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내 알고리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프랑스 #2 잔잔하고 강렬했던 첫 파리

by 조디터 Joditor

샤를 드골 공항에서 우리를 태운 밴은 곧장 에펠탑으로 향했다. 기사님은 한국인이었다. 약 20년 전에 프랑스인 아내와 함께 이주해 살고 있다고 했다. 그가 와서 처음 한 일은 에펠탑 유지보수 작업이었다. 그는 에펠탑에 관해서 모르는 게 없었다.


“에펠탑에 들어간 볼트만 몇 개인 줄 아세요? 무려 250만 개예요. 자잘한 부품만 2만 개가 넘습니다. 그걸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낡은 건 바꾸고. 페인트칠만 세 겹으로 합니다. 7년 정도마다 전체 도색 작업을 하는데 그때 쓰이는 페인트만 60톤이 넘어요.”


덕분일까? 에펠탑은 1889년 완공 당시 애초 수명을 110년으로 잡았었다. 지금은 그 예상 수명을 20년이나 훌쩍 넘겨 장수 중이고, 앞으로도 더 오래 살 것처럼 보인다.


A1 고속도로를 따라 드디어 파리 시내로 들어섰다. 스펀지케이크 위에 크림을 평평하게 발라 놓은 듯 스카이라인은 야트막하고 반듯했다.


‘와, 진짜로 내가 파리에 다 오다니!’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감동을 일행에게 티 내고 싶지 않아 억눌렀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그 감동은 얼마 안 가 터지고 말았다. 마치 전날 과음의 흔적이 식도를 거쳐 아름답게 세상에 흩뿌려지듯 그 순리는 거스를 수 없었다. 항상 자료로만 봤던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이 무심하게 차창 밖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와”가 길고 나지막하게 터지고 말았다. 에투알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 승리를 기념하게 위해 지어졌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인트헬레나섬 유배 중 세상을 떴다. 개선문의 웅장한 자태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주변을 룰렛처럼 빙빙 돌다 각자의 길로 들어서는 차들이었다. 개선문 주변으로는 12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무질서 속의 질서가 이곳에 존재했다.


기사님은 우리를 트로카데로(Trocadéro) 광장에 내려주었다. 저 멀리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에펠탑의 실루엣이 언뜻 보였다. 광장에는 다양한 군상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공연하는 이들, 시위하는 이들, 열쇠고리를 파는 이들. 무엇보다 에펠탑을 뒤에 두고 사진 찍는 이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했다. 그 프레임 안에는 우리 말고도 세계 각지에서 온 이방객들이 조연으로 서 주었다. 사진을 찍고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철탑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에펠탑이 이거구나. 이렇게 생겼구나. 옛날 사람들은 왜 이걸 보고 흉물이라고 했던 걸까? 이렇게나 멋진데.’

나름의 감상에 허우적댈 때쯤 기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현지인들만 아는 에펠탑 뷰포인트가 있으니 그리로 가서 한적하게 감상하자는 거였다. 우리를 다시 태운 밴은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다 어느 주택가에 멈췄다. 건물들 사이로 에펠탑이 손에 잡힐 듯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님 덕에 우리만의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느긋하고 나긋하게 에펠탑과 마주했다. 그곳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벨기에를 오가며 며칠 동안 격무에 시달렸다. 그리고 귀국 항공편 탑승까지 하루 정도의 자투리 시간이 생겼다. 우리는 파리 시내에서 차로 약 40분 떨어진 아웃렛, 라 발레 빌리지(La Vallée Village)로 향했다. 이후 파리에 올 때마다 나는 이곳부터 여정을 시작했다. 오히려 에펠탑보다, 에투알 개선문보다 더 필수 코스가 됐다. 보통 아웃렛이어도 비싼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곳은 달랐다. 진짜로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수두룩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국내에서는 만날 수 없는 브랜드와 숍도 많다.


소소하지만 포만감 넘치는 쇼핑을 하고 우리는 다시 파리 시내로 향했다. 홍합 요리로 굿바이 만찬을 즐겼다. 파리에서는 주로 벨기에·프랑스 북부에서 유래한 무술 마리니에르(Moules Marinières) 스타일의 홍합 요리를 먹는다. 홍합을 화이트 와인과 버터, 샬럿, 마늘, 파슬리로 간단히 조리해 감자튀김을 곁들인다. 육수 같은 국물에 바게트를 적셔 먹으면 완벽하다. 우리가 간 레옹 드 브뤼셀(Léon de Bruxelles )은 벨기에 출신 홍합 요리 전문 체인점이다. 파리에서 홍합 요리를 처음 시도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일행은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떠났다. 나는 오롯이 파리에 하루 더 남겨졌다. 도시 외곽 허름한 호텔에 짐을 다시 풀고 거리로 나왔다. 파리의 하늘은 다시 ‘개와 늑대의 시간’이 펼쳐졌다. 벨리브(Vélib’ Métropole)라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에투알 개선문으로 향했다. 누군가 그랬다. 밤에 그곳에서 보는 에펠탑 야경이 정말 끝내준다고. 순간 드는 생각은 ‘삼각대를 세워두고 타임랩스를 찍으면 정말 근사하겠다’였다. 나선형 계산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니 정말로 거리 끝에 에펠탑이 빛나고 있었다. 옆으로는 샹젤리제 거리가 반짝였다. 이렇게 멋진 광경은 지구에서 여기가 유일하다. 풍경의 소유욕이 요동쳐 삼각대를 펼치는 순간 어디선가 제복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눈빛으로 ‘요 녀석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No tripod.” 에투알 개선문 전망대에는 삼각대를 펼칠 수 없다. 생각해 보니 너도나도 이곳에 삼각대를 펼치고 죽치고 있다면 그 얼마나 민폐일지 생각이 들었다. 빠른 수긍으로 최대한 눈에 담았다. 그 시간이 타임랩스처럼 빨리 지나갔다.


다음날 공항 가는 길에 에펠탑에 다시 들렀다. 내니백(Nannybag)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호텔이나 상점에 짐을 잠깐 맡길 수 있다. 유유자적 에펠탑 근처를 걸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코모레비(こもれび,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속에서 주변을 관망했다. 웬 흑인 청년 한 명이 다가와 에펠탑 열쇠고리를 사라고 권했다. 정중하게 거절하자 다시 오지 않았다. 이따금 낙엽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고 그러던데? 밑져야 본전, 내 알고리즘에 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Oc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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