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걷는 몽마르트르

프랑스 #4 처음엔 그냥 걸었어

by 조디터 Joditor

포아시에서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파리에 있으면 이상하게 1분 1초가 너무 소중했다. 숙소는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였다. 몇 블록을 걷자, 몽마르트르 공동묘지(Cimetière de Montmartre)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곳은 원래 채석장이었으나 나폴레옹 시대 때 공동묘지로 만들어졌다.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두마 피스, 헥토르 베를리오즈 등의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다. 슬쩍 들여다봤을 때, 마치 공동묘지를 콘셉트로 한 야외 미술관 같았다. 그만큼 조각과 건축미가 뛰어났다. 고양이도 많이 보였다.


저 멀리 사람들이 북적였다. 건물 위로 빨강 풍차가 돌아가고 있었다. 물랭루즈(Moulin Rouge)다. 우리에게 익숙한 프렌치 캉캉(Cancan)을 세계적으로 알린 곳이다. 에펠탑이 완공됐던 1889년 이곳도 함께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파리의 카바레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이곳은 파리에서 최초로 전기를 도입한 건물이다. 화려한 조명과 바람 없이 계속 돌아가는 풍차의 모습이 당시 얼마나 센세이션했을지. 2004년 대한민국을 ‘애기’로 뒤흔들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강태영(김정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공연. 그리고 앞서 2001년 개봉한 영화 <물랑루즈>에서 사틴(Satine, 니콜 키드먼)의 고혹적인 등장을 난 아직 기억한다.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관객을 응시했던 그 압도적인 눈빛, 물랭루즈에 가면 그 느낌을 생생하게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예약하지 않아 그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우리는 목적지를 두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함께 걸었다(결국 그곳은 언덕의 정상이었다). 그러자 앙증맞은 회전목마가 나타났다. ‘파리는 도시 전체가 놀이공원인가?’ 회전목마는 꽤 오래돼 보였는데, 실제 사람들이 타며 놀고 있었다. 저 모습을 어디선가 봤다 싶었는데, 영화 <아멜리에>에 나왔던 장면이었다.


회전목마 근처 어딘가에서 뭔가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툭 치고 갔다. 크레페(Crêpe)였다. 파리 길거리 곳곳에서는 작은 포장마차에서 파는 크레페를 맛볼 수 있다. 크레페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얇게 구운 반죽 위에 다양한 토핑과 속 재료를 넣어 먹는 음식이다. 디저트로 먹기도 하고, 메밀 반죽을 구워 안에 치즈나 햄 등을 넣어 식사 대용으로 먹는 갈레트(Galette)라는 것도 있다. 약간 출출했던 터라 안에 누텔라와 바나나를 넣은 크레페를 하나씩 주문해 허기를 달랬다. 향긋하고 달콤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이런 도시에서 이런 걸 사 먹으며 한 달쯤 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간절히 바볼까? 또 우주가 도와주시려나?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웅장한 건물이 나타났다. 바로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 de Montmartre)이다. 어느덧 파리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130m)는 몽마르트르 언덕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사크레쾨르는 프랑스어로 ‘거룩한 심장’이라는 뜻으로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뜻한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와 파리 코뮌 진압 이후, 프랑스가 신에게 속죄하고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상징물로 지어졌다. 트라빌 석회암으로 지어져 언제나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을 유지한다. 성당의 돔 꼭대기에 오르면 에펠탑보다 더 탁 트인 파리를 360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성당 앞에만 가도 파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보게 된 영화 <존 윅 4> 후반부를 보면 존 윅이 계단에서 수차례 굴러떨어지는 액션신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다.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존 윅의 여정을, 성스러운 장소를 향한 오르막길로 은유한 연출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존 윅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배경이 반갑기도 했다.


파리도 식후경이어야 했는데, 멋진 풍경들을 놓칠세라 저녁 식사가 늦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근처에 있는 작은 광장으로 향했다. 이른바 ‘예술가 광장(Place du Tertre)’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이름 그대로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 화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행객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실제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피카소, 반 고흐,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같은 화가들이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하며 이곳이 파리 예술의 중심지가 됐다. 광장 주변에는 Le Consulat, La Mère Catherine 같은 전통 카페가 있다. 우리는 분위기가 가장 좋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간단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커플이 손을 꼭 잡은 채 눈빛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몇 해 뒤 나는 이곳을 다시 찾았는데, 그때는 코로나19 막바지라 광장도, 식당도 꽤 썰렁했다.


다음날 우리는 스위스 제네바를 향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근처에 있는 어떤 차는 밤새 테일게이트 창문이 깨졌다. 유럽에서는 차에 귀중품을 두면 안 된다. 아침 일찍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다시 찾았다. 저녁과는 다른 분위기와 공기였다. 문을 연 아무 빵집에 들어가 가면서 먹을 빵을 샀다. 프랑스는 아무 빵집에 들어가도 100% 성공적이다. 파리 시내를 벗어나면서 내 나름의 필수 코스인 라 발레 빌리지(La Vallée Village) 아웃렛에 들렸다. 넉 달 전에 왔을 때 살까 말까 고민했던 아이템들을 모조리 다 사버렸다. 그렇게 기분 좋게, 우리는 남쪽으로 달렸다.


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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