 떡 하나 길을 막고 있어서 쉽게 나아가지 못했다. 교역이 없다 보니 살기 막막하던 포르투갈은 중대 결정을 내린다. 바로 인도로 가는 길을 새롭게 개척하는 것. 당시만 해도 지구는 평평해서 바다 끝에는 낭떠러지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이 부분은 요즘 역사가들은 당시만 해도 벌써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긍정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여간 15세기 초 세계적인 발견 그리고 대항해 탐험의 시대를 포르투갈이 처음으로 문을 연다. 그 이유는 어차피 지중해로 나가 무역을 할 수 없다면 반대쪽으로 나가 인도항로를 개발하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내려가다 드디어 희망봉을 돌고 세계 최초로 인도항로를 개척한다. 포르투갈에서 본 브라질은 처음에는 거의 쓸모없는 땅이었다. 이 땅에서 금은보화가 발견되지 않고 단지 빠우 브라질(PAUBRASIL) 이라는 나무가 많이 났는데. 이 나무를 끓여서 빨간 염료로 사용할 뿐 매력없던 땅이다. 참고로 이 빠우 브라질 나무에서 현 브라질 나라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18세기 드디어 동남부의 현 미나스 제라이스 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재배에 성공한 사탕수수로 설탕 장사를 하는 등 조금씩 관심을 받게 되어 역사는 흘러 흘러가던 중 1799년에 동주 엉 6세(João Maria José Francisco Xavier de PaulaLuís António Domingos Rafael de Bragança)가 집권한다. 당시 여왕이었던 어머니 마리아 1세가 정신병자로 집권할 수 없고 장자인 형 동 주세가 사망해 어쩔 수 없이 서열에 따라 왕권을 이어받는다. 동 주엉은 왕이 될 야망은커녕 그릇도 못 된 사람이었다. 겁도 많고 의심도 많았던 이 왕은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급진세력 나폴레옹을 두려워하며 한동안 수도를 브라질로 옮기는 것을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이 왕에게 브라질은 매력적이었나 보다.


유럽을 무슨 동네 땅따먹기하듯 쉽게 접수하던 나폴레옹은 거스르던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대륙 봉쇄령을 내린다. 대륙 봉쇄령 말은 멋있지만 꼭 말 안 듣는 사람이 있듯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반대한다. 포르투갈 내부에서는 친 영국파와 친 프랑스파로 나뉘어 대륙 봉쇄령에 따라야 한다, 반대해야 한다 등 한참 시끄럽다. 그리고 이때 나폴레옹이 군대를 보내 포르투갈의 옆 동네며 버팀목이었던 스페인을 침공하게 된다. 친 영국파들은 국왕을 설득시켜 일단 왕이 있어야 왕국이 있어야 한다며 브라질로 피신할 것을 건의하고 친 프랑스파들은 이번 참에 영국과 손을 끊고 프랑스에 붙어야 살 수 있다고 꼬드긴다.


물론 동 주엉은 식민지에서 긁어모은 금은보화로 나폴레옹 환심을 사서 자신의 왕국을 보존하려고 한다. 자 이제 영국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만약 포르투갈이 나폴레옹 수중에 떨어지면 포르투갈이 보유한 전 세계 식민지에서 올라오는 물자가 다 프랑스로 가고 자신들은 절대적으로 고립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왕을 설득하여 브라질로 피신하기를 적극 권장한다.


"나폴레옹 걔 믿을게 못 되는 친구야..."

"그 친구 취미가 유럽 왕 모가지 따서 모으기래.."

"이런 소리 들어 봤나..... 뎅~~~~~~강이라고"


뭐 이런 갖가지 소리로 겁을 주어 피신하라고 하는데 그러나 동 주엉 6세는 역시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정을 못 한다. 그때 수도 리스본 바로 옆 동네까지 프랑스군이 온 것을 깨달은 영국은 드디어 중대 발표를 한다.


"그냥 배 타고 브라질로 갈래 아니면 여기서 포탄 받고 갈래!!!!!!"


당시 최강의 해군을 자랑하던 영국 해군의 위협은 무시할 수 없었다. 다급해진 영국도 어쩔 수 없이 떠나도록 힘을 쓴다. 쉽게 결정하라고 했을 때는 딩가딩가 놀더니 대포 총구가 왕국을 겨누는 것을 본 동 주엉은 쉽게 중대 결정을 내린다.


"야들아~ 우리 브라질로 왕국의 수도를 이전한다...ㅇㅋ!"


결정은 순식간에 온 도시로 퍼지며 혼란이 일어난다. 한 나라의 수도 이전을 준비 기간도 없이 삽시간에 결정했기에 온 나라의 배들은 왕족이 압수! 왕족들과 금은보화를 싣고 떠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1807년 11월 27일 포르투갈 대피령이다. 총 14대의 배에 1만 3천 명의 왕족이 영국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출발하려고 했는데. 정작 28일까지 맞바람이 불어 출항을 하지 못하다 29일 아침에야 드디어 출항한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30일 오전 9시에 도착해서 한 발의 차이로 포르투갈을 한 손에 넣지 못했다. 당시 문헌을 보면 포르투갈은 난리 아닌 난리였다. 빵을 만들던 사람도 잡혀가고 빵을 만들 밀도 가져가고 갑자기 주인이 없어진 포르투갈은 나폴레옹 군대가 쉽게 접하고 너희 왕이 너희를 버리고 도망갔으니 이제 해방이라며 섭정을 시작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유일한 대륙 간 운송수단인 항해는 고역이었고 또한 목숨 걸고 하는 것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나갔다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대서양 폭풍우로 침몰하기 일쑤고 바다 한가운데 사는 무시무시한 괴물 등 하여간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영국군의 호위와 수십 척이 줄줄이 사탕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식수와 음식 조달이었다. 식수는 큰 나무통에 담아 여행을 시작하는데 당연히 몇 주 지나면 상하기 일쑤여서 먹기 힘들었다. 그리고 음식은 살아 있는 소. 염소. 돼지를 잡아먹기는 했지만, 비타민C 부족으로 괴혈병으로 고생했다.


목욕은 어차피 당시 유럽 사람들은 잘 안 씻기에 그렇다 치고 몇 달에 걸친 여행은 사람 몸 자체에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바로"이"가 창궐할 것이다. 이는 남녀노소 그리고 직위를 가리지 않고 공격을 하게 된다. 요동치는 배 안에서 머리를 긁적이던 귀족들 특이 여성들은 가려워서 난리 난다. 참다 참다못한 왕이 드디어 왕명을 내린다.


"머리를 다들 빡빡 밀어 버려라~~"


왕명으로 배 안 모든 사람이 머리를 밀어 버린다. 모두 잘린 머리를 보면서 시원섭섭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여자는 여자인지라 머리를 잘려서 울며불며 걱정한다. 이런 머리로 어떻게 식민지 촌사람들을 만날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할 때 한 노예가 번뜩이는 재치로 여자들에게 터번을 두르기를 권장한다. 이로써 여자들은 일단 머리를 감춘다. 이들이 브라질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릴 때 터번을 두른 체 내리자 이를 본 브라질 여자들은..


"오 저게 지금 유럽에서 유행하는 머리 스타일인가 보다~!"


하고 머리를 잘라서 터번을 두르게 되었다. 뭐 하여간 이때부터 지금까지 살바도르 지역에서는 여자들이 터번을 많이 두르고 있기는 하다. 믿거나 말거나.....!


역사는 또다시 흘러 포르투갈을 떠난 배는 먼저 3일간 북향으로 몰려가다 드디어 남향이 불어 기수를 돌린다. 그리고 당시 식민지였던 일랴 마데이라(Ilha Madeira)에 도착하나 태풍으로 선단이 갈라져 왕자들이 승선한 배는 바로 브라질로 향한다. 왕이 탄 배는 마데이라 섬에서 좀 쉬다 12월 말에 드디어 브라질로 출항한다. 그러나 미칠 역방향 바람으로 10시간에 갈 거리를 10일에 거쳐 갈 정도로 고역이었다. 54일 동안 항해하다 드디어 1808년 1월 22일 당시 브라질 수도였던 살바도르에 도착한다. 브라질 수도였지만 그래도 갑자기 1만 3천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없던 살바도르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도 이곳에 도착한 왕은 최초의 대학을 세우라고 명하고 시찰하고 세금도 직접 거둬가고 홀라당 다 배에다 싣고 또다시 떠난다. 좀 더 시원한 남부 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를 향해서. 이때부터 1960년 브라질리아로 천도할 때까지 리우데자네이루로는 브라질 수도가 된다.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왕은 먼저 영국을 포함한 반프랑스 우호 세력에게는 개항한다고 선포한다. 영국이라는 든든한 우방국이자 앞으로 필요하면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있는 나라 하나 만들어 놓은 격이고. 이 부분이 중요하다. 이런 관계가 나중에 될지는 독립 편에서 꼭 살펴 보자. 하여간 동 주엉 6세는 할 일 없이 노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할 듯이 열심히 일했다.


먼저 방꼬두브라질(브라질 은행)을 세워 거둬들이는 세금을 기록했고 왕정 실록을 기록하고 식민지로 써 금지되었던 신문 발행을 허가했다. 또한, 왕립 군사학교를 설립하여 군사를 체계적으로 키워 나간다. 왕립 의학교도 설립하여 드디어 의사들도 배출한다. 브라질 지방 관리체계를 도지사로 변경하여 직영으로 바꾸고 국립도서관과 식물원도 창립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한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최소한 1820년에 포르투갈에 돌아가기 전까지 일한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식물원이다.


원래 동 주엉 6세 취미는 식물 연구였다. 포르투갈에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식물원을 놓고 나온 것을 후회하여 브라질에 다시 세울 것을 명령했다.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 마카오 등 동남아에서 가지고 온 각종 식물과 나무들을 심어서 브라질 땅에 맞게 개량을 한니다. 특히 까람볼라(Carambola), 프루따두꼰지(Fruta do Conde), 자까(Jaca)등은 원래 동남아 원산지였는데 이곳 브라질에서 크게 재배하게 된다. 반대로 코코넛과 파인애플 등 브라질 원산지는 동남아로 퍼지게 된다.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포르투갈이 브라질로 수도 이전이 없었을 테고 있었다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했을 것이다. 어쩌다가 아닌 숙명에 의해 유럽과 남미 그리고 동남아가 섞인 브라질 탄생. 찾아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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