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 and Vulnerability
색상을 가지고 논하기에는 사람마다 개별 편차가 있지만 내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핑크라는 색상은 금지에 가까운 색상이었다. 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핑크 아이템들을 입거나 가지고 다녔더라면 아마 놀림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상 계열이 블루나 그레이 계열이었던 이유도 있었고 가지고 있는 것과 보고 있는 것도 편하지 않았던 "핑크 치사량"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꼭 한국에만 국한된 인식은 아닌 것 같은데 해외의 지식인 Quora에서 사람들의 색상에 대한 답변과 질문을 찾아보면 재미있는 인식들을 볼 수 있다. 왜 사람들이 -- 색상에 대해 싫어하나요?라는 식으로 각 색상을 검색하다 보면 Green이나 Blue와 같은 색상들에는 "아니 나 그 색상 좋아해 내 최애 컬러야"라던지 "개인차가 있다"는 의견이 많이 보이는데 반해 유독 핑크에 대해서 만큼은 이 색상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싫어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들이 보인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겠지만, 너무 소녀스럽다거나 너무 여성스러운 색상에 가깝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는 의견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핑크를 쓰는 것이 비난에 취약한(Vulnerable) 느낌을 줘서 예전엔 좋아했지만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긴 답변은 아니었지만 공감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이야기이긴 하지만 핑크색을 많이 입고 온 또래 여자애들을 짓궂게 놀리거나 남자들 간에서도 핑크색을 쓰는 남자애들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와서는 재미있기도 하면서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다. 왜 특정 색상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을 놀릴 수 있다고 (그런 자격이 생긴다고) 무의식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었을까? 그냥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핑크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보통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공격할 때 공격을 되돌려 받거나 그것이 두려울 때는 쉽게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핑크는 누구도 먼저 공격한 적이 없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선호의 표시였을 뿐이며 그 속에는 어떠한 공격 의사도 없다. 그럼에도 이것을 좋아한다는 선호 표시가 공격받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좋아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색상이 되었던 것이다.
처음엔 쉽지 않지만 가만히 편견을 거두고 바라보면 꽤 따뜻한 난색 계열의 색상이 이제는 보인다. 어렸을적 그 색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타부를 붙인 것은 Vulnerability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선이 아니었을까? 공격하기 쉽다고해서 공격하는 것들을 지양하는 것이 좀 더 성숙한 커뮤니티라고 생각한다. 공격받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 한다면 조금 피곤하지 않을까. "어떤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일까?"를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앞으로는 한번 핑크와 민트초코가 공격받지 않는 세상이라고 대답을 해봐야겠다.
P.S
여전히 핑크를 입을 자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