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가 된 이유
이렇게 죽도록 열심히 하는데 뭐라도 되겠지.
by 나다운브랜딩 조규림대표 Sep 5. 2020
N잡러가 된 이유
회사를 다닐 때, 친한 선배가 있었다. 내가 회사에서 유일하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던 분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선배가 돌아가셨다. 원인은 심장과 관련된 것이었다.
선배는 키도 큰 남자였으며, 운동도 잘 했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던 선배였다.
선배님이 하늘로 돌아가신 날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 밖에서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선배를 마주쳤다.
나 :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 : “응 규림아 잘 지내지?”
나 : “네 선배 날이 춥네요~ 가디건 같은 거라도 챙겨입고 다니세요”
선배 : “응 그래 너도 잘 챙겨입고 다녀”
그리고 나서 자리에 돌아와 카톡으로 “선배님 넘 열심히 하지 마세요” 라고 보냈었다. 선배는 “이렇게 죽도록 열심히 하는데 뭐라도 되겠지. 다 잘 되겠지...” 라고 하셨었다.
그리고 그 날 선배가 떠났다. 다음 날, 회사에 갔다. 갑자기 카톡이 왔다. “언니... 그거 들었어?” 그 후배는 항상 사내에서 정보가 빠른 후배였다.
“응? 무슨 말?”
“A선배가... 돌아가셨대... 심장마비로....”
믿을 수 없었다. 30대 초반의 선배가 벌써 세상을 떠났다라는 게... 이상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히 어제 나랑 점심시간에 마주쳤고, 간절기 가디건 챙겨입으라고 안부인사를 나눴었다. 카톡으로 이야기도 나눴었다.
그리고 이렇게 죽도록 열심히 한다라는 말은 나만 들었을 지도 모른다.
팀장님, 상사분들, 다른 팀 분들과 이 상황을 믿지 못 하며 장례식장을 갔다. 다들 믿지를 못 하니, 그냥 평소에 일하는 것 같은 톤앤매너였다. 그 누구도 깊게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 했다. 믿지를 못 하니까.
그리고 그 다음 날, 선배의 책상은 텅텅 비었었다. 그 자리에는 흰 국화꽃 한 송이만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일을 해야하니 정신이 없이 컴퓨터를 두들겼다. 통화를 했다. 웃기도 했다.
평소와 똑같은 회사, 그리고 그 팀의 사무실에서 선배만 없었고 나머지는 평소와 같았다. 그 때 나는 많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지? 선배 하나 없어도, 아무 이상 없이... 거북이의 노래가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믹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그 때 생각했다. 부속품 같이 사는 삶. 나사 하나처럼 사는 이 삶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적어도 지금은 나가야겠다고...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선배의 그 일이 없었으면 나는 계속 평소처럼 지냈을 지도 모르겠다.
선배의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괴로웠다. 평소에 그 선배와는 계절이 지나가는대로 노래나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했고, 야근을 할 때는 카톡을 하기도 했다. 협업을 해야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메일을 주고 받곤 했었다. 특히 그 선배의 담당업무로 인해, 선배의 메일이 매일매일 아침마다 왔었었다.
어느 날 매일오던 메일도 갑자기 뚝 끊기도, 내가 요즘 듣는 음악이나 추천하는 영화를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밥 한 번 먹자! 맛있는 순대볶음 한 번 먹자” 이 얘기들이 오갔었는데... 선배와 그렇게 밥 한 번 제대로 못 먹었었다.
N잡러가 된 이유가 생각보다 호기롭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이제야 처음으로 말하는 N잡러가 된 진짜 이유다. 어쩌면 나는 산업화, 분업화 시대에서의 누구든지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구멍가게처럼 N잡러로 이 일, 저 일 하더라도 나만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 있으면 좋은 것일 뿐이었다.
그 일로 나는 자주 링겔을 맞아가며, 정신적 충격으로 버티다 버텼었다. 그리고 나도 회사를 떠났다. 그게 나의 이 떠돌이 생활, N잡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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