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8월, 해방 80주년을 기념하여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에서「해방의 기억: 한반도·중국·일본에서 8.15를 맞이한 코리언들의 삶」(지식의 날개 2025.8.15.) 책을 출간했다. 한중일 세 나라가 기억하는 당시 해방의 순간을 기록한 기억들에 대한 에세이(1~3부), 그리고 이를 읽은 남과 북 청년 대담, 재중조선족과 한국인의 대담,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의 대담(4부)로 구성됐다. 나는 4부 대담 중 남과 북 청년의 대담 진행자로 대화를 진행했다.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깊숙히 빨려들어가는 요즘, 나는 통일에 앞서 해방을, 해방에 앞서 어색한, 하지만 꼭 먼저 있어야 할 만남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해방의 시작은 만남이었다.
‘해방’을 주제로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해방이라는 주제는 1년 중 8월 15일에나 한 번 상기할 뿐. 역사에 대한 기억이니 의례 행사기간에 스쳐 지나가는 주제였다. 나에게 해방이란 무엇일까? 해방 80주년을 맞아 남북 청년의 대담 진행을 위해서 위의 책에서 해방을 주제로 쓴 에세이들을 읽고 나서야 나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라는 존재에게 해방이 무엇인지를 사유함과 더해 “우리에게 해방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요즘이라는 생각이 깊어 갔다.
김연주, 강태성 두 대담자도 나와 고민이 비슷한 듯했다. ‘해방’ 연구자가 아니라면 아마 대부분 비슷하지 싶다. 그래서 더욱이 대화의 주제는 무거웠다. 평범한 2030 남북 출신 청년 셋의 대화 치곤 해방이라는 주제는 버겁기도 했다. 참, 나는 북한출신, 김연주·강태성 두 청년은 남한 출신이이다.
‘해방’을 주제로 마련된 대담이었지만, 사실 진행자인 나의 ‘북한 출신’ 정체성이 투영된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8.15 해방’이 담아내지 못하는 분단된 두 체제의 경험자들의 대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다소 나의 의도된 질문들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80년 전 ‘해방의 그날’은 남쪽 출신이건 북쪽 출신이건 ‘그 날’에 대한 기억이나 교육이 남과 북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해방 이후 분단 된 두 체제에서의 삶과 경험, 그리고 다른 기억들이 대담을 더 의미 있게 만들 거라는 생각이었다. 역시나 사건으로 인식하는 ‘8.15 해방’에 대한 사유는 우리 모두 비슷했다.
한반도팀의 대담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북한 출신 청년이 남한 출신 청년에게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기획의 의도와 별개로 이번 대담에서 북한 출신인 나는 실패한 체제를 상징하고, 남한 출신인 두 대담자는 성공한 체제를 상징한다고 나는 자의적으로 생각했다. 해방의 관점에서 이런 구도를 설정해놓고 대화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쪽이 나에게는 억압의 공간이었으니 남쪽은 자연스레 나에게 해방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해서야 새로운 삶을, 새로운 꿈을 얻었으니 나에게 해방의 의미는 남쪽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과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남쪽 출신인 두 대담자에게는 해방의 의미가 나의 사유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다. 경험이 다르니 당연했다. 대화를 이어가는 중에도 서로 다른 경험이 빗어낸 보이지 않는 경계들과 조심스러움이 분위기 속에 녹아 있었다.
두 대담자는 탈북한 존재들과 대화를 해본 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 대담이 아니었다면 아마 두 대담자는 만날 기회가 당분간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담은 진지하면서도 어딘가 어색했다. 대담의 주제 때문이었다. 북향민과 첫 대화의 주제가 ‘해방’이라니. 일상의 만남이었다면 아마 또 달랐을 것이다. 대담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서로 공감했다. 역시 대화를 해봐야 안다고. 함께 잔을 부딪치자고.
대담이 진행되는 내내 두 대담자는 특정 주제에서 특정 단어를 묘사할 때 조심스레 표현하려고 했다. ‘북향민’ 관련 주제였다. 두 청년에게는 '북향민'이라는 호칭보다는 '탈북민'이라는 호칭이 익숙했지만, 나는 북향민 호칭을 선호한다고 밝히고 대화를 시작했다. 북향민과의 첫 대화라 그런지 표현들이 다소 어색한 순간들이 있었다. 북향민을 호칭하는 문제부터 이들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 이미지에 대한 단상까지. 당사자인 나를 앞에 두고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 하려니 당연히 어색했을 것이다. ‘조심스러워 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위의 책에 담긴 여러 편의 에세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남북한 청년들이 해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에세이를 읽은 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대담을 통해 노출하는 것이 취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생활 21년차인 나의 해방에 대한 인식은 남한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에서 해방에 대한 교육이 나에게 부재했던 탓도 있지만, 21년 간 ‘남한화’된 나의 일상이 대담자들과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탈북’ 정체성으로 사유하는 나의 존재론적 고민이 이 대담의 의미를 더했다.
북향민과 첫 대화라는 두 대담자의 고백에 나는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내 경험상 나와 같은 존재들과 처음 대화를 하는 이들은 항상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 조심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급적 대담자들이 ‘북한 이야기’, ‘북향민’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불편해 하지 않으면서 꺼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어야 했다. 나야 뭐 21년동안 남한 사람들과 ‘북한, 탈북’ 이야기를 하는 게 일상이었으니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어색해 했다. 이번 대담은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위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해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해방은 만남을 필요로 했다. 대담자 강태성의 표현처럼, 어쩌면 잔을 부딪치듯 부딪쳐야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해방이 가능할 것이다. 강태성, 김연주는 대담을 통해 ‘북향민’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8.15 해방을 주제로 대담을 했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경계로부터 먼저 해방이 필요했다. ‘그 날’의 해방은 여전히 갈라진 우리에게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해방 80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해방’은 무엇인가. 저마다 해방의 의미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분단 된 한반도에서 남한 출신으로 북한 출신으로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만남’ 자체가 해방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단절된 채 적대적으로 남아있는 남과 북의 만남은 곧 해방의 시작이 되리라. 8.15 해방은 분단이 끝나는 날 완성될 것이다.
분단된 조국에서 미완의 해방 8.15의 완성을 위해서는 당분간 쉽지 않을 남북의 대화 이전에 먼저 북한 출신인 북향민들과의 대화가 더 깊어질 필요가 있다는 걸 새삼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