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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현재

2011.12.31.

by 조각 모음

- 내 손으로


붉은 하드케이스 노트, 철사로 고정되어 있고, 백지에 검은 점선과 선이 그려져 있는 공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사격 훈련에서 20발 만발을 기록했고, 포상으로 간 px에서 산 것이다.


군대에서 받은 월급에, 스스로 한 사격에, 직접 고른 노트, 그리고 이 노트 역시 내 손으로 채워가게 될 것이다. 내 손으로 가지게 된 것이고, 내 손으로 채워갈 것이라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여태 살아오면서 내 손으로 한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쓸쓸함과 아쉬웠다. 다행히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도 느꼈다.


내 손으로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내가 되자.


2011년의 마지막날, 여유로운 16시 30분.




14년 전에 쓴 글을 마주한다. 어릴 때부터(아마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일 것이다) 뭔가를 기록하면서 살았는데, 매번 같은 노트에 끄적이기 시작한 건 '11년의 마지막 날'부터이다. 강원도에서 맞이하는 첫 새해를 앞두고, 엄청 추웠던 걸로 기억된다.


저때는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내 손으로 한 것이 별로 없다고.

저때의 나보다 형이 된 지금의 내게 보기에, 지나 보니 모든 건 스스로 해내는 것이다. 그러니 결코 스스로 한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물론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이 점에서는 온전히 내 힘만으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론 그때의 내가 더 많은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최소한 노트만큼은 지금까지 끄적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글의 제목을 "과거의 현재"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하드 커버 안쪽에 "과거의 현재"라고 큼지막하게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적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때의 나를 이해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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