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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입장정리 Jan 23. 2023

편의점과 자연선택

자취인들에게 편의점이란 원시인들의 사냥터와 마찬가지이다. 나는 만 년 전 주먹도끼를 움켜쥐고 사냥터에 나가는 한 마리의 우가우가맨처럼 카드를 움켜쥐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언뜻 들으면 비슷한 것 같지만 다행히도 일만 년 동안 인류는 크게 진화했다. 원시인의 경우 토나오는 뜀박질과 피나는 도끼질과 돌던지기질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지만 나는 열심히 고른 다음 카드만 긁으면 된다는 차이점이 진화의 증거이다. 하지만 그 카드라는 것의 메커니즘을 면밀히 살펴보면 나 또한 토나오는 출근과 피나는 워드질 엑셀질 등을 통해 카드질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잘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간에 노동을 통해서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일만 년동안 변하지 않은 법칙인 셈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그동안 배만 긁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 우리는 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 후 그 때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산뜻하게 가지고 나와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혹한의 빙하기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던 먼 과거에 ‘저기 매머드가 있네, 삼 일 동안 사냥감을 찾으러 다녔는데 드디어 하나 건졌군 그래. 어서 사냥 준비를 갖추세.’ ‘음.. 그런데 말이야. 나는 오늘 매머드 고기가 좀 땡기지 않는 걸? 보다 씹는 맛이 고급스러운 버팔로를 먹고 싶은데?’ 라고 한다면 그 우가맨은 동료들의 주먹도끼가 얼마나 단단한지 스스로의 머리로 테스트를 해 보아야 할 게다. 



그런데 이것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산뜻하게 편의점 식품을 고르기 위해서는 계좌에 돈이 필요하고, 계좌에 돈을 주는 건 직장인데, 백수로 지내던 사람이 직장을 고를 때 ‘음 저 직장은 좀 내 입맛에 맞지 않는데, 난 좀 더 가볍고 쿨한 직장을 원해.’ 라고 하면 어머니가 즐겨 쓰시는 파리채의 효과를 등짝으로 체험해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먹도끼보다는 파리채가 생명에는 덜 해로우므로 21세기는 진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려야 하겠다.



이런 상념과 함께 편의점에 들어서면 제 본분에 따라 몰입해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 알바생과 먹을거리의 생태계가 나를 반긴다. 내가 좋아하는 편의점 푸드는 핫바와 라면, 샌드위치이다. 최근에 좋아하는 것은 햇반에서 만든 덮밥류 레토르트 식품인데, 특히 그 중에서도 마파두부덮밥이 아주 훌륭하다다. 이 마파두부덮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반숙 계란프라이를 넣고 참기름 1작은술을 살짝 첨가하면 맛이 아주 그만이다. 



편의점의 메뉴들은 상당히 역동적이어서, 어제까지만 해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무언가 같지만 같지 않은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것들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수많은 변화 속에서 굳건히 살아남는 메뉴도 있다. 특정 편의점의 편세권에 살다 보면 편의점 메뉴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볼 수 있다. 최근의 변화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메뉴는 바로 쇠고기 미역국이었다. 나는 입맛이 보수적인 편이라 먹어보지 않은 것들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참기름을 두른 팬에 쇠고기를 연기나도록 볶아 미역국을 끓였다는데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전자레인지에 조금 덜 익혀서 밥알이 살짝 단단하기는 했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편의점 메뉴의 변화는 마치 생명의 진화 같아서, 인간의 선호에 의해 도태되는 종류도 있고 특정 방향으로 진화하는 종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포식자에게 잘 먹힐수록 더 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흡사 포식자에게 먹혀 씨를 퍼트리기 위해 달콤하고 예쁜 과육들을 발달시킨 과일들과 같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생명의 진화를 자연선택으로 설명한다면, 편의점 메뉴의 진화와 도태는 인간선택설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게 따지자면 요즘 들어 인간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싶다. 맛있는 편의점 메뉴든 귀여운 고양이든 예쁘고 잘생긴 유투버든 간에 인간이 좋아하는 것들이 번식하는 시대니까. 그래서 오늘날이 인간선택의 시대라고 한다면, 편의점 메뉴들이 퍼트리고 싶어하는 유전자는 무엇일까 생각하던 도중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해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튼 오늘의 메뉴는 육개장에 삼각김밥이다. 클래식이 클래식인 데는 이유가 있다. 부디 그들의 유전자가 오래 남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게걸스럽게 국물을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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