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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 | 두려움과 나란히 선 순간

영월 래프팅







나는 생각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다. 고소공포증, 속도 공포증, 운전 공포증까지 웬만한 두려움의 목록은 빠짐없이 해당된다. 고소공포증은 출렁다리만 올라가도 심장이 덜컥거린다. 탄성이 높은 다리는 엄두도 못 내고, 스카이워크에서는 발만 간신히 옮길 뿐, 시선은 허공에만 고정된다. 속도 또한 마찬가지다. 질주본능이 애초에 없는 탓에 스릴 있는 놀이기구는 거절해왔다. 면허는 있지만 운전대 역시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잡지 않는다. 여행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운전 못하는 여행자’라는 다소 기묘한 콘셉트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내가 영월에서 래프팅을 한다고? 처음 일정표를 봤을 때, 생각이 많아졌다. 빠질 명분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도전’이라는 이름을 빌려, 두려움의 강을 건너보기로 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신체조건도, 정신적 내구성도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는 일행도 함께였다. 왠지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것 같았다. 마침 며칠 전 폭우도 내리지 않아 물길이 잔잔하다고 했다. 초심자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영월이 래프팅으로 유명한 까닭은 지형에 있다. 태백산맥에서 흘러내린 동강과 서강은 급류와 완만한 여울이 교차하며 독특한 수로를 이룬다. 절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협곡, 맑고 깊은 물길, 곳곳에 자리한 여울은 래프팅의 무대이자 장치다. 초보자와 숙련자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차별화된 코스까지, 영월은 그야말로 물 위의 극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물 앞에 서자 가이드가 다가와 체조와 기본 동작을 알려줬다. 우리는 함께 보트를 들고 물에 던지며 작은 전우애를 쌓았다. 출발하자마자 각자의 내공이 드러난다. 나는 보트 맨 앞에 앉아 구호에 맞춰 노를 저었다. 때로는 옆 보트와 속도 경쟁을 벌이고, 장난스레 물대포를 쏘아 올리기도 한다. 웃음과 외침이 강 위에 튀어 올랐다.


그러다 물길은 돌연 성난 얼굴을 드러냈다. 협곡으로 접어드는 순간, 심장은 북소리처럼 요동쳤다. 두려움은 손끝에 힘을 불러오고, 시선은 본능처럼 강가의 바위에 박혔다. 그러나 급류는 이내 리듬이 되었다. 물살은 노를 이끌고, 동료의 괴성은 파도에 섞여 울렸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강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춤추듯 몸을 싣고 있다는 것을. 두려움은 흥분으로, 긴장은 해방감으로 변해 있었다.

3시간의 코스는 길고도 짧았다. 때로는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흐르다가, 돌연 용처럼 솟구쳐 우리를 휘몰아쳤다. 그 강물은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굴곡과 고비는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우리는 서로를 잡아주기도, 물속으로 장난스레 밀어 넣기도 하며 그 순간을 견뎌냈다. 절벽은 무심한 관객처럼 흐름을 지켜보고, 물보라는 환호처럼 몸을 적셔주었다. 영월의 래프팅은 자연이 손수 마련한 연극이었다. 우리는 그 무대의 배우이자 관객이었다.


두려움을 완전 극복한 건 아니다. 하지만 강물 위에서만큼은 두려움과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 강은 나를 새로운 나에게로 건네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다음 무대가 주어진다면, 나는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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