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민(北鄕民) 호칭과 사회통합에 대하여

by 조경일 작가


이 글은 필자가 2025.10.31. 통일부에 자문한 자문보고서 내용을 정리한 글임을 밝힌다.

다소 길지만 기존 호칭의 문제, 새로운 호칭의 의미, 주요 쟁점과 반박을 정리한 것이다.

호칭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음을 잘 안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왜 호칭문제가 등장했는지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기를 바란다. 나와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존중한다.

다만 "북한 눈치보기"라는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더러운 주장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하고 명확하게 반박하겠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임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북향민' 호칭은 2012년쯤부터 당사자들이 직접 제안하고 써왔던 호칭이다. 이후 2015년쯤부터 박예영 대표(전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가 주도적으로 호칭 변경 운동을 해왔고, 나도 동참해왔다.

이후 나는 2023년 12월 출간한 책 '리얼리티와 유니티'를 통해 북향민 호칭이 갖는 의미에 대해 철학의 존재론 개념으로 설명을 시도했다. 지금까지 나는 호칭이 그저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탈북민'이라는 호칭에 내재된 '존재의 결핍'에 대해 설명해왔고, 새로운 용어인 '북향민' 호칭이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정정하고 확장'하는지 철학적, 존재론적, 사회문화적, 정책적 의미로 설명을 시도해왔다.

아래는 호칭 변경의 필요성에 대한 나의 고민이다.




1. 북향민 호칭을 공식 도입한 통일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향민(법률 용어는 북한이탈주민) 용어 변경은 역점 과제 중 하나이며, 지난해 12월 30일, 통일부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2026년부터 북향민(北鄕民) 명칭을 공식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용어 변경에 대한 일부 보수 성향 북향민들의 반발과 야당인 국민의힘에서 비난하는 왜곡된 주장이 있었지만, 통일부는 휘둘리지 않고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필자는 그동안 '북한이탈주민'의 일상용어인 '탈북민(탈북자)' 호칭에 내재된 이중적 시선과 편견이 정작 당사자들의 취업 등 생존활동에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음을 꾸준히 비판하며 대체 용어인 '북향민' 호칭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재 우리 정부의 북향민 지원 정책은 비교적 촘촘하고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다. 초기 정착금부터 주거, 교육, 취업 지원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장치는 나날이 보완돼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향민들의 자살률은 여전히 일반 국민의 3배 가까이 된다. 수천 명이 제3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우리는 그 원인을 단순히 정책 지원 부족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 비극적인 숫자는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 섞이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 근저에는 우리 사회가 북에서 온 사람들을 호명하는 '탈북자(탈북민)'라는 호칭이 이데올로기적 낙인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제도는 보완돼 왔는데, 북향민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북한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탈북민'이라는 호칭은 의도와는 다르게, 이들을 심리적으로 동등한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 인식하기보다 '북한'이라는 부정적 배경과 연결된 '특수한 타자'로 규정한다. 북향민들의 사회적응 실패는 정책 부족에 따른 '물질적 결핍'이 아닌, 정체성이 평가절하 되는 '존재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북향민들이 북한에서 살아낸 삶과 기억들, 생존의 경험과 지혜는 한국 사회에서 경험자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련된 ‘한국사람’이 되기 위해 씻어내야 할 '오염'이나 '낙인'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이는 독일 통일 후 동독 출신 사람들을 '학습하고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그들의 삶을 평가절하하고 타자화 했던 서독 사회에 팽배했던 부정적 시선을 강력히 비판한 메르켈 총리의 지적과 일치한다.


언어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반영한다. '탈북민'이라는 호칭은 내면의 무의식적 차별과 타자화를 정당화하고 이데올로기적 패배와 승리를 증명하는 기표로 작동하고 있다.


북향민이라는 호칭은 2012년쯤부터 당사자들이 직접 제안하고 써왔던 호칭이다. 이 호칭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커져서 많은 단체와 기관들에서 적극 사용하다가 현재 많은 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정부에서 공식 대체 용어로 수용된 것이다.



2. 호칭은 왜 중요한가?


온톨로지(ontology)라는 철학의 존재론적 사유가 있다. 이 온톨로지는 존재에 대한 개념분류를 통해 존재를 이해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즉 어떻게 사유하느냐에 따라 존재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이 사유는 '개념'에 의존하며, 그 개념은 '단어'이고, 결과적으로 '호칭'이기 때문에 결국 호칭 문제는 존재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존재의 문제는 다른 말로 정체성의 문제다. 개념이 존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므로 북에서 온 사람들에게 '탈북민'이냐 '북향민'이냐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언어는 존재를 규정하는 경계선이다. 한 집단을 호명하는 방식은 그 집단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과 권력 관계를 투영한다. 언어는 단순히 현실을 기술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고 창조하는 힘을 지닌다. 특히 '북한이탈주민'을 지칭하는 용어는, 한국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정책의 대상으로 설정하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첨예한 지표다.


현재 법적 용어인 '북한이탈주민'과 사회적 통용어인 '탈북민(탈북자)'는 모두 '이탈(離脫)'과 '탈출(脫出)'이라는 행위에 기반을 둔다. 이 '탈(脫)'이라는 글자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도망자', '배신자'라는 부정적 함의를 내포하며, 동시에 냉전 시대의 '귀순자(歸順者)'라는 용어가 지녔던 반공 이데올로기적 잔재를 고스란히 계승한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러한 호칭은 북향민 개인의 존재론적 정체성을 특정한 틀로 속박하고, 사회통합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탈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속박을 깨고 나와야 할 당위성을 철학적, 사회문화적, 정책적 차원에서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향민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한국 사회에 정착한 3만 4천여 명의 삶을 어떻게 '과거의 이탈자'에서 '미래의 주체'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3. 현재 ‘탈북민, 탈북자’ 호칭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① 현재 '탈북민, 탈북자' 호칭은 이데올로기적 속박으로 작동한다.


첫째, 분단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탈북'이라는 용어는 북한을 탈출했다는 의미만 강조하기 때문에 분단의 상징 그 자체로 기능한다. 이 호칭은 결국 한국 사회에서 당사자의 역할과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그들의 정체성을 '탈출'이라는 한 가지 행위에만 머물게 강제한다.


둘째, 체제 선전의 도구화로 작동한다. '탈북민'으로 호명하는 정체성은 대한민국이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기표(signifier)로서 끊임없이 활용된다. 이로 인해 탈북민은 체제 승리 선전에 앞장서도록 강요되거나 이용당하기도 하며, 쉽게 비교 대상으로서의 타자(他者)로 전락한다.


셋째, 존재의 단절을 강요한다. '탈북민'라는 단어는 북한과 단절되어 있고, 다시금 연결될 가능성이 차단된 존재로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은 탈북민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낙인으로 인식하게 하고 철저히 ‘한국사람’으로 동화되어야 하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② 호칭의 변화는 존재의 변화다.


호칭의 변화, 즉 다르게 부른다는 것은 그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일부 탈북민 당사자와 전문가들은 "호칭 하나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냐"며 실질적인 정착 지원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호칭의 본질적 힘을 간과하는 현실 안주적 태도이다.


호칭이 변화하는 것은 존재가 변화하는 것이다. 기존의 '탈북민'은 존재가 '단절'과 '이탈'에 놓여 있어 '먼저 온 통일'이라는 수식어와 존재가 어긋나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


호칭 변경은 이들을 '도망자'나 '배신자'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주체적 동력을 부여하는 언어적 선언이다. 헤르만 헤세 작품 <데미안>의 “태어나려면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명제처럼, '탈북'이라는 낡은 세계를 깨고 나와야만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존재로 온전해질 수 있다.


③ 철학적·존재론적 결핍: '탈(脫)'이라는 정체성의 감옥으로 작동한다.


첫째, 존재의 영구적 귀속으로 작동한다. '탈북민'이라는 호칭은 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탈북'이라는 단 하나의 과거 행위로 환원시킨다. 경계를 넘었더니 정체성에 갇힌 것이다. 자유를 찾아 경계를 넘은 행위가 도리어 '탈북'이라는 정체성의 감옥을 만들어낸 역설이 발생한다. 이들은 남한 사회에서 10년, 20년, 오래 살아도 여전히 '탈북자'일 뿐이며, 현재가 과거의 행위에 구속되어 존재의 확장이 차단되어 실존적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고향의 상실과 자기 부정이 강요된다. '탈(脫)'은 근원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는 탈북민에게 '북한'이라는 뿌리, 즉 고향, 유년 시절, 문화적 원형, 살아온 역사, 자기 삶의 서사를 부정해야만 '진정한' 남한 시민이 될 수 있다는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삭제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자기 식민화' 과정이 된다.


④ 사회·문화적 결핍: 타자화(他者化)와 낙인의 재생산으로 작동한다.


첫째, '이방인'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놓인다. '탈북민'이라는 용어는 남한의 주류 사회와 이들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긋는다. 이들은 '우리'와 구별되는 '그들'로 타자화되며, 동정, 호기심, 혹은 잠재적 간첩이라는 이중적 시선에 노출된다. "북한스러운 말투"는 숨겨야 할 낙인이 되며, 평범한 '한국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끝없는 신뢰투쟁을 요구받는다.


둘째, 분단 이데올로기의 문화적 소비재로 작동한다. '탈북'이라는 정체성은 미디어와 대중문화 속에서 자극적인 소재로 빈번하게 소비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삶은 종종 과장되거나 왜곡되며, '체제 우월성'을 입증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는 이들의 다층적인 삶을 '탈북 스토리'라는 단일한 서사로 납작하게 만들며 사회적 편견을 강화한다.


⑤ 정책적·정치적 결핍: 반공주의의 유산과 정책의 모순을 드러낸다.


첫째, 냉전적 패러다임의 답습이다. 현행 법률 용어 '북한이탈주민'은 1962년 '월남귀순자'에서 시작된 냉전적 시각의 연장선에 있다. '귀순(歸順)'에서 '이탈(離脫)'로 용어는 순화되었으나, 여전히 이들을 '보호', '관리', '동화'의 대상으로 보는 정책적 관성이 잔존한다.


둘째, 이념적 도구화의 함정에 빠진다. '탈북'이라는 정체성은 이들을 반공 이데올로기 경쟁의 '전리품' 혹은 '증인'으로 활용하는 정치적 유혹을 야기한다. 이로 인해 ‘탈북민’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특정 이념의 대변자로 강제 호명되기도 하며, 이는 이들의 시민적 주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셋째, 정책 목표와의 불일치를 야기한다. 정부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통합'이지만, '탈북민, 탈북자'라는 호칭 자체가 이들을 법적, 사회적으로 분리하고 '이탈자'로 규정함으로써 통합을 가로막는 존재론적 모순을 야기한다. 언어가 분리를 조장하는 한, 정책은 통합을 이룰 수 없다.



4. 왜 ‘북향민’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필요한가?

현재 탈북민 호칭 대신 '북향민(北鄕民)' 호칭을 공식용어로 채택해야 할 당위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철학적 당위성으로, '행위(脫)'에서 '근원(鄕)'으로의 전환을 유도한다. '북향민'은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는 존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을 기존에 탈북, 즉 '탈출'이라는 과거의 사건으로서의 행위가 아닌, 누구나 갖고 있는 '고향'이라는 보편적 근원으로 전환시키는 철학적 사유이다. 고향(故鄕)은 이념적이지 않다. 고향은 모든 인간이 지닌 실존적 뿌리이자 정체성의 원천이다. '북향민' 호칭은 이들에게 기존의 '탈북자'라는 호칭에 내재된 '탈출자, 이탈자'라는 부정의 낙인을 지우고, '고향을 가진 존재'라는 온전한 인격적 지위를 회복시켜준다.


둘째, 사회·문화적 당위성으로, 타자화의 해체와 보편적 수용성을 확보한다. '북향민'은 '이탈자'나 '이방인'이 아닌, 그저 '북쪽이 고향인 우리 이웃'으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이는 '실향민', '호남향우회', '영남향우회' 등 한국 사회 내의 출향민(出鄕民) 개념과 동일 선상에 위치함으로써, 북향민을 타자화 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문화적 기반을 제공한다.


셋째, 존재론적 당위성으로, ‘고향’으로 사유하는 연결을 통한 자기 회복이 가능하다. '북향민'은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와 별개로,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유년의 기억과 살아온 삶을 긍정하고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한다. 기존 '탈북자'라는 호칭이 과거와의 단절을 강요했다면, '북향민' 호칭은 과거의 고향을 껴안고 현재 한국 사회에 서서 미래 통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존재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즉 북향민 호칭은 이데올로기의 구속을 벗어나는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해방을 의미한다.


넷째, 정책적 당위성으로, 통합의 기반을 제공한다. '북향민'은 더 이상 기존의 '체제이탈자'나 '자유투사'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수사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남과 북의 삶을 모두 살아내고 경계를 뛰어넘은 '창조적 경계인' 이 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기존 '탈북민' 호칭이 남북을 가르는 '단절선'을 상징했다면, '북향민'은 남북을 잇는 '연결고리'이자 '다리'로서의 정책적 역할을 상징한다. 이런 존재론적 확장 위에서만 북향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북향민 정책은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두 체제에서의 삶, 경계적 경험을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5. 주요 쟁점: 반론에 대한 반박


'북향민'이라는 호칭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적 반론을 직시하고, 호칭의 전환을 실질적인 정책의 전환으로 연결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호칭 변경은 실질적인 정착 지원 문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호칭의 전환을 통해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호칭 변경에 대한 주요 쟁점에 대한 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반론은 “호칭 변경보다 실질적 지원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가장 강력한 반론으로 "호칭 바꿀 시간에 일자리나 차별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하다"는 현실적 비판이다. 이는 북향민 당사자들과 연구자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나의 반박은 이렇다. 호칭변경과 지원정책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언어'와 '현실'을 분리하는 잘못된 이분법이다. 언어는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규정한다. '탈북민'이라는 언어가 차별과 편견이라는 '현실'을 재생산해왔다. 따라서 '북향민'이라는 새로운 언어는 차별을 해소하고 상호 존중을 이끄는 새로운 정책을 창조하는 선결 조건이 될 수 있다. 호칭 변경은 실질적 지원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지원의 철학적 토대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실질적인 지원 정책 역시 ‘시혜적 관점’을 벗어나 ‘상호 보완적’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두 번째 반론은 “'탈북자' 호칭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당사자들도 있다”는 반론이다. 일부 당사자들은 '탈북'이라는 용어가 자신의 목숨 건 결단을 상징하며 정체성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맞다. 나도 동의한다. ‘탈북민’이든 ‘탈북자’든 호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반박은 이렇다. 개인의 선택적 정체성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적 호칭(Public Name)'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전체의 편견을 조장하지 않고 미래 세대(북향민 2, 3세대)에게 낙인을 대물림하지 않을 보편성과 비차별성을 담보해야 한다. '북향민'은 개인의 '탈북' 경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는 더 포용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공적 언어로서 기능할 수 있다.


세 번째 반론은 “호칭 변경은 북한정권의 비위 맞추기”라는 반론이다. 북한 출신인당사자이기도 한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을 비롯한 보수당 일각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민주당 정부에서 정동영 장관이 북한의 눈치를 본다며 비위를 맞추기 위해 호칭을 변경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나의 반론은 단호하고 명확하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다. 이런 나쁜 정치는 조속히 퇴출돼야 할 것이다. 북향민 호칭은 당사자들이 만들었고 써왔으며, 호칭 변경 운동도 해왔다. 이 사실을 왜곡하여 마치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쁜 정치적 의도일 뿐이다.



6. 호칭 변경과 제도적 과제


현재 법률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새로운 호칭 ‘북향민’으로 법률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공론화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통일부가 부처에서부터 자체적으로 공식화해서 사용하는 방식처럼 단계적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내용으로 지난해 10월에 통일부에 자문했고, 실제로 통일부는 같은 해 12월 30일 공식화 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단계적 적용을 제안한다.


첫째, 투트랙(two-track)으로 호칭 전환 로드맵을 구성이다. 먼저 ①단기적인 사회적 접근이다. 법률 개정('북한이탈주민보호법')은 장기 과제로 추진하되, 통일부를 포함한 모든 정부 부처, 공공기관, 언론이 즉각 '북향민'을 공식적인 사회적 호칭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다음으로 ②장기적인 법률적 접근이다. 지금처럼 법률 개정 없이 사회적으로 호칭을 사용하다가 사회적 합의가 성숙되는 시점에, 북향민 호칭을 법률 개정을 통해 법적 정당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둘째, 미디어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①정부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협력하여, 북향민 호칭을 사용하도록 협조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향민을 왜곡하거나 희화화하고 정형화하는 미디어 재현 대한 명확한 윤리적 기준 등 심의 규정을 마련하고, 편견이나 차별을 조장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경고 등 실질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 나아가 ②북향민의 다양하고 주체적인 목소리가 공정하게 반영되는 미디어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북향민 지원 정책을 ①‘동화’에서 ‘통합’의 기조로 나아가야 한다. 기존의 '남한화, 한국화' 정책 중심에서 벗어나, 북향민의 북한에서의 삶과 경험을 한국 사회가 이해하고 존중하는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②‘시혜적’ 관점에서 ‘역량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단순한 정착금과 복지 지원이 아니라 이들의 북한에서의 삶과 경험, 다른 배경과 지식을 미래 통일의 인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역량강화를 위한 정책적 관점이 필요하다.


넷째, 북향민 정체성을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분리해야 한다. 정부는 북향민을 더 이상 체제 선전이나 반공 교육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경험은 단순히 ‘북한 체제의 폭력성 고발’을 넘어, '분단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라는 보편적 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접근하는 사람 중심 교육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7. 통합을 넘어 통일로


북향민 호칭은 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니다. 이는 '이탈자'라는 단절된 존재로 부정의 낙인을 지우고, 대신 지금은 갈 수는 없지만 '고향이 있는 존재'로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며, '관리'의 대상에서 '통합'과 '연대'의 대상으로, 나아가 '통일'의 주체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혁신의 시작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북향민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채택하고 관련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포용성을 한 단계 높이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이제는 '탈북'이라는 과거 행위로 정체성을 묶어두지 말고, 그들을 북향민이라는 주체로 호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존재론적 정당성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작성: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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