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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글리 Jan 03. 2021

내가 페미니스트여도 될까요?

40명의 여자들,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궁금증들 

나의 작은 호기심, 또는 의아함은 중고서점에서 시작되었다. 회사 아주 가까운 곳에 중고서점이 있다. 지금은 나의 가장 가까운 회사 동료가 된 경언은 중고서점에서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소설책을 샀다. 경언은 책을 다 읽은 후 아무 생각 없이 회사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마침 경언의 자리는 여러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쪽에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 오지랖 넓은 동료 서연은 그녀의 자리를 지나다 책 제목도, 표지 색도 강렬한 이 책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경언은 '재밌다'는 말과 함께 그녀에게 책을 빌려준다. 이렇게 시작된 중고 책은 자리가 가까운 팀원들인 서연, 윤하, 연수, 자윤, 민혜, 다섯 사람이 다 읽고 나서야 제 자리로 돌아왔다.


나의 호기심과 의아함은 이 책을 읽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점심시간에 생겨났다. 평소에도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은 경언과 윤하는 책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공감할 부분이 얼마나 많았는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는 소설로서 좋은 작품이라 생각했지만,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저 상상해볼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며 함께 밥을 먹으며 말이 없던 연수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사실 공감은 전혀 안됐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우연인지 알 수 없으나 나와 연수는 30대 중반이다. 경언과 윤하는 20대 중후반이다. 나이 차이는 예닐곱 살 정도 나지만, 그녀들과의 대화에서 세대 차이를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딱 한 가지의 대화 주제만 제외한다면.


나는 경언과 윤하를 특별히 좋아했다. 그들과는 무엇이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고, 실없는 내 헛소리에도 열정적으로 대꾸해주었다. 소위 '젊은 회사'인 지금의 직장에 입사하기 전 친구들이 추천해준 <90년생이 온다>을 열심히 읽었건만, 내가 만난 90년대생들은 내 또래인 80년대생들보다 더 말이 잘 통하고 성실했다. 그들은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회사생활에 임하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늙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 때도 많았다. 그런 그들과의 점심시간은 휴식시간을 넘어선 힐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힐링피플들의 눈이 승냥이처럼 변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바로 성범죄나 성차별,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이다. 그들은 날카롭고 사나웠으며 한편으로 엄청나게 똑똑해졌다. 나는 감히 그들의 말을 거들 수도, 거스를 수도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이 없다고 느꼈으며, 또 아는 것만큼 경험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나이 차이만큼의 시간, 7년이라는 세월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어느 날 그들에게 말했다. 

 

"너네는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동료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매일 그들을 관찰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푸하하 웃으며 '이 언니 또 헛소리하네'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마흔 명 남짓한 여자가 근무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여자가 많은 조직에 있었던 적은 있지만 한 번도 이렇게 오직 여자 상사와 동료들만 그득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겪어보니 여자들만 있어서 생기는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딱히 없다. 힘들었던 시기, 잠시 잠깐 '여자들만 있어서 그런 걸까' 생각한 적은 있지만, 남자들이 있는 다른 부서를 보아도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그저 '그런 사람이어서', '그 사람이어서' 나와 맞지 않을 뿐이었다. 다만 여자뿐인 조직이라니, 내가 이런 조직에서 일할 일이 또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같은 환경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각기 다른 여자들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마치 우리들의 점심시간처럼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또 같음을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동료들'이 있는가 하면 '페미니스트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여자'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는 않을까. 호기심과 의아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흔 명의 여자들 중 하나는 바로 나.

나는 30대 중반의 유부녀이며, 오지랖이 많이 좀 넓은 편이다.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한다. 긴 파마머리에 화장과 브래지어를 하지 않지만,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근래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나도 페미니스트구나, 혹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정도이다.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 함께 분노하고,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런 내가 과연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이유는 여성으로서의 불편함을 다른 이들보다 적게 느끼고, 경험으로서 특별히 차별당했다 생각해 본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라며 여자이기 때문에 남동생과 차별이나 비교를 당해본 적이 없으며, 여자여서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불쾌한 말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결혼했으나 여성에게 강요되는 가사노동이나 독박육아의 부담에 시달려본 적이 없으며, 며느리로서 해야 할 무언가에 대해 압박받아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여자여서 차별을 당한 적도, 위협을 느낀 적도 없는 것일까?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는 것이 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당하고도 크게 무엇이 잘못됐다 느끼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여자들은", "너는 여자애가" "너는 여자라서"로 시작하는 문장을 듣고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온 일이 많으며, 심지어 나 스스로 무의식 중에 "나는 여자잖아"라는 틀 안에서 나를 규정할 때도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무시와 차별을 겪으면서도 그것이 문제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20대 초반 첫 직장에서 "너는 여자 애가 립스틱이라도 좀 발라라"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 상사가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사주시면 바르고 다니죠. 사주시고 말하세요"라고 받아쳤다. 매번 웃으며 지나가는 대화였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상사가 남자 동료들에게 "너는 얼굴이 왜 이렇게 칙칙하니? 비비크림이라도 발라라"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없다. 나는 어쩌면 능청스럽게 그 상황을 넘기기보다 "기분 나쁘니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라고 정색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업무 강도가 높았던 그 직장에서 남자 선배들은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도 있었던 것에 비해 같은 나이대 여자 선배들은 단 한 명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여자 선배들이 성격이 더럽고 까칠해서 그런가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사실 남자 선배들도 똑같이 성격이 더러웠는데. 회사를 다니는 4년 동안 그 많은 여자 선배들 중 딱 한 명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했다. 선배는 육아 휴직은커녕 출산휴가도 다 쓰지 않고 회사에 복귀했다. 그런데도 선배는 점점 경쟁에서 뒤처졌다. 그때는 '그 선배 일 잘했는데' 생각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마 선배는 쭉 일을 잘했을 거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다는 그녀의 새로운 상황들이 그녀를 불리하게 만들었던 것일 뿐이고. 왜 남자 선배들은 그 여자선배들과 같은 상황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매일 밤을 새우는 남자 선배들의 아이들은 대체 누가 돌보고 있었을까? 나는 그 직장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그 여자선배와 다를 수 있었을까? 이 뒤늦은 질문들에 누가 답을 해줄 수 있을까?


나의 질문에 답해줄 사람을 아직 찾지 못해서,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를 읽고 느껴버린 20대 경언과 윤하, 30대 나와 연수 간의 미묘한 생각 차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그래서 나는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한 직장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절친한 우리들, 우리 여자들 사이에는 어떤 동질성, 그리고 이질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20대 경언, 30대 연수, 그리고 40대 소정까지. 나는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동료'들과의 대화/인터뷰를 시작했다. 


*글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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