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떳떳한가
추적추적 비 내리는 오후, 갑자기 사장님이 방문하시고 민원인이 내방하시고 정신없이 일처리 하는 도중 학교에서 콜렉트콜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우산이 없는데 집에 어떻게 가?"
"비가 많이 안 오면 자전거 타고 가고 비 많이 오면 아빠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 아빠 좀 전에 조퇴하고 집에 간다고 연락 왔어."
"응 알았어"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아 일을 하려는데, 또 걸려온 콜렉트콜.
"엄마, 비 많이 안 와서 그냥 자전거 타고 갈게."
"알았어, 태권도학원 늦지 말고. 형아한테도 과학학원 늦지 말고 가라고 해."
그 후 이어진 4통의 전화.
엄마, 피곤한데 과학학원 갔다가 태권도학원은 쉬면 안 돼?
엄마, 그냥 태권도학원 갈게.
엄마, 라면 먹고 싶은데 아빠가 아직 집에 안 왔어.
엄마, 태권도 6부 가도 돼?
사무실에서 개인적인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전화받느라 바깥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오후 3시 이후로는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5시가 되자 pc 꺼짐 알람이 계속 울리고 이것만 올리고 집에 가야지, 하다가 결국 결재상신 버튼 누르기 직전에 pc가 강제종료되어 버렸다.
집으로 향하는데, 첫째 아들이 먹고 싶다는 서브웨이 샌드위치 프로모션 세트로 3개를 구입했더니, 음료수 3개를 비 오는 날 우산과 함께 들고서 버스를 기다리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참 아등바등 살고 있구나.
회사에서는 집중해서 일처리 하려는 마음에 아메리카노 2잔을 연거푸 마시다가 그래도 깨지 않는 잠을 믹스커피 2잔으로 해결해 보려 애쓴다. 물론 사이사이 물도 마시지만, 커피만 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지 못했다. 안 그래도 역류성 식도염에 골골대는 몸에 커피를 쏟아부으니, 올해 받아야 할 건강검진이 두렵다.
버스를 타고 귀가해서는 아이들을 잡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은 학원가는 길이 오래 걸리니 일찍 집을 나서라는 나의 당부쯤은 아이들에겐 들리지 않나 보다. 학원수업을 10분쯤 늦게 가는 건 아이들에게 국룰이 되어버렸다.
"늦지 말라고 그만큼 전화로 말했어? 안 했어? 왜 늦었어??"
1시간 동안 고함을 섞어 잔소리를 늘어놓았더니 아이들이 고개를 푹 숙인다.
비교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 맞춰 성실히 잘 다니는 윗집 아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비교하지 말라니까.."
아이들은 구시렁 댔지만, 잔소리만으로는 내 속은 풀리지 않았고 결국 비교까지 하고 말았다. 윗집 아이 이야기로 내 새끼들에게 열등감을 쥐어주고 난 다음에서야 묘하게도 내 마음은 그제야 풀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새벽 6:20 필라테스 수업에 가기 위해 5:30 눈을 떴다. 남편이 자전거 조립을 한답시고 바퀴를 잡아달란다. 거치대도 없이 혼자 조립하는데 힘들어 보여 잡아주다 보니, 6시. 수업에 늦을 것 같았다.
"오늘 수업 가지 말고 조립 도와줄까?"
"아냐, 가야지"
남편이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어제 아이들에게 그만큼 잔소리를 하고 , 내가 수업에 늦을 순 없는 노릇.
부랴부랴 운동복 챙겨 입고 재빨리 운전해 집을 나섰으나 결국 6분 지각.
어이없는 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혼낼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