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애플이다.
현재 아이폰, 에어팟, 맥북, 아이패드, 애플워치 총 5개의 애플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목록만 보면 나를 애플이 없으면 발작하는 앱등이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그저 생각 없이 살다 돌아보니 애플 미치광이같은 콜렉션이 만들어져 있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전화와 카카오톡이 되면 스마트폰의 본디 용도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십대 초반에는 대충 싸고 적당한 안드로이드 폰을 썼다. 모델명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흰색이었기 때문에 흰둥이라고 불렀다. 흰둥이는 동그랗고 귀여웠지만 성능은 그렇지 못했다. 처음에는 빠릿빠릿했으나 속도가 슬슬 느려지더니, 나중에는 켜는 데만 10분이 소요되었다. 어이가 없었다. 귀엽다 귀엽다 해주니까 전기 먹고 살찐 돼지가 되었는지 한발자국도 움직이려 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흰둥이를 켜고 끌 일이 있으면 라면을 끓였다. 라면을 다 끓이고 먹는 도중에 부팅이 완료되어서 기다리는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느려진 흰둥이를 무엇으로 바꿀까 고민하던 와중 함께 알바하던 형이 아이폰을 추천했다. 그가 말하길 아이폰은 감가상각이 적으므로 깨끗이만 쓰면 되팔기 좋으며, 그런 이유로 자신은 쓰던 것을 중고로 팔고 차액을 더해 최신 버전 아이폰을 사는 일을 반복한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좀 하남자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이것이야말로 내 주머니 사정도 생각하고 지구 환경까지 생각하는 구매라는 것을 깨닫고 무릎을 탁 쳤다. 다음날 즉시 흰둥이를 처분하고 아이폰을 샀다. 처음 보는 아이폰은 디자인이 뭔가 있어 보였고, 그 구조가 안드로이드와 전혀 달랐다. 과연 'Think different'... 나는 감탄하며 마치 비데를 처음 써 보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버튼을 눌러 보며 적응하였다. 아이폰은 쓸만 했다. 기본 기능도 괜찮았고 보안도 좋았다. 무엇보다 켤 때 10분씩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처음에는 예뻐서 애지중지하며 지문이 남을까 먼지가 낄까 매일 닦아 주었지만 두어 달 지나자 집에 오면 핸드폰을 침대에 내던지는 것으로 귀가의 즐거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면 소홀해지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그 후로 지금까지 버전을 바꾸어 가며 아이폰을 써 왔다. 특별히 애착이 있다기보다는 관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플페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싫어하지만 나는 애초에 애플페이란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 또한 느끼지 못한다. 조선시대에 등짐 지고 물물교환만 하던 상놈이 카드 결제가 없다고 불만을 가질 리가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통화 중 녹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나는 지금까지 통화 녹음이 없어도 삶을 잘 헤쳐나갔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물론 나중에 통화 녹음이 되지 않아서 큰 피해를 보게 된다면 애플 기기들을 불사르고 침을 뱉을 것이다.
문득 생각났는데 내가 보기에 아이폰 최대의 단점은 전화번호를 실수로 누르면 바로 전화가 가게 설계해두었다는 점이다. 통화 목록에서 실수로 전화번호를 터치하면 그 즉시 상대방에게 전화가 걸리며, 0.1초만에 끊어도 상대방의 기록에 남는다. 친한 사람이면 대충 실수였다고 퉁치면 되지만, 띠꺼운 직장 상사 혹은 쿨한 척 하고 헤어진 전 여자친구처럼 껄끄러운 상대에게 전화가 걸리면 즉시 아이폰을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번호를 눌렀을 때 [전화를 거시겠습니까? 예/아니오]를 넣는 것이 그렇게도 귀찮은 일일까?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애플 관계자 중에 전화를 원터치로 걸지 않으면 돌아버리는 사람이 한명 껴있나 보다.
참고로 감가상각이 적다는 점에 현혹되어 샀는데 아직까지 쓰던 아이폰을 팔아본 적이 없다. 모조리 고장이 날 때까지 굴리거나 케이스도 없이 호되게 떨어뜨려서 액정이 작살이 났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되팔아 보고 싶다는 것이 지금 나의 작은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