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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치즈빵

by 손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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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파라과이에서 시작한 이민 생활은 꽤나 고단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입에 맞는 과자나 사탕이 없어 참 서운했다. 더운 날씨에 지쳐있던 어느날 길에서 소리치는 치파(Chipa)’라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사주셨는데 알고보니 만디옥으로 반죽에 치즈를 넣어 구운 빵이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생각나는 맛이었다.


브라질에 와서 만난 ‘뻥지께이쥬(Pão de Queijo)’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갓 구운 치즈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했다. 한입 깨물면, 치즈의 향긋함이 코끝을 자극하고, 쫀득한 전분의 식감이 입안을 감쌌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아침을 여는 순간, 이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루의 시작을 축복해주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이 치즈빵의 기원은 18세기 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밀가루가 귀했던 시절, 브라질 사람들은 만지오까(카사바)에서 추출한 전분으로 반죽을 만들고, 집에서 만든 미나스 치즈를 넣어 빵을 구웠다. 이 단순한 조합은 시간이 흐르며 브라질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었지만, 기본은 언제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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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사용하는 치즈의 종류나 전분의 형태에 따라 풍미와 식감이 달라진다. 어떤 곳은 부드럽고 쫀득하고, 또 어떤 곳은 바삭하고 치즈 맛이 강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틀리지는 않다. 그것이 바로 브라질 음식의 다양성과 너그러움이다.


남미 다른 나라들에도 유사한 빵이 존재한다.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에는 ‘치파(Chipa)’,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는 ‘빤 데 유까(Pan de Yuca)’가 있다. 이들은 모두 만지오까까 전분과 치즈를 기반으로 하지만, 브라질의 뻥지께이쥬 만큼 부드럽고 향긋한 풍미를 가진 빵은 드물다.


이 빵은 단지 간식이 아니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이 치즈빵은 환대의 상징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고향의 냄새다. 손님이 찾아오면 전기 오븐을 켜고 이 빵을 굽는다. 뜨거운 치즈빵과 커피 한 잔이 어색함을 녹이고, 대화를 트이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민을 떠난 브라질 사람들에게 이 빵은 고향의 한 조각이다.


나 역시 냉동고에 이 빵을 항상 구비해 둔다. 아침마다 꺼내어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집 안에 퍼지는 치즈 향. 그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이 단점이라 자주 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특별한 날에 먹게 된다. 조용한 일요일 아침, 비 오는 날 오후, 혹은 누군가 그리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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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는 매년 8월 17일을 ‘뻥지 께이쥬의 날’로 기념한다. 이 날 전국에서는 제과점과 마트에서 할인 행사, 시식 이벤트가 열리고,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이 치즈빵을 만들어보는 활동도 한다. 단순한 음식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1990년대, 'Forno de Minas'라는 브랜드가 이 치즈빵을 냉동 제품으로 출시하면서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 브랜드는 미나스 제라이스의 전통 레시피를 기반으로, 진짜 우유와 천연 치즈만을 고집하며 국내외로 뻗어 나갔다. 한때 미국 대기업에 인수되었지만, 이윤을 위해 레시피를 변경하자 소비자들이 외면했고, 결국 창업자가 회사를 다시 인수하며 본래의 맛을 되찾았다. 이야기만 들어도 영화 한 편 같다.


통계에 따르면 브라질 국민은 연간 수천 톤 이상의 Pão de Queijo를 소비하며, 아침식사 및 간식 시장의 핵심 제품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팬데믹 이후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냉동 식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 치즈빵의 인기는 더더욱 높아졌다. 이제는 전 세계의 브라질 슈퍼마켓이나 카페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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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베어 문 그 순간, 시간은 멈춘다. 치즈의 향, 따뜻한 온기, 쫀득한 식감. 그것은 단지 맛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고 안도이고, 나를 나로 만들어준 기억의 파편이다. 이민자의 삶 속에서, 언젠가는 사라질 것 같던 그 뿌리를 한 조각의 치즈빵이 다시 붙잡아 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빵을 굽는다. 혼자 먹든, 누군가와 나누는, 이 빵 하나가 주는 위로는 결코 작지 않다. 향긋한 치즈빵은 내게 있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고향이고, 사람이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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