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과 혐중 전략 분석' 상편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사법부는 12.3 비상계엄 선포를 위로부터의 내란이자 친위쿠데타로 규정했다. 이 사건은 헌정사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비상계엄 선포와 그 이후 전개된 정치적 격변은 단순히 헌정질서 위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여러 담론 지형이 급격하게 재편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는 혐중(嫌中) 담론의 폭발적 확산이다. 12.3 내란을 기점으로 혐중 담론은 양적 폭발과 함께 질적인 프레임 전환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잠재적 혐중 정서의 누적
한국 사회의 대중국 정서는 역사적으로 복합적인 양상을 보여 왔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경제 교역이 확대되고 인적 왕래가 증가했지만, 역사 인식, 동북공정, 문화공정 등에서 갈등이 반복되었다. 12.3 내란 이전의 혐중 담론은 주로 경제 보복, 문화 공정, 미세먼지 등 경제·문화·환경 프레임에 머물렀다.
경제적 차원의 반중 정서는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이 취한 경제 제재가 결정적이었으며, 많은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언제든 보복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문화적 차원에서는 김치와 한복 논란이 대표적이었다. 중국 관영매체가 김치 국제 표준을 주장하거나,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이 등장한 사건들은 한국 문화를 자국의 하위문화로 왜곡한다는 서사를 형성했다. 환경 프레임 역시 매년 봄철마다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원인이 중국발 대기오염으로 지목되며 혐중 담론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이러한 네 가지 프레임(역사, 경제, 문화, 환경)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중국은 한국에 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공통된 결론으로 수렴되었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이러한 반중 정서는 평상시에는 잠재되어 있다가, 특정 사건에서 혐중 정서로 활성화될 수 있는 트라우마적 요소였다. 내란이라는 국내 정치적 위기 상황은 바로 이러한 잠재된 정서를 폭발적으로 분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혐중 프레임의 전환
그러나 12.3 내란 이후 나타난 혐중 담론은 이전 시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이전의 경제·문화·환경 프레임에서 안보·정치 프레임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일어났다. 내란 이후에는 중국 간첩, 국가 안보 위협 등으로 담론의 성격이 뚜렷하게 달라졌으며, 중국개입 부정선거론, 선거연수원 중국인 간첩설, 탄핵 집회 중국인 동원설 등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이러한 프레임 전환의 의미는 크다. 경제 문제나 문화 갈등은 중요하지만 당장의 체제 생존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보 위협은 국가와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정치·안보 프레임은 중국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는 적으로 규정되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일부 시민사회는 중국의 지시를 받는 집단으로 규정한다. 이는 국내 정치적 위기를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담론의 검증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는데, 음모론은 검증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12.3 내란은 그야말로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많은 설명과 변명들로 가득한 복잡한 정치적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의 동기를 쉽게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은 인지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인지적 동기 측면에서 볼 때, "부정선거론, 중공과 대한민국공산화" 음모론은 매우 단순하고 명확한 설명을 제공한다. 모든 복잡한 사태를 "중국의 개입"이라는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기의 측면에서도,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는 중공에 맞서 싸우는 "애국자, 애국보수"로 자신들을 위치시킴으로 강력한 소속감과 긍정적 자아상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혐중: 정치권력의 생존 전략
이러한 담론의 변화와 확산은 자연발생적인 여론의 흐름이라기보다, 12.3 내란 정국에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정치 엘리트의 전략적 동원의 결과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12.12 대국민 담화는 비상계엄 이후 혐중 담론 확산의 결정적 계기였다.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중국인이 드론으로 국가정보원과 미군 항공모함 촬영 사건을 거론하며 중국인 간첩설을 직접 언급했다. 나아가 현행 법률로는 외국인의 간첩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며 야당이 간첩법 개정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고, 망국적 국헌 문란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한다면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 삼림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위자가 공개적으로 중국 위협을 언급함으로써, 이것이 혐중 담론에 정당성과 확산력을 부여하는 공적 권위의 역할을 했다. 이는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으로 제시한 '종북 반국가세력'에 '친중 세력'을 추가함으로써, 비상계엄의 필요성을 강화하려 했던 안보화(securitization) 전략의 일환이다. 12.3 당일 담화에서는 "종북" 프레임만으로 비상계엄의 정당화를 시도했으나, 이것이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하자 9일 후인 12.12 담화에서는 "친중" 프레임을 추가함으로써 정당화 논리를 강화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혐중 담론은 탄핵 반대 여론을 결집시키고 보수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수단으로 전략적으로 활용되었다. "더불어민주당=친중=반국가세력"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냄으로써, 민주당과 탄핵 찬성 세력 전체를 "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낙인찍을 수 있었다. 국가 안보라는 절대적 가치 앞에서 정치적 반대는 비애국적이거나 또는 반국가적으로 규정되기 쉽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처럼 12.3 내란 이후 폭발한 혐중 담론은 불확실한 위기 상황에서 대중의 불안 심리를 파고든 음모론과 정치권력의 생존 전략이 맞물려 작동한 복합적 메커니즘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