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민 생활이 막 시작되던 때, 어른들의 식탁에서 ‘올드에이치(Old Eight)’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싸고 괜찮은 술”, “다음 날 머리가 덜 아픈 술”이라 불리던 그것은, 그 시절 고단했던 어른들에게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작은 위로였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낯선 땅에서 하루를 버티며 잔을 부딪치던 어른들의 웃음이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올드에이치는 겉모습만 보면 제법 근사한 위스키처럼 보였다. 병 모양도 멋지고 색깔도 깊었다. 하지만 실은 진짜 위스키가 아니었다. 브랜디를 섞어 위스키 흉내를 낸 술이었다. 1960년대 중반 브라질에서 탄생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한 병에 약 40헤알(10달러 미만)이면 살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브라질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다. 바로 ‘나뚜 노빌리스(Natu Nobilis)’였다. 이름부터 ‘고상한(Nobilis)’ 느낌을 주더니, 병 디자인도 훨씬 세련되고 광고도 고급스러웠다. 언뜻 보면 비싼 수입 위스키 같지만, 이것 역시 수입산 브랜디 원액에 브라질산 주정을 섞어 숙성시킨, 한마디로 ‘느낌만 비싼 술’이었다. 그래도 그 아주 작은 차이가 사람 마음을 흔들었다. 가격이 조금 더 높다는 이유만으로 왠지 모르게 더 고급스러운 기분이 드는, 그런 심리적 사치랄까.
내가 이 술들을 처음 입에 댄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땐 술맛을 구별할 줄도 몰랐고, 그저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리베르다지에 지금도 있는 곱창구이집에는 “다섯 병 마시면 한 병 서비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고, 우리는 그 말에 혹해서 거의 매일같이 모였다. 젊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무슨 술이든 상관없고, 누구와 마시느냐가 더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입맛도 변했다. 12년산 스카치의 깊은 향과 맛을 알게 되면서 올드에이치나 나뚜 노빌리스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술을 끊기 10년 전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가 문득 옛 추억에 이끌려 그 술을 한 병 시켰다. 모두 한 모금씩 마시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잔을 내려놓았다. 그 누구도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우리는 웃으며 말했다.
“야, 이 맛으로 우리가 매일 마셨다고?”
그때 깨달았다. 시간은 입맛보다 훨씬 빨리 흐른다는 것을.
그러다 문득 한국의 술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국에도 ‘캡틴큐(Captain Q)’라는 술이 있었다. 한때 술꾼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던 이름. 싸고, 진하고, 다음 날 숙취가 거의 없다고 알려졌지만, 그 이유가 참 재밌었다. “술 마신 다음 날이 아니라, 이튿날 깨어난다.”는 농담이 돌 정도였으니까. 그 시절의 술은 다들 비슷했다. 완벽하진 않아도, 그 안에는 웃음과 이야기가 함께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오신 아버지가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호기심에 올드에이치 한 병을 사셨다. 그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라벨에는 ‘Aperitivo de Whisky’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이건 위스키가 아니라 그냥 위스키 흉내 낸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도 피식 웃으셨다. 그리고 며칠 동안 천천히 한 병을 다 비우셨다.
며칠 전, 상파울루 근교에서 메탄올이 섞인 불법 위스키를 마시고 여러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직 수사 중이지만, 비싼 술을 가짜로 만들어 판매한 업자의 탐욕이 부른 비극이었다. 그 뉴스를 듣고 문득 예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런 술은 싸도 가짜는 없어.” 그땐 그렇게 웃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도, 술도, 사람의 마음도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졌다. 이제 올드에이치나 나뚜 노빌리스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병을 보면 젊은 날의 웃음, 친구들, 그리고 그 시절의 냄새가 떠오른다. 술의 향은 사라져도 추억의 온도는 남아 있다. 그건 내게 브라질의 기억이자, 이민자로 살아온 시간의 냄새다. 가난했지만 웃었고, 거칠었지만 따뜻했던 시절의 술들. 그건 위스키가 아니라, 내 청춘이었다.
술의 맛은 잊혀도, 그 시절의 향은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