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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별 Jun 07. 2024

벌써 1년...지구별 생존일기

2023년 6월 5일 간암 수술을 받았다.


딱 1년 전이다.

2023년 6월 5일 간암 수술을 받았다.

아내를 통해 들으니 수술 시간이 5시간을 조금 넘겼었다고. 당초 3시간 예상이었는데...그 시간 아내와 부모님은 애간장이 탔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40대 초반에 간암이라니 참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간암 판정 이후 수술 날까지 난 아무런 잡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의사에게 간암 판정을 받고 난 딱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가요?”

의사의 대답은 심플했다.

“이미 나빠진 간은 그 상태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환자가 할 수 있는 건 운동 밖에 없어요. 살을 빼세요”

아내는 의사의 간암 판정 이후 참 많이 울었다. 내가 모르는 울음은 더 많았고... 매일 매일 꾹꾹 참으며 눈물을 삼켰다고. 두 아이들이 있으니 오죽했을까.

                                                                      


간암 판정 이후 나는 매일같이 운동을 했다.

하루 최소 1시간에서 2시간씩. 어릴 적 했던 줄넘기부터 가볍게 시작. 처음엔 100개 200개도 숨이 찼다. 몸무게가 130kg이 넘었으니 제자리 뛰기도 참 힘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1시간에 1000개 2000개 3000개까지 할 수 있었다.

줄넘기가 아니면 걸었다. 집에서 공원까지 아니면 아파트 단지를 수시로 돌고 근처에 있는 산도 즐겨 갔다. 1시간 평균 4km 정도씩 걸었다.

그동안 아내가 참 많이 고생했다.

매 끼니 샐러드(방울토마토, 오이, 양상추, 샐러리 등)부터 닭가슴살, 계란찜, 오트밀, 순두부, 호박 등으로 갖가지 건강한 음식들을 만들어줬다. 다행히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해서 아내는 수육이며 샤브샤브, 월남쌈 등을 자주 해 줬다. 우스갯소리로 고기를 못 먹었으면 못 버텼을거다. 쌀밥은 거의 먹지 않았고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되도록 냉면, 메밀면 정도로만 먹었다.

아내가 철저하게 식단관리를 해 주니 난 운동만 하면 됐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체중도 빠지기 시작했다. 3달간 약 15kg 정도 감량했던 것 같다. 급격하게 살이 빠지다 보니 한번은 앉았다 일어나다가 쓰러진 적도 있었다. 순간 몇 초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뒤로는 항상 두 아이들이 내 보디가드가 돼 운동을 따라 나왔다.

6월 1일 병원에 입원해서도 몸이 근질거려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끼 식사를 하고 나면 병원 내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최대한 넓게 여러 바퀴 돌면 1km, 하루 세 번 정도 걸으면 3km를 조금 넘길수 있었다.

수술 전날인 6월 4일엔 병원 뒤에 있는 정발산에 올랐다. 지금도 생각하면 참 웃긴 게 환자복을 입고 크록스 슬리퍼를 신고 거길 오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수술대에 올랐다.



6월 5일 아침 8시.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수술실에 들어갔다.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또 울었다고.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던 나는 환자 한명 한명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숙연하면서도 속으로 웃음이 났다. 수술용 모자를 쓰고 있는 환자들 모습이 마치 버섯돌이 같아서. 한 8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대기자 중에 나보다 어린 사람은 없어 보였다.

지금도 기억 나는 건 내 이름이 불리고 간호사들이 날 수술방으로 날 데리고 간 다음 수술대에 올라 누워있던 모습뿐이다. 수술대는 생각보다 차갑진 않았다. 다만 수술실 내 온도가 좀 낮았던 것 같다. 수술대에 누웠더니 간호사가 산소마스크를 씌웠고 그 안으로 마취가스가 들어오고 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 혹시나 아내가 있을까 하고 봤는데 환자들만 침대에 누워있었다. 몸은 수술 이후 땀과 열로 녹초가 됐고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마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간호사가 제일 먼저 양치를 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환자실 침대는 세상 편안했다. 그 좋은 푹신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전 9시 11분 수술을 시작해 내가 처음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한 게 저녁 7시 30분경이었다. 그 뒤로는 잠이 잘 안 와서 눈만 꿈뻑 꿈뻑 지나가던 의사들이 상태를 확인할 때마다 괜찮다고 말하니 밤 10시 40분경 내 병실로 옮겨 줬다.

나는 다빈치 로봇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복부가 당기는 것 말고는 큰 통증이 없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복강경 수술을 위해 5군데 구멍을 뚫었고 절제한 간조각을 꺼내기 위해 복부 오른쪽을 약 4cm정도 절개 했다.

열심히 운동을 한 덕분인지 회복 속도도 빨랐다. 6월 5일 월요일날 수술하고 그 주 토요일에 퇴원. 의사 선생님도 회복이 빨라 병원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고 하셨고. 물론 나도 수술하고 난 다음날부터 복도를 계속 걸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고 빨리 회복하기를 원했기에 열심히 움직였다.

집에 와서는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상처 부위를 매일 소독해 주고 거즈를 갈아주고 해야했으니. 몸에 난 상처를 본 아내 마음이 어땠을지는 사실 당시만 해도 상상도 못했다.

집에 와서 상처가 아물고 실밥을 풀기 전까지는 운동은 최대한 자제했다. 하지만 실밥을 풀고 부터는 다시 운동을 시작해 12월까지 20kg이 넘게 더 감량했고 지금은 130kg이 넘던 몸무게가 89kg~91kg대로 유지중이다. 40kg이 넘게 뺐다. 욕심 같아서는 한 10kg 정도 더 빼고 싶은데...

수술 이후 혈액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 결과는 아주 좋은 상태.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각종 수치가 근 20년 전 보다 좋다. 당연히 약도 최소화했고.



암판정을 받은 직후 나와 아내는 하나님만 붙들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성경책 읽기와 큐티도 매일같이 아이들과 다시 시작했다. 그 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병원에 입원할 때도 난 성경책과 큐티책 그리고 노트 한 권만 들고 갔다. 성격상 현실 인식이 상당히 빠른 편이라 암판정 이후 머릿속에는 가족, 운동 두 가지 밖에 없었다.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할 시간도 없었고 물론 치료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1년이 지났다. 5년이 지나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데. 갈 길이 멀다. 간암은 3년 내 재발율이 상당히 높다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평생 관리하자는 생각으로 산다. 꾸준히...

아래 성경 구절은 지난 1년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붙들고 살 하나님의 말씀.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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