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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Jul 01. 2023

나는야 1년 반차 드라이버

다섯 번을 긁었어도 운전은 즐거워

230306



나는 이제 막 1년 반 운전 경력을 갖게 된 운전자다. 총 주행 거리 2만 2천 7백 킬로. 1년 좀 넘게 탄 것 치고는 많이 탄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처음 몰아보는 거라 그 말이 날 띄워주려고 하는 말인지, 진짜 많이 탄 건지 알 길은 없다. 어쨌든, 개인적으론 먼 곳도 여기저기 다녀보고 경부 고속도로와 서울 도로는 제법 익숙해진 정도가 되었으니 이만하면 초보 딱지는 떼어도 될 법하지 않겠냐고 홀로 으스대는 수준이 되었다. 운전 연수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으스댐이다.


운전면허를 딴 건 대학교 1학년쯤이었나? 방학을 맞이해 대전에 있는 본가에 내려갔을 때다. “요즘 세상에 운전 못 하면 아무 짓도 못 한다.”는 엄마의 신조에 이끌려 어영부영 면허 학원을 등록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은 가야 하는 먼 곳에 있는 운전면허 학원은 어째 동네 분위기도 강사 분위기도 우중충하기 짝이 없어서 잔뜩 위축된 상태로 다녔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역사상 가장 운전면허 따기가 쉬웠던 시기였으므로, 운 좋게 한 번에 필기-기능-도로 주행 시험을 줄줄 통과해 면허를 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운전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필기시험은 ‘누가 누가 나쁜 사람일까요?’ 를 고르는 수준이었고, 장내 기능시험은 살살 차 몰아서 핸들 좌로 몇 번 우로 몇 번 돌리고 후진하면 끝나는 수준이었으니 떨어지는 게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도로 주행도 하필 제일 쉬운 코스를 받아서 멋지게 통과.


그렇게 나에겐 제2의 신분증이 생겼다. 그 신분증은 향후 약 10년간 술집에서 어쩌다 한 번 신분증 검사를 할 때나 내보이는 ‘술 주세요’ 통행권 같은 것이 된다. 차는 여전히 내겐 너무 크고 복잡한 기계 덩어리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렇게 면허를 묵혀두던 어느 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덜컥 차를 사게 되었다. 차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 와버리고 만 거다. 장롱 면허를 들고 무작정 도로에 나섰다간 그날 당장 뉴스의 사건 사고 면에 뜰지도 모를 일이니, 일단 운전 연수를 받기로 했다. 나름대로 한 번에 면허 시험을 통과한 경력이 있으니 연수도 수월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 번 수업을 받고 나면 온몸이 후들거려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상태로 네 번의 연수를 받았다. 그렇게 난 차선은 맞출 줄 알고 주차도 어떻게 하겠는데 평행 주차는 죽어도 못하는 운전자가 되었다. “강사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운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하고 마지막 문자를 보내긴 했는데, 그냥 영영 뚜벅이로 사는 것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운전은,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너무 무서웠으니까.


그리고 나에게 차가 생겼다. 연수는 모닝으로 받았던 주제에, 꼴에 차는 큰 게 좋겠다고 냅다 지른 SUV 전기차. 그걸 끌고, 아무의 도움도 없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은 대전에서 서울 집까지의, 퇴근 시간이 겹친 약 두 시간 반의 고속도로 주행. 어디 이상한 막다른 길에 들어가는 바람에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하긴 했는데, 그래도 일단 살아서 집엔 도착했다. 오른쪽 뒷바퀴 쪽에 생긴 멋진 스크레치와 함께. 다리가 발발 떨리는 상태로 엄마한테 보고차 전화를 했더니, 용케 울지는 않는다며 깔깔 웃는 야속한 비웃음만 왕창 들었다.


그 후, 나는 오른쪽 뒷바퀴만 총 다섯 번을 긁었고, 타이어에 한 번 펑크가 났으며, 눈 오는 새벽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 배터리 경고등을 보며 엉엉 울기도 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방전으로 보험사를 불러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2만 2천 킬로 운전자가 되었다. 차가 드르륵 긁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그냥 냅다 차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쨌든 그 차는 여전히 나와 함께 해주고 있다. 차를 산 지 1년이 되었을 땐 어쩐지 이 녀석이 기특하게 느껴져, 캠핑가서 고깔 모도 씌워주고 생일 파티도 해줬다. 케이크는 내가 먹었지만.


그렇게 차를 몰다 보니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나는 의외로 운전하기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운전석에 앉으면 신나는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사람이라는 걸. 차를 사자마자 잘 몰지도 못하는 주제에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었던 건 단순히 새것을 산 들뜬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무 우울해서 그냥 바람이나 쐬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 때도 나는 차를 몰았고, 너무너무 신나서 어딘가 가고 싶을 때도 차를 몰았다. 드럽게 가기 싫은 본가를 억지로 갈 때도 고속도로에 있을 때만큼은 신이 났다. 한 번에 깔끔하게 주차하면 하루 종일 ‘나는 베스트 드라이버’라며 우쭐거렸다. 오롯이 나만이 있는 작은 공간 안에서 크게 음악을 틀고 노래도 불렀고, 혼잣말도 왕창 했다.


차 덕분에 나의 세상도 넓어졌다. 이젠 생전 갈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멀고 먼 곳을 내비게이션에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찍는다. 차는 나를 데리고 서울 곳곳을 누볐고, 강원도에도 데려다줬으며, 쉼 없이 달려 부산도 찍었다. 캠핑이라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나 운전 못하겠다고 연수받을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얼굴을 했던 과거의 내가 보면 까무러칠 일이다.


얼마 전 캠핑을 다녀왔다. 막상 캠핑을 갔더니 캠핑장에 있던 순간보다 캠핑장에 가는 길이 더 기억에 남았다. 이미 다 진 줄 알았던 벚꽃이 도로 양옆으로 만개해 있었고, 바람이 불면 연분홍 꽃잎이 비처럼 쏟아져 눈앞에 나풀거렸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굽이치는 길을 깊숙이 들어갈수록 바뀌는 경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로를 달리며, 그날도 ‘나는 생각보다도 더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못하겠다고 때려치우고 싶었던 것을 버티고 버텨 간신히 해냈더니, 어느새 이만하면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넘어 즐길 수 있게 된 거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운전 말고도, 내가 무작정 겁을 내고 시도하지 못했던 것 중엔 의외로 잘하고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끈기가 부족해 조금만 힘에 부치면 좌절하고 관두기 일쑤에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먹고 돌아서곤 하지만, 그 고비를 어떻게든 버티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차선 하나도 못 맞추던 내가 차를 몰고 이번엔 어딜 가볼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 것처럼. 핸들을 슬슬 돌리며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비록 이번엔 내 차의 타이어를 긁어 터뜨렸지만, 즐겁게 집을 나서다가 그대로 주차장에 차를 넣어두고 택시를 타야 했지만, 이젠 이 정도 일로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에 울진 않는다. 하하. 견인도 되어보고. 나도 슬슬 어엿한 드라이버로 커가는 모양인걸? 차만 보면 한숨만 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많이 컸다 나 자신. 훗날의 나는 또 어디에서 많이 컸다고 우쭐댈 수 있으려나?


물론 이러나저러나 안전운전이 제일이다. 미안하다, 내 자동차야. 이제부턴 진짜 안 긁을게.





이 글을 쓰고 2개월이 지났다. 이젠 2만6천키로 운전자다. 차를 많이 몰긴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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