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바라타리아: 보수정치의 연극과 한덕수

by 조경일 작가

한밤의 바라타리아: 보수정치의 연극과 한덕수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2권에는 돈키호테의 하인인 산초 판사가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이 되어 섬을 다스리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산초 판사는 세상을 구한다는 모험에 빠져 허상을 좇는 돈키호테의 상태를 알면서도 그를 주인으로 모시고 모험에 따라나선 하인이다. 그가 기꺼이 따라나선 이유는 돈키호테가 섬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권에서 산초는 드디어 섬을 갖게 된다. 내용은 이렇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우스꽝스러운 모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한 공작 부부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자신의 성으로 초대해 극진히 대접했다. 이유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 놀이를 부추겨 자신들의 무료함을 달랠 작정으로 연극을 기획한 것이었다.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공작 부부가 바라타리아 섬의 통치권을 산초 판사에게 주는 것이었다. 산초는 드디어 꿈을 이뤘다며 환호했지만, 그가 총독으로 부임한 바라타리아 섬은 사실 바다 가운데 있는 섬도 아니었으며 공작 부부의 영지 내에 급조된 가짜 무대였다.


지난 1년 대한민국은 계엄내란으로 희극과 비극의 교차점에서 여전히 혼란을 다 수습하지 못한 채 내란 1주년을 마주하고 있다. 주요 내란 종사자들에 대한 재판도 진행하고 있다. 마침 지난 26일 대통령 다음으로 행정부의 2인자였던 국무총리였던 한덕수는 내란 주요 종사자로 징역 15년을 구형받았다. 내란을 막아야 할 책임자가 내란 종사자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한덕수 연극의 서막은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이 한밤중에 그를 대통령 후보로 바꿔치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연극은 한동훈이 축출된 뒤 ‘쌍권’이라 조롱받았던 권영세 당시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의 윤석열 살리기 위한 급조된 작품이었다. 이를 두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쌍권은 정계은퇴를 해야 한다”며 “정당정치 모르는 말종들 사라져야”한다고 힐난했다.



현실판 공작 부부, 한밤의 밀실 공천


현실판 공작 부부인 윤석열과 그림지들, 그리고 쌍권은 윤석열의 빈자리를 한덕수라는 영혼없는 노회한 관료를 내세워 내란의 역풍을 피해질 타산이었다. 마치 『돈키호테』소설 속 공작 부부가 산초 판사에게 바라타리아 통치권을 주는 연극 놀이보다 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 현실이 됐다.


소설 속 공작 부부는 산초를 통치자로 임명하는 의식을 치르지만 이건 사기극이었다. 산초는 자신이 진짜 섬의 통치자가 된 줄 알았으나 실상은 공작의 연극무대 위의 광대에 불과했다.


지난 대선, 국민의힘이 한덕수를 대선 후보로 선출하던 과정을 복기해보자.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내란을 일으키고도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내란을 덮어줄 만만 하고 고분고분한 ‘바지 대통령’으로 한덕수를 연극 무대 위에 세우고자 발악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4시에 딱 한 시간의 후보 등록 시간을 허용하는 얄팍한 장난질로 한덕수를 기습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등록시켰다. 자고 있던 김문수는 후보 서류 미제출로 자동으로 후보 자격이 박탈됐다.


당시 쌍권은 자신들이 설계한 연극 무대 위에서 대본대로 움직여줄 완벽한 꼭두각시, 즉 ‘정치적 산초’가 필요했다. 한덕수는 그렇게 간택되었다. 한덕수는 자신이 후보만 되면 대통령이 될 줄 알았겠지만 그는 바라타리아의 산초 신세인 줄 몰랐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는 국가 혼란 수습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바라타리아의 통치자가 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야 자신의 내란 주요 종사 죄를 숨길 수 있었을 테니까.


소설에서 산초는 비록 조롱거리로 바라타리아 통치권을 받았지만, 공작 부부의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명판결을 내리며 공작 부부를 당황케 했다. 세상 물욕에만 관심 있을 줄 알았던 산초였지만 그는 현명한 판결을 하는 통치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실제 통치권이 있었던 한덕수에게 없었던 것이 산초에게는 있었다.


한덕수는 윤석열의 계엄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반대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총리로서 헌법 수호라는 본연의 책무는 수행하지 못한 채 오직 윤석열의 눈치만 보며 시중든 것 외엔 없음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는 공작 부부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아바타에 불과했다.



농락당한 산초, 스스로 망가진 한덕수


소설에서 산초의 통치는 적들의 침입이라는 가짜 소동으로 끝이 난다. 겁에 질린 산초는 자신은 통치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섬을 떠났다. 그는 비록 공작 부부에게 농락당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현실판 산초 한덕수의 결말은 소설 속 산초보다 훨씬 비루했다. 검찰의 15년 구형은 그가 내란의 주요 가담자임을 증명한 것이다. 한덕수는 알았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내란을 피해가기 위해 자신을 후보로 세워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와 처세로 평생 관료로 살아온 그가 그 뻔한 정치 공학을 몰랐을 리 없다. 그는 알면서도 바라타리아의 욕망에 취해 내란 공범이 되기를 선택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게 없던 일이 될 테니까.


국민의힘은 꼭두새벽에 한덕수에게 최종 후보라는 비단옷을 입혔지만 그래도 현명한 국민의힘 당원들은 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한밤의 후보 교체는 부결되며 정당성을 잃었고 결국 김문수 후보로 선거를 치렀다. 막장 정치의 끝판을 보여준 국민의힘은 대선 패배로 사실상 파산됐다. 내란 가담자들과 옹호자들은 모두 쥐죽은 듯이 숨어도 부족할 판에 도리어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과의 체제 전쟁에 나서며 죽음의 협곡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중이다.


한덕수는 법정에서 위증하고 중언부언하며 어떻게든 형량을 줄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산초처럼 “통치는 내 길이 아니다"라며 계엄 당시 책임지고 떠났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을 바라타리아로 생각하고 삼킬 궁리만 하다 스스로 무덤을 팠다.



커튼 내린 연극, 무대에는 죄인만 남았다


특검은 한덕수에게 15년을 구형했다. 내란 국무회의 책상에 앉았던 장관들은 입도 뻥끗하지 못한 그저 영혼 없는 관료주의와 책임 없는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국민의힘이 기획한 ‘한밤의 바라타리아’ 연극은 막을 내렸다. 조명은 꺼졌고, 관객(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산초 판사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한덕수는 감옥으로 갈 것이다. 내란에 가담한 주요 종사자들 또한 감옥에 갈 것이다. 정치는 욕망을 필요로 한다. 탐욕스러웠지만 영혼은 있었던 산초보다 열 배는 더 못한 비루한 인간들을 정치 무대에서 더는 보고 싶지 않다. 홍준표의 표현처럼 ‘말종들’을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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