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영, '어른의 품위'를 읽으며
1. 지금이 가장 근사하다니...
‘근사하다’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왠지 외면에 비중을 두는 어감이 느껴져서였다. 사실은 ‘이상적인 모습이나 기대했던 모습과 비슷해서 매우 만족스럽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일상적으로 ‘외모나 상황이 훌륭하다’는 뉘앙스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나 스스로 20대 이후로는 자신의 외모에 1%도 만족스러운 적이 없어서, 다른 누군가의 멋스러움에 감탄사로 주로 사용됐다.
그래서 ‘근사한...’이라는 문구를 대할 때면 ‘칫!’ 하며 내심 딴전을 피우기도 했다. 최서영 작가의 조언처럼 ‘질투를 자기 발전의 발판을 삼아 도약해 봐도 좋으련만. 따라가지 못할 것 같으니까 괜스레 심술을 부렸나 보다.
월간 내손내책에서 눈귀동냥을 하다 보니, 글을 계속 따라서 쓰게 되고 있듯이 ’ 행복해서 웃는다기 보다는 웃다 보면 행복해진다 ‘는 말이 생각났다.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근사해지면 더 유익하겠다. 그러면 근사한 척해 보자. 근사하다고 자처하면서 나를 이끌고 가 보자. 언젠가는 좀 더 근사함에 가까워질 것 같다.
2. 60이 되고 보니
내가 60이 되고 보니, 내 몸이 내 맘 같지가 않다. 밤새워 책 읽거나 밤늦게까지 감동되는 영화를 보고 나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더 의욕이 넘쳤다. 그런데 2025년은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전날 다 못한 일을 쥐고 있다 보면, 밤새워했던 일은 다음에 새로이 손 봐야 했다. 중고등생 시절에 수업시간에 졸면서 필기를 하다 보면 공책에 지렁이가 여러 마리 기어 다녔던 꼴과 비슷했다. 하룻밤 잠을 설치고 나면 3~4일은 몸살이 났다. 시중에 판매되는 피로회복제를 먹어 봐도 마취가 깰 때의 부유느낌이 나지, 활력을 얻지 못했다.
’ 내 어머니는 이 나이 때에 아르바이트를 하시면서도 까다로운 남편수발과 손녀들까지 돌봐 주셨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지?‘하고 불평했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면서 일 년의 절반은 꾸역꾸역 살아냈다. 일찍 온 여름날씨에 녹초가 돼서 누워 지내다 보니, 직장생활까지 뒤틀려 갔다. 노무관리장의 호통을 들어도 개선되지 못하다가, 문득 어느 선승의 “내 몸아, 미안하다”라고 이끌던 말이 생각났다. ’ 그래, 60년 쓴 기계가 주인을 잘못 만나서 삐걱거리고 있는데 어쩌라고...‘ ’ 내가 어머니를 많이 안 닮았어~ 간식을 먹으면서도 졸았던, 먹고 자고 가 취미셨던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지!‘라며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었다. 참말로 뻔뻔했다. 그래도 그런 이상한 논리 덕분에 초기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에서도 치매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신 아버지와 남편을 보며 치매의 공포에 예민해지신 어머니 사이에서 내 노년에 대한 불안은 몇 배로 상승되고 있다. 그런 공포와 우울감을 ’ 떨쳐내기‘란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이었다. 시간적으로 도저히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하기 어려운 요즘의 내 상황에서, 월간 내손내책의 줌수업과 배려심 많은 캔바수업은 일상에 산소 같은 존재이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가족들은 너무 애쓰지 말고 ’평범하고 여유 있는 아줌마‘처럼 살면 안 되겠냐고 계속 내 건강을 걱정해 줬다.
처녀 때까지는 쉼 없이 배움을 쫓아서 숨 가쁘게 즐겼던 내가 아이들을 다 키운 지금, 이 귀한 노년에 수다만 떨고 지내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은가.
’ 품위 있는 어른이 된다는 건, 나를 고생시키지 않고 곱게 살도록 두는 것이 아니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비록 잘 해내지 못할지라도 마음껏 해보도록 기다려주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 - 최서영, 어른의 품위에서
이젠 삐걱대는 육체에 필요한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추가해서, 쓰다듬고 아끼면서 남은 절반을 잘 꾸려가야겠다. 믿기지 않던 100세 시대가 눈 깜짝할 사이에 현실이 된 것처럼, 120세 생존이 나에게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시 100세도 못 채운 채 불려 가더라도 매일 아침, 그날의 일정이 시간대별로 줄 서 있는 숨 가쁜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내고 싶다. 6년 전 위 수술을 받은 직후 죽도 싫어하던 내가 미음으로 연명할 때, 다시는 병원 신세 지지 말자고 다짐했던 그 기억을 잊지 말자.
3. 노년의 품위
나 때는 말이야~를 거론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의 20대 때에는 가구에도 품격을 거론할 만큼 ’ 품격‘과 ’ 품위‘가 혼용되기도 했다. 요즘에도 ‘품격’과 ‘품위’가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궁금해져서 AI에게 물어봤다. 역시나 그 해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혼용하고 있었다.
품격(Character):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본질)에 가깝다.
* 의미: 타고난 성품, 인격, 사람됨의 바탕, 도덕적 미덕(진실성, 정의감, 겸손, 책임감 등).
특징: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본질적인 ‘격’
(예) 높은 이상을 추구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진실된 태도를 보이는 것.
품위(Dignity): ‘어떻게 보이는가’(외형)에 가깝다.
* 의미: 품격 있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 기품, 세련된 매너, 교양, 예의, 언어, 생활 방식 등 외적인
요소.
특징: 외면으로 드러나는 우아함과 격식, ‘자리에 맞는’ 태도.
(예) 예의 바른 말투, 정돈된 옷차림, 사소한 논쟁을 피하는 여유로움.
품격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품위 있는 행동을 하게 되지만, 품위 있어 보여도 내면의 품격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라는 답변을 읽으면서 다시금 ‘노년의 품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품위’ 있게 살고 싶다면 ‘품격’을 잘 갖춰야 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해 왔던 인간으로서의 품격에서도 몇 가지 미처 못 챙기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다.
그러나 두 개념 모두 성숙한 인간의 완성도를 나타내며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알려줬다.
결국, 품위와 품격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내면의 가치관과 자아상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다만 삶의 저울이 ‘품위’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끝내 자기 자신이 무너질 수 있다.
브런치 (품위와 품격, 그리고 그 사이의 균형-‘품위 유지’라는 단어에 깃들어 있는 심리- 중에서)
‘노년의 품위’는 60세인 지금부터 갈고닦기에도 늦은 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때가 오히려 가장 적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열심히 진중하게 준비되어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