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회로는 내가 돌릴 수 있음. 다른 사람은 내 행복회로 못 돌림.
#행복회로나 씐명나게 돌리자! 아오 씐나ㅎ
나의 자존감은 때때로 많이 무너진다. 괜찮은 듯 하다가도, 물밀 듯이 밀려오는 공허감과 무기력함이 있다. 나는 그것을 우울증으로 규정지었었다. 그리고 상담뿐만 아니라, 정신분석까지 받았었다. 카운셀링을 받아보아도 내 말만 주저리 주저리하는 것도 나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나 또는 내 생각이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규정되거나 해석되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때로는 더 과분하게, 때로는 더 의미 없게 해석되어지는 것 말이다.
멘토링을 받았을 때는, 그 사람이어서 그 멘토분이셔서 할 수 있었던 생각이나 어떤 성공의 방식을 나에게 대입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열정이 강하고 사람들 매니징을 잘 하는 분의 성공 이야기를 듣자면,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대단한 일을 해내고 그 분야의 개론서 같은 책을 펴낸 사람의 이야기와 어드바이스를 들었다. 상대적으로 한없이 초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거시적인 사람이 아닌 지극히 미시적인 사람이고, 개론서처럼 큰 개념을 잘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한 에피소드 에피소드를 섬세하게 전달하는 아주 디테일하고 센서티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숲을 본다면, 나는 나무를 보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그 동안의 나의 성공방식은 나무를 보아서 가능했었다.
정신분석은 과거 지향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해서, 그 사건을 시간을 되돌려서 복구할 수도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과거의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하고, 상처를 줬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에게 지금 사과를 받지 못 한다.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 감정이나 상황을 바로잡거나 하는 나에게 과거의 어떤 것을 연상해서 다시 괴로워하는 일이. 내 시간은 너무나 아깝고, 부가가치가 올라서 비싸진 이 시점에 말이다.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나은 일처럼 판단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정신분석은 슬픔은 많이 치유가 되었다. 나의 힘들었던 일들을 함께 슬퍼해주고, 함께 울어주는 누군가가 이 세상에 있다라는 것이. 내가 아무리 돈을 냈다고 하더라도, 진정으로 누군가가 함께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챙겨준다는 것은 슬픔을 치유하는 데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슬픔과 위로를 위해 페이를 한다라는 것은, 슬픔 쇼핑이나 위로 쇼핑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컨설팅 역시도, 전문가인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각 분야 컨설턴트를 만나도 모든 그 전문가 앞에서 모든 면이 부족한 사람? 무력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은 코칭이었다. 코칭은 코치와 피코치가 대등하고,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통해서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코칭만능주의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식견이 짧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하다.
특히 내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나의 업에서의 잘 되고 싶은 강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의 커리어에서 큰 인정을 받고자 하는 그 욕구. 나에게 좋은 욕구일 수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이미 자신만의 커리어를 잘 쌓아가고 있는 남자친구와 함께 어떤 자리들을 할 때면, 아직 그 친구만큼 성장하지 못 한 나는 항상 미운오리새끼 마냥 비교를 당해 와서 못난 자격지심마저 생겨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비교를 당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괴로움인가?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그를 서포트 하고 있는지 알지 못 하기에, 그리고 안다 하더라도 그냥 단지 1% 정도의 도움처럼 보이기에 나의 존재는 무가치해 보이게 된다. 설령 1%라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노동력을 50% 이상 쓰고 있었다.
물론 그가 그만큼 나를 위해주고, 잘 해주고 있어서 크게 이슈가 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도와주고 있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 받아도 된다라는 뜻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이런 상황, 저런 상황,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생긴다. 일, 상황, 사람... 공통점이 뭘까? 내가 통제(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적인 환경과 변수라는 점이다. 어떤 일이나 상황이나 사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입맛에만 맞게 통제할 순 없다. It just happened. 그렇다. 영어로 표현하면 해픈드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전에 미국에서 유학을 했을 때, 어쩌다 카펫에 초코우유를 쏟은 적이 있다. 미국은 카페트가 벽까지 내장되어있었다. 그래서 그 초코우유 냄새를 없애려고 했지만, 카페트를 들고가서 빨 수가 없고 내장되어있기에, 결국 며칠이 흐르고 온 방에서 초코우유 구렁내가 났다. 미국인 룸메이트 섀넌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I'm so sorry. I didn't mean to..."
(정말 미안해. 그럴 의도는 없었어...)
그러자 섀넌은
“It happened"
잇 해픈드
라고 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거듭하며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뜻일까? 뭐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정말 그 일은 그냥 그 일이 벌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은 자였다. 초코우유 구렁내로 화도 내지 않고, 나에게 인생의 진리를 저 4음절로 알려준 것이다. 잇해픈드.
그 이후로 나는 힘든 일이 생기거나, 내가 정말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그렇게 여긴다. 잇 해픈드. 천재지변 같은 일이 생기면, 때때로 인간은 그저 받아들이지 않는가. 많은 일이 마찬가지였다. 그냥 일어나는 것 뿐이다.
그럼 여기서 더 행복해지거나,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주목해야 될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다.
정말 별로인 남자친구와 헤어져야될 때, 어차피 헤어지는 거 누군가의 잘잘못을 더 겨루고 따지며 마지막 기억까지 추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It happened" 잇 해픈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다라고, 천천히 수용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정말 멋진 남자친구 덕분에, 때때로 비교를 좀 당하게 되더라도 “It happened" 라고 생각해버리는 거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내가 비교 좀 당한다고 해서, 이 연애를 그만 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 차라리 행복회로나 씐나게 돌리는 거다. 나는 남자친구 덕분에, 옆에서 많이 배웠고, 나 역시도 성장했고, 좋은 자리에도 많이 갈 수 있었고, 그의 옆에 있는 최고의 대가들과 같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이렇게 그냥 씐나게 행복회로나 돌리는 거다 ㅎ
어차피 발생한 일, 상황, 사람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외부의 것들은 내가 아무리 호들갑을 떨며 방뎅이 댄스를 춰도, 바뀔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 그렇기에 적어도 통제할 수 있는 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내 생각, 내 마음가짐, 내 말, 내 행동, 내 표정, 내 카톡 등등.
한 때는 많은 것들을 외부에서 땡겨오고 싶었다. 공허한 마음에, 나의 텅빈 마음을 위해, 자꾸만 밖에서 땡겨오려고 했다. 뭐 삼천만 땡겨줘요 같은 유행어가 생각나는데. 정말 나는 그 당시, 아니 최근까지도 외부의 인정과 칭찬, 사랑 등을 끊임없이 땡기려고 했다.
근데 돈도 내가 있는 돈 쓰면 이슈가 없는데, 땡겨쓰면 이슈가 된다. 마통, 마이너스 통장이나 이자가 비싼 리볼브나, 사채 등 말이다.
유튜브를 할 때에도 외부에 의존을 하게 되면, 나는 자꾸 구독자를 모으려고 하고 더 많은 조횟수와 좋아요, 댓글을 얻고 싶어진다. 그것들은 내가 원하지만, 얻기 어려운 것들이다. 물론 얻으려고 노력은 하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할 것이다. 내 에너지와 감정 역시도 내가 하는 행위들에 집중할 것이다.
끊임없이 조횟수와 댓글을 체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부지런히 편집을 하고, 썸네일을 잘 만들고, 주 3회 이상 업로드하는 것.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환심을 사고, 잘 한다고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향기를 내뿜어 사람들의 Calling, 부름을 받는 것. 이것들을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만들 것이다.
힘들 때는 나의 결핍보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하며 행복회로나 씐나게 돌리는 게 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