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7편_친구의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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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엄마에게 편지를 써놓고 두 달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의 섬은 눈을 두는 모든 곳에 봄꽃이 물결쳤지요. 아니, 봄꽃에만 눈을 두니까 온 데가 꽃이었나 봐요. 그날 친구 수기를 통해서 엄마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기의 그림도 보았어요. 당장 엄마에게 얼마나 편지를 쓰고 싶었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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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반년의 시간이 또 지났습니다.
영어 수업에서 처음 수기를 만났습니다. 전공은 달랐지만 우리는 외국어 연수원의 같은 수업을 등록했던 거죠. 수기는 저보다 두 살이 많았습니다. 수업 내내 메모를 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어요. 결석도 없었죠. 길쭉한 팔다리에 광대가 두드러진 동그란 얼굴, 쌍꺼풀이 없는 큰 눈을 보고 있으면 어느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법한 매력적인 동양 소녀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런 외모에 구수한 사투리가 나올 때면 왠지 정감이 갔죠. 수기는 유독 학구열이 높았고, 인정이 매우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성적도 우수했고, 내성적인 기질인 저와는 반대로 선배, 동기, 후배들과의 관계도 폭넓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함께하면서 우리는 친해졌어요. 서로의 자취방을 오가면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지요.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국제결혼과 세계일주를 수기는 꿈꾸고 있었어요. 듣는 제 귀에는 아주 머나먼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밥에서 우주까지 우리가 나눈 대화의 내용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수기의 눈빛이 맑게 빛났던 것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볼살이 채 빠지지도 않았던, 스물의 분홍빛 여린 벚꽃잎 같은 우리였습니다.
알바를 하며 바삐 지내던 어느 날 밤에 수기의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받았어요. 네…… 엄마의 남편이요. 누군가의 죽음도, 장례식장도 처음이었지만 심야행 고속버스를 타고 곧장 통영으로 갔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4시였던 걸로 기억해요. 수기의 아빠(영정사진)에게 절을 올리는데 엎드린 채로 울음이 왈칵 솟았습니다.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빠와 남편을 보낸 엄마 그리고 아빠가 없는 수기가…… 너무 가여웠어요.
다음 날 아침. 영구차가 수기의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아빠의 삶이 묻은 바닷가 마을의 길목마다 차 안은 서러운 울음으로 가득했어요. 아기였던 수기와 아빠, 학생이었던 수기와 아빠, 성인이 된 수기와 아빠…… 수기와 아빠의 마지막 드라이브를 저도 함께했습니다. 화장터에서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저는 도중에 서울로 돌아가야 해서 엄마께 인사를 드렸어요. 엄마가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엄마의 눈물이 눈을 덮어서 엄마와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 눈으로 엄마가 저를 안아 주었지요. 너무 울어버린 엄마의 눈 때문에 제 눈도 덩달아 앞이 가려졌어요. 그러자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제 손에 무언가를 쥐어줬어요.
"차비 해."
남편의 육신이 눈앞에서 소멸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다정할 수 있는 엄마가 놀라웠어요. 떠나기 직전 저는 수기의 남자친구를 밖으로 불렀습니다. 키가 크고 착한 얼굴의 영국 사람이었죠. 그에게 수기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엉뚱하게도 그가 '언제까지?'라고 묻더군요. 저는 '영원히.'라고 답했습니다. 그 짧고 진정한 소원이 이루어져서 훗날 그는 수기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아프기 전부터 수기는 조선소에서 3년 동안 일을 했어요. 돈의 일부는 아버지 병원비로 쓰고, 남은 돈으로 수기와 그는 부부가 되어 세계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날, 당시 제 집이 있던 일산에서 수기를 만났습니다. 그동안 돈을 모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생이 가늠이 안 되었어요. 외국인과의 결혼 생활도, 코앞에 닥친 세계일주도 이제는 전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기를 바랐죠. 인천공항으로 향하면서 수기의 여행이 안전하고 충만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캐리어를 끌기 위해 자세를 다잡던 수기가 제 손바닥에 무언가를 놓고 꾹 눌렀습니다.
"밥 챙겨 먹어."
"……"
돈이었습니다. 그 순간. 지난날의 엄마가 생각났어요. 남편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딸의 친구에게 화장터에서 차비를 챙겨주던 엄마 말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아주 긴 여행을 떠날 엄마의 딸이 도리어 머무는 이의 끼니를 챙기고 있는 거죠. 일순간…… 제 마음속이 굉장하게 물렁해졌어요. 그때의 두 사람과 두 사건이 같은 기운과 형태로 겹쳤습니다. 장례식 부조금이나 여행 경비 한 푼 마련하지 못한 저에게 두 사람이 쥐어줬던 '다정'은 지금까지 제가 살면서 가장 오래 품고 있는 위로가 되었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수기는 아들을 낳았어요. 기절할 만큼 사랑스러운 아기였죠. 딱 한 번 수기가 살고 있는 부산의 오래된 아파트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의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와중에 저를 위해 푸짐한 저녁 한상을 차려주었죠. 그때 아이는 돌 즈음이었는데 아이와 저는 두 손을 맞잡고 뒤뚱뒤뚱 좁은 거실을 쓸고 다녔죠. 아이의 웃는 얼굴이 어찌나 무해했는지 세상사 온갖 것들이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답니다.
수기는 동네 회관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다고 했어요. 꽤 오랫동안 수업 시간에 그린 그림을 찍어서 제게 보내주었죠. 그리고 그토록 사랑스럽던 아기는 훗날 광고 모델이 되어 TV에 나왔고요. 둘째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이사를 하고 아파트 값이 오르며 재산도 늘었죠.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다고도 했어요. 학구열이 운을 잘 만나면 생기는 일들을 수기의 인생을 통해 목격하는 것 같았어요. 외국인과의 결혼 생활도, 세계 여행도, 천사 같은 아이들도, 그림도, 부동산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서도 어느새 하나씩 이루어 버린 수기의 은근한 생을 가리켜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죠.
"수기는 평범한 것들로 가장 특별하게 삶을 일구어 가는 사람이야."
그럴 때에도 수기는 덤덤하게 '내가?', '내 인생이?' 하며 수더분하게 웃어버리고 말더군요.
제가 첫 책을 만들었던 그해 여름. 수기의 가족은 영국에 있었습니다. 파리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바로 전까지도 수기는 제 글을 점검하고 피드백을 해주었죠. 서로 밤낮이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저는 미치도록 쓰고, 수기는 더 열띠게 초본을 봐주었어요. 당시에는 수기가 제 이야기를 읽는다기보다 꼭 들어주는 것 같았는데 마치 스물이었던 둘이 자취방에서 머나먼 꿈을 나누며 반짝반짝 눈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았죠.
해가 바뀌어도 제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방세나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할 때면 수기는 휴가 때 비행기값을 위해 들어 둔 적금을 깨면서까지 저를 도왔습니다. 삶은 생존을 너머 발전을 해야 한다는데 생존의 턱을 넘지 못하고 저는 수기에게 평생 신세만 졌습니다. 네 식구 빠듯한 살림에도 엄마의 딸, 수기는 제게 늘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살았고, 제 글도 태어납니다.
작년까지 수기네는 제주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어요. 그때마다 수기는 엄마를 모시고 오지 않아서 속상해 했죠. 어느덧 뒤뚱거리던 돌쟁이 첫째는 엄마의 키를 넘어섰고, 낯가림이 심하던 둘째는 수다쟁이가 되었네요. 수기의 아이들은 제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한여름의 제주를 다섯 차례 겪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한겨울 제주 폭설에 벌러덩 누워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네요. 그러면서 부산에 내린 얕은 눈바닥 위에서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는데 어찌나 귀엽고 웃기던지요.
일 년 중 딱 한 번, 저는 수기를 만나는 여름을 기다립니다. 그래봐야 저는 출근에, 수기는 아이들을 돌보는데 정신이 팔려서 허락되는 시간이란 게 고작 서너 시간이 전부이지만요. 수기와의 만남은 언제나 '고요한 열심'과 '팔팔 끓는 다정'이 번져서 순식간에 없던 기운을 되살립니다.
이번 여름 수기는 한 달 동안 영국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즘 저는 회사생활에 치여서 수기와의 연락이 뜸하던 터라 수기네 가족이 떠나는 날을 당일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가족들이 무탈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기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직장을 옮긴 지 보름이 되던 때였어요. 전의 직장에서 근로계약서와 임금 체불 문제로 수개월째 속앓이를 겪다가 시간의 틈을 두지 않고 바로 옮긴 회사였습니다. 지난 일들이 분하고 당한 인간들에게 억울했지만 완전히 다른 일에 적응하느라 하루하루가 빡빡했죠.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히느라 뇌는 터질 것 같고 몸은 곤죽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숙면에 들지 못했습니다. 비위생적인 근무 환경과 기존 근무자들의 거친 태도가 갈수록 거슬렸어요. 지금만도 도떼기시장 같은 곳이 곧 성수기인 가을이 오면 두 배로 바빠진다는 소리에 목이 졸리는 것도 같았고요. 식사 시간은 30분 내로 해결하고, 퇴근 시간은 늦거나 빠르거나 매일 달랐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명문'이라는 이름이 붙이고 큰 행사를 준비하며 겉은 멀쩡해 보였죠. 고인물 둘셋을 제외한 부서의 인원은 계속 바뀌었고, 저는 그중에 가장 최근에 입사한 사람이었습니다. 밥벌이 그 이상이 아닌, 모른 척 덤덤하자고 마음을 붙잡고 또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고, 퇴근하면 퇴사하고 싶었습니다.
'공황.'
그냥 죽을 것 같았습니다. 숨이 바로 쉬어지지 않고, 이대로 질식해서 결국은 숨이 끊어져서 죽을 것 같은 공포였습니다. 비위생적이고 무질서한 근무 환경에 구토가 치밀었고,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과 무례한 인간들에게 치가 떨렸습니다. 사방이 가로막혔는데 출구를 찾을 수 없고, 벽을 부술 수도 없어서 막막하다가 사물이 흔들리고 공기가 모자라서 더 버티면 무조건 죽는다는 기분. 곧장 회사를 나왔습니다.
그것이 '공황'이라는 것을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회사에서 오는 연락을 거절했습니다. 대강의 사유를 말하고, 현재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회사 메신저에서 모두 나가고, 회사에서 오는 연락이 멈추자 폰이 조용해졌습니다. 그사이 수기는 영국에서의 휴가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수기의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도 분명하게 사정을 말할 수가 없어서 폰을 껐습니다.
한 번씩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꿈속에서 공황을 다시 겪기도 했으며 처음 보는 두드러기가 목에 번졌습니다. 퇴사를 저지른 한심함과 무력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꼼짝 않다가 몸을 일으켰습니다. 청소를 시작했어요. 정돈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을 쓸고 닦고만 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의 파편들이 조금 가라앉자 밖으로 나갔습니다. 걸었어요. 이렇게 땀이 많이 나도 사람이 죽지 않는 게 신기하다 싶을 때까지. 숲에도 가고 오름에도 가고 아무튼 계속 움직였습니다. 그러다가 잊고 있었던 반년 전에 부치지 못한 편지가 떠올랐어요. 그날 수기가 전해온 엄마의 기쁜 소식과 수기가 그린 그림도요.
엄마 졸업식에 다녀왔어.
그날은 60대 중반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한 엄마가 70대 중반에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침내 대학까지 졸업한 날이었어요. 그리고 졸업식장에서 학사모를 쓴 엄마를 그린 딸(수기)의 그림은……
'웅장해.'
웅장했어요. 그 일이 어찌나 굉장하고, 그 그림이 어찌나 다정한지 차마 몇 마디 말로만으로 뱉을 수가 없어서 반년 전 엄마에게 편지의 서두를 적어두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오늘에서야 엄마에게 이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그 딸에 그 엄마. 수기를 똑 닮은 엄마 덕분에 어쩌면 저는 완전히 부서진 채로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가 삶을 통과하며 스스로 이룩한 것들로 인해 제 영혼이 얼마나 감동받고 교훈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늦었지만 졸업을 축하드려요!
그리고 그런 엄마를 똑 닮은 딸 수기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기에게 평생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그사이 수기는 휴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쯤 여독이 풀렸을까 궁금하던 차에 마침 수기가 보낸 선물 상자가 택배로 왔네요. 상자 안에는 수기가 저를 위해 골랐을 알록달록한 선물들이 가득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회사 상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장애 요소를 제거하고, 어질러진 상황을 고칠 테니 회사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 알겠다고 했어요. 더 엉망진창이었던 것은 회사보다 제 마음이었으니 가지런해진 마음으로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퇴사 이후 한 달 동안 제가 만난 사람이 '단 한 명'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보고 만져야만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서 저는 혼자인지도 몰랐습니다. 엄마와 수기의 다정함이 정말 오래가는 것이라서 그랬나 봅니다. 이번에는 그 다정함 앞에 빈손이 되지 않도록 이 섬에서 마주한 가장 큰 뭉게구름을 엄마에게 바칩니다.
⚶개똥도 약에 쓰이는, 우리 집 철학⚶
어떻게 이런 사람으로 엄마는 태어났을까
어떻게 이런 엄마를 우리는 만났을까
엄마의 사랑에 빈손이 되지 않도록
우리 죽을 때까지 친구하자.
❙ 연재 속도가 놀랍죠? 가뭄에 콩이 났던 이번 이야기 잘 보셨다면 <엄마의 졸업>을 같이 축하해주세요~
❙ [개똥철학]은 8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