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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입장정리 Apr 02. 2024

힘 빼기와 해파리

수영을 할 때면 50미터를 한 번만 왕복해도 입에서 피맛이 나고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숨을 쉰다. 하지만 옆 레인의 할머니들은 그 긴 50미터를 쉬지도 않고 네댓 번씩 왕복한다. 나는 그 할머니들이 전직 해녀인지 아니면 내 체력이 수명을 다 해버린 것인지 고민했다. 수영 도중 해파리처럼 여유롭게 수영하던 할머니의 자태를 보고 크게 깨달았다. 나는 온몸에 힘을 빡 준 채 수영을 하니 조금만 해도 체력이 방전되고, 할머니들은 힘을 죄다 빼고 필요한 부분에만 힘을 주기 때문에 수많은 왕복에도 불구하고 강한 여유를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수영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힘이 너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터 일을 할 때도, 만화를 그릴 때도, 지금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자기계발을 위해 이것저것 시간표를 짜고 독서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해내야 한다, 잘 해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이 온몸에 힘을 잔뜩 주게 만든 원인일 것이다. 그 뿌리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는 것이었다. 업무 중 실수를 하고 스스로를 질책할 때는 내가 실수를 하면 사람들이 나를 한심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었고, 만화를 그릴 때도 (남들이)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체력 소모를 촉진시켰다. 


라캉인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똑똑한 사람이 말하길 나는 나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남들이 보는 나를 통해 스스로의 자아를 구성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자아의 형성에서부터 결국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신경쓰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남들의 생각에 신경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족쇄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일이 오엑스 퀴즈가 아닌 것처럼 타인에 대한 의식도 스펙트럼이지 싶다. 그래서 요즘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의도적으로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잘 되지 않으면 수영장에 해파리처럼 떠 있던 할머니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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