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다. 그리고 닿다
다른 세상을 엿보다
막연한 가능성을 동경하다
닿지 못할 이상을 좇다
암호 걸린 언어를 풀려다
낯선 이방인이 됩니다.
단절의 파편들이 켜켜이 쌓여 높은 담이 됩니다.
미세한 틈조차 없는 답답한 담벼락 앞에서 이방인은 몸을 웅크립니다.
그리고 침묵합니다.
시선이, 소음이, 망상이 증류합니다.
묵직한 침묵이 가라앉더니 담백한 고독을 남깁니다.
엷은 막이 ‘탁’하고 터집니다.
둥둥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립니다.
규칙적인 들숨과 날숨이 미세한 공기의 진동을 만듭니다.
작은 바람이 일렁입니다. 이방인은 그 바람을 느낍니다.
바람의 냄새가, 바람의 감촉이, 바람의 소리가
담장 앞에서 응축됩니다.
화려한 무리 속에서 뭉개져 버리지 않고 개별자로 충만한 꽃이 정갈한 고요 속에서 바람 물결 따라 자유롭게 춤을 춥니다. 차가운 담장을 아우르며 찬란한 빛을 발산합니다.
이방인은 바람 따라 흔들리지만 확신을 채우며 단단하게 땅을 딛고 꼿꼿하게 섭니다.
별빛이 쏟아지고 바람 향기 가득한 절정의 순간이 오면 사방으로 흩날리지 않고,
조용히 혼자 담 한편에 온전히 낙하하는 꿈을 꿉니다.
<작가 소개>
오길석 (Oh Gil Suk)
개인전 6회
아트페어 및 기타 단체전 다수
"선택적 고립은 황폐화되는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함이다." by 오길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