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실내체육관>
혼자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이다. 혼자 여행도 가고, 혼자 밥도 잘 먹는다. ‘나 혼자’라는 문장은 내 일상에서 꽤 자연스럽게 쓰인다. 스스로의 리듬을 알고, 그 리듬에 맞춰 하루를 펼쳐놓는 법도 어느 정도는 익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라고 다 되는 건 아니었다. 혼자 술을 마시면, 내가 원하는 주량만큼 채우지 못한다. 술은 애초에 내게 ‘음료’라기보다 ‘분위기’에 가까워서다. 잔이 비워지는 속도는 취기보다 웃음의 밀도에 의해 결정된다. 혼자 있으면 그 밀도가 희미해지고, 술은 괜히 무겁게 남는다.
스포츠 직관도 마찬가지다. 특히 ‘보기’가 아니라 ‘함께 반응하기’가 중요한 종목일수록 그렇다. 야구장의 경우는 예외처럼 보였던 때가 있다. 예전에 야구기록원 수업을 들었을 때, 혼자 테이블석을 예매해 실제 경기를 기록하며 본 적이 종종 있었다. 그때의 나는 관중이라기보다 관찰자였고, 환호라기보다 데이터에 가까운 언어로 경기를 곁에 두었다. 하지만 기록에 흥미를 잃고, 경기에만 집중하고자 할 때는 이상하게도 혼자보다 동료와 함께 가고 싶어진다. 혼자 가면 재미가 없다. 그 ‘재미’라는 말이 어쩌면, 경기 자체가 아니라 경기와 나 사이에 놓이는 사람의 관계일지 모른다.
여자 배구는 좀 다른 상황에서 내게 다가왔다. 아직 주변에 여자 배구를 좋아하는 동료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응원팀이 경기하는 홈 혹은 원정 경기장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 “같이 보러 갈래?” 하고 부탁하곤 했다. 수원 홈구장 때도 그랬고, 화성 원정 경기도 오래 기다려왔다. 내 스케줄과 친구 스케줄이 맞아 떨어지는 토요일 경기를 노심초사 기다리다가, 마침내 올해 2라운드 IBK 기업은행 원정 경기를 함께 보게 되었다.
화성실내체육관은 화성시에서도 독보적인 외관이었다. 멀리서도 존재감이 뚜렷해, 마치 거대한 조개껍데기처럼 빛을 머금고 있었다. 어떤 각도에서는 동대문 DDP를 닮기도 했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미래가 잠시 내려앉은 것 같은 형태. 나는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해, 경기 전의 공기를 지켜봤다. 아직 관중의 함성이 완전히 차오르기 전, 공이 바닥에 닿는 소리와 운동화 마찰음이 더 또렷하게 들리는 시간. 그때 체육관은 공연 직전의 무대처럼, 조용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날 친구는 전날 과음으로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일단 오기나 하라”고 답했다. 그는 배구 경기를 실제로 한 번 보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속으로 반가웠다. 룰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과 함께라면, 직관의 재미를 조금 더 넓게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특히 로테이션.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중계 화면은 늘 공을 따라간다. 공을 가진 선수 위주로 카메라가 움직이니, 우리는 나무를 보느라 숲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배구의 전술을 TV로 읽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직관에 오면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과, 그 전술에 상응해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이는 야구도 마찬가지다. 공 한 개마다 수비수들이 데이터에 기반해 자리를 옮기고, 공격 작전에 따라 타자와 주자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현장에서만 보이는 ‘보이지 않는 합의’가 있다. 스포츠는 결국, 눈앞의 사건보다 그 사건을 준비하는 몸들의 문장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직관은 알려준다.
나는 코트를 바라보며, 선수들의 움직임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코트 위 번호들은 마치 작은 시계처럼 정해진 질서로 숨을 고른다. 네트 뒤쪽 오른편의 1번에서 시작해 6번과 5번을 지나, 4번·3번·2번의 전위로 이어지는 흐름은 시계방향으로 부드럽게 돈다. 그리고 서브권을 되찾는 순간, 선수들은 한 칸씩 그 흐름을 따라 자리를 바꾼다. 방금 전까지 오른쪽 앞에 서 있던 2번이 뒤로 물러나 1번이 되고, 1번은 6번으로, 6번은 5번으로. 그렇게 모두가 조금씩 다른 자리에서 팀의 숨결을 이어받는다.
후위인 1·6·5번은 바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공을 받아내고 버틴다. 서브와 리시브, 수비로 경기의 흐름을 지킨다. 전위인 2·3·4번은 네트 앞에서 상대의 길을 막고 기회를 연다. 블로킹과 공격으로 순간의 번뜩임을 만들고, 때로는 한 번의 점프가 체육관 전체의 기압을 바꾼다. 4번은 강한 한 방으로 흐름을 바꾸고, 3번은 빠르게 파고들어 속공과 이동 블로킹으로 빈틈을 메우며, 2번은 오른쪽에서 공격과 블로킹으로 상대의 주포를 견제한다. 전술에 따라 실제 움직임은 달라지고, 리베로가 후위에 스며들어 수비의 결을 더 촘촘히 짜기도 하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는다. 로테이션은 누가 어디에 서느냐를 정하는 규칙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잠시 맡아주며 ‘한 팀’이라는 문장을 유지하는 방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