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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멍게 May 31. 2022

언론사 인턴을 뚫은 미대생의 지원동기

자소서에 담은 두 번의 선택


전공이 그거라고? 너 회사에 아버지 있냐?


아버지가 여기 계시진 않고 전공은 이렇지만 합격은 했습니다.


언론사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시기, 처음 해보는 분야 앞에 주눅이 들지 않았다면 영 거짓말이었다. 미술이란 분야를 길다면 길게 공부한 후 처음으로 틀어본 방향이기에, 이 일을 오래 준비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 견문이 얼마나 짧을지를 뼈저리게 알고있을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이 일을 가장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한 능력은 결국에 직업정신이라 생각했기에, 인턴이라 할지라도 중책을 맡은 것이나 다름없이 임하겠다는 책임감으로 나름 중무장해있었다.


그러나 나의 거한 포부와는 달리(?) 인턴을 시작했던 시기, 한창 코로나가 매섭게 몰아쳐 부서의 선배들도 한두 명씩 돌아가며 출근을 했기에, 회사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언론사의 외근이 많은 특성까지 겹쳐 부서 선배들조차 뵐 날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다 하필 동기도 나오지 못했던 어느날, 그 날이 바로 내게 새로운 논제(?)를 안겨준 날이 될 줄을 나는 꿈에도 몰랐다.


그날, 마침 부서에서 가장 무서웠던 기자 선배와 단 둘이 밥을 먹게 되었다. 무서운 만큼 멋지다고도 생각했기에 일에 관한 이것저것을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어색해서 질문이 잘 나오지는 않았다. 어색했던건 선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기에 대화 내용은 거의 면접처럼 흘러갔는데, 몇 마디 지나지 않아 예상하던 '그' 질문이 들어왔다.


전공은 뭐니?


취업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준비했던 질문이었음에도, 이 질문을 마주할때면 약간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조소과인게 죄는 아니지만... 신입의 풋풋한 머쓱함을 담아 조소과라고 답을 하자,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선배는 이렇게 답변했다. "너 혹시, 회사에 아버지 있냐?"(정말, 과장없는 실제 대사였다) 아니, 놀랄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요? 답변에서 느껴지는 강한 경계심에 약간 얼얼한 충격을 받았다. 압박면접을 받는듯 후다닥 지원동기를 설명드리자 선배는 나름대로 납득한 듯 했고, 이후의 점심토크는 평화롭게 지나갔다.


기자의 순발력과 공격성을 마주하고 쭈그러들었지만... 그래. 이는 예술대학에 대한 편견이 아직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또, 당시 수면 위로 예민하게 떠올랐던 사례들 상으로 의심해볼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납득했다. 이 업계에 취직한 미대생을 10년이 넘는 기자생활 중 몇 번 보셨겠는가.


선배가 놀란 이유를 보다 정확히 짚자면 이런 느낌이었을텐데,


1)"미대생이 굳이" 언론계를 선택한 이유

2)미대생이 "어떻게 합격"한건지

 

...사실 이는 기자선배만이 아닌, 지인들에게도 수도없이 들었던 질문이기도 했다. 당연했다. 아무리 전공을 가리진 않는다지만 굳이 거리를 나눈다면 '언론정보'라는 부문과는 최극단에 있을듯한 전공에, 지금까지도 '고스펙' 위주인 업계에 난데없이 조각과가? 내 조건이 누가 봐도 열세일 수밖에 없었을 테다. 그러나 밝히자면, 그랬기에 취준을 하며, 나에게 이 질문은 오히려 무기였다. 


미대생이었기에, 다대다 면접의 현장에서 한 명씩 자기소개를 마친 뒤 가장 첫 질문은 누구도 아닌 나에게 돌아왔고,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거의 고백 멘트마냥 다듬어 준비한 <미대생인 내가 굳이 이 업계를 원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승산을 가져갔다.


미술이라는 전공이 무기가 될 수 있었던, 무엇도 부끄럽지 않았던 나의 '언론계 전향 이야기'는 이러했다.



뭔데 미대가 이런 분야에 관심을?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답을 놓치지 마라
요즘 중요한건 콘텐츠잖아요


이야기를 정리하기 앞서, 이 말을 하고싶다. 먼저, 자소서 = "콘텐츠"라는 맥락으로 접근해보자. 알다시피, 사람들은 누구나 '썰 듣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본인 삶 외의 일들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해보길 원하기에 지금과 같은 크리에이터 시대가 형성되었고, 우리는 매순간 타인의 삶을 콘텐츠로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 자소서-그 중에서도 '지원동기' 란은, 당신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하기 더없이 안성맞춤인 란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당신의 콘텐츠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 '썰'을 풀어나가는데에 누구나 독특한 소재를 가질 필요는 없긴 하지만, 독특한 소재는 이야기에 더 집중할 기회를 주는 것이 사실이며, 우리는 마침 딱좋게도 이 부분을 가지고 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 자소설이 '소설'이라 해도, 과장 속에도 당신의 핵심과 진심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먼저, 이 분야의 일이 지금까지 당신의 삶에서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를, 아주 사소한 근원에서부터 천천히 기억해내보자. 멋지게 써내기 이전, 당신에게 가장 확고한 '이유'를 마주하고, 정의해보자.



먼저, 내가 미술 이후 언론계를 택하고자 했던 과정은 그닥 직관적이진 않았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대학교 3학년까지도 나의 굳건한 진로희망은 미술작가였다. 그러나 작품 제작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를 준비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이 즐겁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결국에 작품을 '세상의 상황에 대한 나의 의견'을 풀 수 있는 매개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조각, 그림만이 아닌 영상이나 글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이용하며, 사소하게 여겨지거나 터부시되는 주제를 보다 개방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미술의 방식이 좋았다. 그렇게 스스로의 목표를 정의했기에 "너는 참 작가답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당연히 계속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술을 넘어, 미술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던 3학년 무렵에는 분한 감정이 들었다.


왜 (이렇게 가치있는 일인데도) 미술 전공을 하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고놈의 돈을 못버는걸까? 내가 하는 일이 노동도 무엇도 아니라는 두려움,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계에 깊이 들어가고자 했던 시도가 미술 밖 사회에 대한 내 관심의 시작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미술계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미술계의 현황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이 일이, 훗날 미술계 밖에서도 내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 미술계의 제도와 환경을 조금씩 공부해가며, 미술계의 좋고 나쁜 여러 면모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미술계가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취직이고 뭐고 이전에 미술이라는게 사람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단계를 담당하는지, 한 사람의 정서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미술계가 현재 어떤 사정을 가지고 돌아가는지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예술교육사로서 일하며 생활문화와 공공예술에 이바지하거나, 또는 문화계열의 기자가 되어 미술계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들을 사람들에게 알려보고 싶었다.(그때는 기자라는 직업의 프로세스를 몰랐고, 뉴미디어의 파급력도 아직 한창 모르던 차였다.) 그렇게 미술계의 이야기를 보다 대중에게 가깝게 알리는 매개가 되고싶었다.(그래서 대학원의 문화매개과라는 곳도 알아봤었다...)


그러나, 짧게나마 공부하며 미술의 쓸모에 대해 고민했던 만큼, 내가 기대하던 신념에 대해 많은 좌절을 하기도 했다.  내가 미술을 함으로써 얻고자 했던건, 달리 표현하자면 '내 관점으로 파급력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이곳저곳에 보여주는 일이, 내가 관심을 갖고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데 동참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지나며 알게 된 것은, 미술의 진취적인 방식이 좋았지만 내가 욕심을 내고있는 관객층은 미술계에 있는 관객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새삼스럽지만 미술은 '이미 미술적 표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의 것'이었으므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현대)미술은 학문이자 연구같은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아직은 양극화되었지만 그러한 접근은 당연할 수밖에 없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미술로 하고자 하는 일은, 오히려 미술계라는 풀보다 다른 분야에서 시도했을 때 더욱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쯤 들었다. 또한, 미술계의 환경을 개선해보고 싶다면, 미술계 내부의 목소리에 더불어, 미술계 밖의 관점에서 보다 자유롭게, 미술계의 문제를 짚을 수 있는 매개도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대체 무엇으로 일을 하지? 이 목표는 지금까지 내가 준비했던 문화재단과는 또 다른 분야의 일이었다. 내 목표를 알았으니, 그 다음은 목표를 위한 발판을 알아야 했다. 취직을 하고자 시도했던 일들을 돌아보았다. 그 무렵엔 영화 리뷰어, 지역문화 취재, 예술정책 스터디 등 다양한 곳에 발을 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내가 좋아했던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전까지 괜히 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정해지만, 나의 지속적인 관심사는 결국 무언가의 역사성-세계관을 알리는 일이었다. 디테일하게 파고들자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일들을 발굴하여 자신의 뜻으로 조명해내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적 개선을 이끌어내는 일이 무겁지만은 않게, 무언가를 개선하는 일이 '멋지다' 생각할 수 있도록 대중성을 부여하고 싶었고, 대중적인 표현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쯔음 뉴미디어를 제작하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를 예능으로 풀어내는 선배를 보았다. 그를 보며, 어쩌면 작품보다 '콘텐츠'가 내게 맞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미술을 하면서 내가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능력'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대단한 물질적 밀도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작품을 하며 내게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오히려, 고단한 과정 속에서도 작품의 의미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의미를 중심으로 설계하며, 디테일한 비유를 설정하고, 작가노트를 작성해 발표하는 일이었다. 결국에는 기획과 쓰기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근본에 있었다. 그렇게, '작품으로 전하고자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정말 해내고 싶은 일', '증명해내고 싶은 능력'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웠다.


(1) 독창적 스토리텔링 : 이야기를 만들고, 기획하며 써낼 수 있는 일일 것

(2) 사회적 발견 : 그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아직 조명이 덜 된 가치를 조명할 수 있는 일일 것

(3) 대중적 방식/매체 : 그런 이야기를 대중성있게, 대중을 중심으로 유통할 수 있을 것

(4) 개인이 주목받을 수 있는 일 : 일을 하며 개인의 만족은 중요하고, 나는 관종이므로(!) 이 과정들이 나의 셀프 브랜딩으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


내가 사람들에게 주고싶었던건, 결국에 나의 관점을 보다 대중적인 시선으로 정리해낸 콘텐츠로, 사람들을 스며들게 하는 일이었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문제를 개선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파급력을 만들 수 있는 곳의 일을 배우고 싶었다. 보다 더 대중적으로, 무겁기보다 즐겁게, 그러나 핵심은 명료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언론방송계를 선택했다. 이제 필요한건 맨땅에 헤딩이었다.



결국 그들을 끄덕이게 만드는것은,
전공 아닌 포부와 역량
리셋 같은거 안해도 되니 걱정마세요!!


선배의 물음에 떠듬떠듬 답변을 하던 때가 떠오른다. 돌고 돌아 겨우 찾은 나의 키워드들은, 결국 내 일에 확신을 갖게 해주는 귀중한 과정이 되었다.


저는 미술을 전공하며,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역문화, 사람, 문화에 담긴 사회상 등 세상의 목소리를 보다 진취적인 방식으로 담아내고 알리는 일에 대해 공부해왔습니다. 그러나, 미술은 학문과 같은 일이기 때문에, 다수에게 전달하기는 접근성이 낮은 매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보다 다수의 곁에서, 누구에게나 쉽고 진실하게 세상의 일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본사는 OO 사건에 대한 보도를 발빠르게 알리며 ... ...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더 좋은 이야기를 전하고 힘을 싣는일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한창 식사를 하며 말을 나누니, 자소서에 쓰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술술 흘러나왔다. 의아해하던 선배는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장의 얼굴들을 다시 떠올렸다. 가장 먼저 의아한 어조로 들어온 질문이었지만, 답변 후 면접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경력이었지만, 나는 내가 이 일을 해내고 말 이유에 대해 나름의 설득을 해낸 것이다.


물론 이는, 인턴 정도의 직급이었기 때문이고, 앞서 말했듯 그 정도 선이라면 결국 직업의식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도 컸다. 나름대로의 포트폴리오도 있었으니, 완전히 첫 시작이라기보다는 내가 쌓아왔던 일을 정의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과정이 없는 사람은 없으므로(당신을 과소평가 하지마라!), 결국 우리가 거칠 과정은 남다르되 비슷-할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렇게,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탈미술의 첫발을 디뎠고, 그 첫 발 이후 여전히 끝도없이, 지금은 언론계 밖에서 '기획'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고 있다.



다음편 : 이야기는 알겠고, 그래서 그걸 어떻게 콘텐츠화 하나요? 미대생의 지원동기/강점과 약점/경력을 자소서화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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