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와 시대가 변하는 지금 브라질 한인 사회
아래 글은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글로벌 리포트에 게재한 글이다.
출처는 http://newsletter.prideceo.or.kr/board/news/214?webzine=Vol.05
브라질 한인 이민역사는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초창기 농업 이민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고 198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의류 제조 산업이 시작됐다. 연간 수백 %가 넘는 초인플레이션 시대를 겪으며 갈고 닦은 실력으로 원단, 다림질, 포장, 봉제 등 다양한 분야로 발전했다. 지금은 한인촌으로 선정된 봉헤치로(Bom Retiro)와 브라스(Bras) 지역에서 한 때 2,000여개 넘는 가게가 있었다. 이런 한인촌에도 오랜 불황과 온라인 시대 변화로 크게 변하고 있다.
브라질 의류 업계가 과거 길거리 패션에서 쇼핑센터로 추세가 바뀌었다가 지금은 온라인으로 또 바뀌고 있다. 브라질 상업 전자 상거래 협회(ABComm)에 의하면 판데믹을 겪으며 온라인 거래량이 73% 증가 했다. 이중 가장 두드려지게 눈에 띈게 바로 의류 주문이다. 옷은 한 번 입어보기 전에는 옷감이나 맵시를 알아볼 수 없다. 이런 단점 때문에 온라인 주문은 극소수였는데 판데믹 격리가 시작되며 보복성 소비로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었다.
브라질은 매년 60억 벌의 옷을 생산하며 매출은 450억 불로 세계 4대 데님(진 원단) 생산지, 최대 니트 생산국이다. 의류 업계는 옷뿐만 아니라 원단·원사·포장·봉제 등 모든 것을 합하여 전체 노동력의 16.7% 가 종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판데믹으로 영업 금지가 이어지자 자구책으로 SNS를 이용한 온라인 판매에 관심을 쏟았다. 물론, 오래전부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하여 판매하는 방법은 있었으나 급하게 배우며 만들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미리 온라인 사업을 준비한 상점은 매출이 배로 뛰었다. 손님에게 제품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어 주문받고 송금받아 처리하는 등 간단한 것 같지만 이를 준비 못 한 업체는 사진 촬영부터 버겁고 재고를 연동해야 하는 등 번거로워 한둘 포기하는 업체도 속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18년 의류 판매 플랫폼 Houpa!를 창업한 한인이 있다. 1980년생으로 브라질에서 태어난 김태진씨는 2018년 Houpa!를 창업했다. 참고로 Houpa!는 옷을 뜻하는 호우빠(Roupa)에서 차용한 말이다.
한인 2세가 만든 의류거래 플랫폼 Houpa
옷을 만드는 전 과정을 통합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Houpa!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며 옷감을 고르는 것부터 구매, 생산, 재고 관리 등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 이 시스템이 호환되자 주위에 사용을 권하기 시작했고 시스템 개발에 집중했다. 프로그램 개발자를 영입, ERP 시스템을 만들어 옷 라벨에 QR 코드를 입력하고 이를 스캔하면 판매 관리에서 재고 확인 및 출고출하를 쉽게 검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관심 있게 본 주위 의류 상점에 판매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이 됐다.
온라인 쇼핑을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기술이 필요하다. Houpa!는 단순한 프리마켓이 아닌 소·도매가 서로 연결하는 플랫폼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까지 1,500여 개 업체가 입점하였으며 이들이 만들어 판매하는 의류 상표는 2만 개에 달하고 있다. 또한 전국의 2만 명의 도·소매 업체가 등록되어 있다. 2022년 매출은 총 5천만 헤알(1천만 불)에 상당하다.
한인 경제 상황
한인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 1980년대만 해도 차 하나 같는게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록 어려웠던 우리 한인 동포 사회, 고난 끝에 쌓아둔 경험과 성실함으로 한때 브라질 의류업계를 주름 잡던 시절이 있었다. 하도 돈을 많이 벌어 외국에서 모두 동경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달에 수백 % 물가가 오른던 시절을 그리워 하는 사람도 있다. 물건을 만들어 놓기 바쁘게 팔리니 이런 장사가 없었다. 한국에서 원단을 들여와 국가 경제에도 도움 되고 브라질에 없는 원단으로 예쁘게 옷을 만드니 경쟁상대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시장이 변한 것이다. 경쟁자가 한둘 나타나고 법도 까다로워졌다. 생산비가 오르며 예전같은 수익을 낼 수 없었다. 30년 이상 고도성장을 하던 한인 경제가 드디어 하락세로 접어든 것이다. 비싼 임대료를 내고 버티던 가게를 접고 사업을 그만두게 됐다. 장사가 안되어 옷가게가 줄어들자 다림질, 포장, 바느질집, 단추 등 관련 사업도 줄어들었다. 한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던 머리방, 병원, 식당도 줄어든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한인촌을 떠나기 시작했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 인근 나라로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미국으로 떠났다. 남겨진 한인도 이어왔지만 웬걸, 판데믹이 오며 이 모든 상황을 악화 시켰다. 한인도 줄어들고 매출도 줄어든 상황에서 3개월 이상 이어진 영업금지는 모든 것을 멈췄다. 당장 임대료도 못 냈고 아이들 학비도 못냈다. 생명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이번일로 아예 한국으로 귀한하는 사람도 있었다. 꽤나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5년 이라는 시간 동안 최소 1만 명 이상이 떠났다. 한인사회가 잠시 흔들렸지만, 그래도 브라질은 강하다.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금 브라질은 큰 변화기에 있다.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으로 무너진 세계화에서 브라질은 오랜 여파로 변화를 겪고 있다. 물가는 연간 상승하고 있지만, 오랜 인플레이션을 겪은 세대여서 그런지 금방 적응하게 된다.
브라질 시장이 매력적인 이유
브라질 국민은 빈부격차가 크다. 월 500만원 이상 버는 A.B 계층과 75만 원에서 그 이하를 소득하는 C.D.E 계층으로 나뉜다. 이들은 서로 쓰는 제품과 소비 형태가 다르다. 머리비누 같은 것도 다 다르다. 가끔 처음 보는 상표가 많은데 알고 보면 기업에서 저가로 만든 것으로 주로 빈민계층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눠진 계층간 이동과 서비스 차이가 지금 브라질을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2억 명의 인구를 가진 브라질. 자원이 풍부하여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지만, 전형적인 내수 시장을 활성화 시킨 곳이어서 어찌저찌 굴러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한인동포도 먹고 살고 있다. 부자들이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보고 배워 저소득층에게 제공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계층간 격차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건강 서비스를 예로 들 수 있다. 헤지 도우똘 아고라(Dr.Agora)는 직역하면 ‘지금 의사’라는 뜻의 병원이다. 2014년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벨루오리존치에서 의사 로드리고 코스타 박사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2023년에는 전년 대비 20% 증가한 8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Dr. Agora 홈페이지
이 병원의 특징은 일반 병원과 달이 예약이 필요없고 누구나 저렴한 값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공립병원은 모든 것이 무료이나 대기 시간이 길고 엑스레이 같은 검사는 몇 달간 걸리기도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은 개인보험이 있는데 이 또한 가계부담이 크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Dr.Agora는 저렴한 값에 바로 그 자리에서 진료를 해주는 곳이다. 단순하면서도 이를 위해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값에 받을 수 있는 잇점이 있어 인기가 많다.
저렴한 가격으로 진료, 검사, 시술을 제공하여 저소득층 환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을 받고 있다. 서비스 품질은 자격을 갖춘 전문가와 최신 장비를 갖춘 서비스 품질에 계속 투자를 하며 투자가로부터 지속적인 투자도 받고 있다. 또한 전국에 지점을 가지고 있어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자본이 투입되며 저소득층을 위한 새로운 사업이 된 것이다. 저소득층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있다.
소매가 사라지고 있다.
한인 동포가 많이 종사하는 소매 소비시장이 크게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형 쇼핑몰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애널리스트 팀은 8월에 주요 쇼핑몰에서 폐업하는 수가 느는 것을 확인했다. BofA는 약 28,000개의 매장을 보유한 146개의 쇼핑몰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월에 82개, 8월에 127개의 매장이 문을 닫았다. 폐점을 주도한 소매업체 중 대부분은 높은 부채로 인해 재무 구조를 재조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업이다.
이중 몇개 업체 현황을 보면 지금 얼마나 브라질 소매업이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센타우루스( Centaurus)는 1981년에 설립된 스포츠 용품 소매 체인으로 브라질과 멕시코에 230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에만 들어와 10개의 대형 매장을 닫았다. 마리사(Marisa)는 1948년에 설립된 여성 패션 소매 매장으로 전국에 700개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올해에만 88개 매장을 닫았다.
리너(Renner)는 1965년에 설립된 여성, 남성, 아동 패션 소매 체인으로 인데 올해에만 20개 매장을 철수했다. 또한 좋합생활 용품 매장 폴리숍은 팬데믹의 여파로 총 9개의 매장을 폐점하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BofA의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인해 매출이 감소하고, 임대료 지불이 지연되고, 결국 퇴거 소송이 제기되며 대형 매장을 위주로 쇼핑몰에서 퇴출되고 있다고 한다.
매출이 떨어지면 브라질 1.2위 쇼핑몰 운영사가 합병을 했다. 전국에 85개와 45개 쇼핑을 운영하는알리안스세(Aliansce)와 브르마우즈(BrMalls)가 합병하며 알로스(Allos)가 탄생했지만, 한 달 동안 130개의 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불경기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쇼핑몰이 합병하며 운영비와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동안 규모가 작은 한인 업체는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 있다.
가장 큰 경쟁상대로 지목되는 쉬인(Shein)은 패스트 패션 기업으로, 단 몇 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제품으로 브라질 시장을 석권했다. 주문하면 중국에서 택배로 보내 주는데 가격이 너무 저렴하여 브라질 경쟁업체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다. 또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이처럼 무분별한 경쟁상대가 늘고 있어 한인 의류업계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온라인 판매와 함께 가끔 열리는 Shein 팝업 스토어
그러나 한편으로 이민 60년에 맞게 한인이 더는 의류가 아닌 전문직과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기 위한 변화로도 보인다. 3세대가 성인이 되는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인이 늘고 있다. 이들은 SNS를 활발하게 사용하며 자신을 스스로 홍보하고 있다. 그렇다고 의류업계가 모두 손을 놓는 것도 아니다. 브라질 의류업협회 (Abiv)에는 한인 2세들이 모여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로 시대와 세대가 변하는 브라질 한인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