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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Dec 28. 2023

그랬으면 좋겠다

언젠가 다가올 미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상을 그려본다. 가능한 이상적인 형태로. 망상에는 돈도, 시간도 들지 않으므로 현실적인 조건은 모두 버린 채 자유롭게 그려보기로 한다. 나는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 걸까. 


미래를 그려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종종 다 같이 모일 때면 술 한 잔 없이도 종일 웃고 떠들 수 있는 나의 ‘떡볶이팟’ 친구들. 여럿보단 혼자가 좋고, 남편보단 친구가 좋다는 그들에게 꼭 가까이서 살자고 몇 번씩 신신당부했었다. 그러니 나의 미래 망상엔 반드시 이들이 동네 친구로 등장한다. 룸메이트는 안 된다. 우리는 뭣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니까. 


함께 모여 사는 곳은 경기도가 좋겠다. 어디든 분위기 좋은 카페 몇 군데와 술집이 있는 동네여야 한다. 수많은 지역 중 굳이 경기도인 이유는 역시 이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 그러나 얄팍한 상상력으론 더 멀리 달아나진 못한다. 현실적인 조건을 모두 버린다고는 했지만 역시 친구들의 직장 문제도 걸리고……. 좋아하는 여러 동네나 극장 같은 것도 눈에 밟히고……. 

떡볶이팟은 올 크리스마스에도 모였다. 세 가지 보드게임을 하고, 끝도 없이 먹고, 15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떡볶이가 당긴다고 카톡이나 SNS에 중얼거리기만 하면 잠옷 바지에 슬리퍼를 찍찍 끌고 길을 나서도 금세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곳에 모여 살고 싶다. 그러나 역시 좀 더 솔직하게 망상을 부풀려보자면, 같은 건물에 모여 살고 싶다. 같은 집 말고, 집이 모여 있는 같은 건물. ‘오마이걸’ 멤버들이 한 빌라에 모여 사는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함께 모여 살 건물을 ‘오타쿠 멘션’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무언가에 미쳐 덕질을 하고 있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오타쿠들이라 붙은 이름. 2층 3층 되는 낮은 건물이어도 엘리베이터는 꼭 있어야 한다. 각자의 집은 적당히 방 두 개 정도는 딸린 크기였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층고가 높아야 한다. 

건물 어딘가엔 우리가 모두 모일 수 있는 공용 공간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따금 우리는 그곳에서 떡볶이도 먹을 거고, 샤부샤부도 해 먹을 거고, 보드게임도 할 거다. 매번 모일 때마다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마음껏 드러누워야 하니 좌식이 좋겠고, 큰 스크린이나 TV 정도는 둬야겠다. 그리고 보드게임을 잔뜩 쌓아 놔야지. 날이 좋으면 간이 캠핑 느낌을 내며 즐길 수 있도록 작은 발코니나 옥상도 있었으면 좋겠고. 


떡볶이팟 멤버가 아닌 나의 베프 언니도 근처에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벌써 이 동네에서 함께 살자느니 하며 서로를 부추기고 있는데, 아직은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이 망상 속 미래에선 언니도 나의 동네 친구였으면 한다. 밤이 너무 늦어 걱정하다 만남을 미루지 않고, 오늘 하루 힘들었으니 술이나 한잔 하자며 만났다가 술보단 수다를 잔뜩 마시고 돌아가는 그런 하루가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늘만을 기다려왔다고 하면, 친구들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면서도 소품을 끌어와 열심히 장식해주고, 담요를 들고 서서 배경도 가려준다. 


그리고 모두가 저마다 재미있는, 혹은 재미는 없어도 적당히 할 만한 일을 하며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 그땐 작가였으면 좋겠다. 작가가 거창하다면 대체로 글을 써서 벌어 먹고사는 프리랜서. 이따금 마감에 치이고 자괴감에 빠져 힘들어하더라도 자유라는 숨통을 트여놓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돈이 많아 떵떵거릴 필요는 없으니, 최소한 야금야금 돈을 모아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정도로는 벌어 먹고살았으면. 


망상이라기엔 너무 소박한가? 아니면 망상이라도 너무 거창한 편인가? 모르겠다. 내겐 소박하기도 하고 거창하기도 한 꿈이긴 하다. 미래를 찬찬히 그려보면 계속 친구들의 얼굴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걸 보니, 난 아무래도 이들의 존재가 몹시 중요한 모양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행복한 사실은, 우리는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너나 할 것 없이 툭툭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이다. 일방적인 애정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한 해가 흐른다. 어느새 우리는 미래로 한발 더 나아가게 되었다. 장장 열다섯 시간 동안 떠들다 지쳐 잠든 올해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우리는 벌써 내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점찍어 두었고, 다음에 만나서 먹을 메뉴도 정해 놓았다. 아직은 나의 미래 망상이 영 멀어 보이기만 한다. 그래도 이렇게 매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다 보면 어느새 옹기종기 함께 모여 사는 새로운 공간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이를 먹어도 부루마불은 안 풀린다고 여전한 절규를 하며.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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