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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 진묘수와 마주한 공주의 여름

공주 <국립공주박물관><무령왕릉>








‘공주’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내게 낯익은 타인이었다. 부여에서 약 네 달간 머무는 동안, 백제의 숨결을 가까이서 마주하면서도 옆 동네 공주는 늘 ‘언젠가’라는 느슨한 약속 속에 남겨두었다. 2016년에 품은 다짐이 2024년의 습도 높은 여름날 현실이 되었다. 목적도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단지 마음의 지도가 자꾸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향한 곳은 국립공주박물관이었다. 백제의 보물이 가득한 전시실에서 내 시선을 오래 붙잡은 건 뜻밖에도 ‘진묘수’라는 상상의 동물이었다. 사자의 몸에 날개를 달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앞을 응시하는 이 존재는 무덤의 수호자이자 세속과 저승의 경계에 선 고요한 문지기였다.


요즘 한국의 전통 캐릭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지만, 진묘수는 그중에서도 단연 빛나는 보석처럼 느껴졌다. 공주의 상징으로서, 박물관 안팎의 이곳저곳에 심심치 않게 모습을 드러내며 도시의 정체성을 조용히 각인시키고 있었다. 진묘수는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닌, 백제의 품격을 담은 ‘살아 있는 문화 코드’였다.


백제의 유물을 둘러보며 자연스레 고구려와 신라를 떠올렸다. 고구려의 웅장함, 신라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 백제의 미감은 절제와 세련미로 빛났다. 금동대향로나 무령왕릉 출토 유물들에 담긴 정교한 장인정신, 부드럽고 우아한 조형미는 단순한 미술품을 넘어 고대인의 정신과 감성을 증명하는 기록물이었다. 고요하지만 깊고, 절제되었으나 결코 밋밋하지 않은 미의식. 그것이야말로 내가 백제에서 찾은 가장 단단한 아름다움이었다. 백제는 내 취향과도 결을 같이 했다.


박물관을 지나 백제의 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끝에서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만나게 된다. 1971년, 우연한 배수공사 중 드러난 무령왕릉은 마치 천 년의 봉인을 푸는 듯한 순간이었다. 벽돌로 정교하게 쌓은 무덤 안엔 금제관식, 목간, 진묘수 등 백제의 왕실 문화가 숨 쉬고 있었다. 그 유물들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시간을 통과해 현재와 눈을 맞추는 ‘살아 있는 역사’였다.


왕릉원은 언덕을 따라 놓인 무덤들이 조용히 이어진다. 왕과 귀족이 잠든 이곳은 마치 역사의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 같았다. 무령왕릉이 고대의 편지 한 장이라면, 왕릉원 전체는 백제의 기억이 자라난 숲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대의 속삭임이 귓가에 내려앉고, 습한 여름 공기 속에 백제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날의 공주는 한 편의 시처럼 다가왔다. 시는 종이 위에만 쓰이지 않는다. 어떤 시는 돌로 새겨지고, 어떤 시는 흙 속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어떤 시는, 이렇게 한 사람의 오랜 여정 끝에 조용히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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