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6편_제이님에게
일 년 중 겨울이 가장 바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연말에는 손님이 미어터져서 주차장이 부족할 정도로요. 새해가 시작되면서 눈이 자주 내렸고 빙판길에 출퇴근을 하느라 애를 먹었죠. 새로 구한 직장의 급여일이 한 달 후로 바뀌어서 형편이 어려워졌어요. 난방 보일러에 기름이 바닥났고, 온수 보일러 가스통이 비어서 뜨거운 물을 쓸 수 없었어요.
하루 13시간 반씩 일하면서 나흘 동안의 긴 연휴를 보냈고 그 와중에 폰이 고장 나서 연휴 내내 근무가 수월하지 않았어요. 이틀 전에는 크리스마스, 어제는 새해,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봄이 된 기분. 내가 겨울에서 봄이 되는데 딱 3일이 지난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은 마당에 봄볕이 내렸습니다. 관속에 들어가는 날이 내 휴무려나 했는데······ 오늘은 제 휴무일입니다.
산타와 조나단의 그림을 매일 보고 있어요. 터질 것 같은 선물 꾸러미와 활활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 대롱대롱 걸린 양말들을 보고 있자면 제가 저 따뜻한 거실에 들.루.바 있는 것만 같아요. 싱글싱글 웃고 있는 조나단과 눈을 맞추면 우울함과 불안이 가시죠.
제이님의 겨울은 어떤가요.
망고는 올해 일곱 번째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저와는 여섯 해를 같이 보내고 있어요. 아기 들개였던 시절에 혼자 맞던 눈을 이제는 함께 맞고 있으니 우리의 겨울은 새벽에도 얼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제이님과 망고의 인연도 여섯 해째가 된 것이군요. 시간은 무상하고, 인연은 신비로워요.
택배 상자에 망고를 넣어서 제이님의 집 앞에 놓아두는 상상을 여러 번 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처럼 보이도록 냉장고 반 만한 커다란 종이 상자에 사람 키 만한 누런색 리본을 붙이고, 안에 있던 망고가 제이님이 귀가하는 시간에 짠! 하고 나타나서 둘을 만나게 하는 그런 상상이요. 그 상상 속에서 제이님은 언제나 말없이 울고 있고, 망고는 낯설어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앉아서 제이님과 눈을 맞추죠. 만난 적 없으나 만났고, 말한 적 없으나 알고 있는 둘이에요.
믿기 힘든 만남이 우리에게 일어났고, 제이님이 그 만남을 오래도 귀히 여겨 주신 덕분에 이놈의 <제주 들개, 망고>는 개구실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망고와 산책을 할 때면 제이님의 마음이 망고의 발자국 위로 겹칩니다. 참으로 뜨거워서······ 뭉쳐진 눈이 녹을 정도라니까요. 볼 수 없는 존재에게, 셀 수 없는 사랑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망고의 눈산책을 본다면 아마도 놀라실 거예요. 입으로는 눈빙수를 퍼먹으며 동시에 뜨거운 네 발로 눈을 녹이는, '세상의 모든 차가움을 온몸으로 없애버리겠다'는 장면인 거죠. 그렇게 망고는 제이님의 마음을 먹고 자라 세상 뜨거운 개가 되었습니다.
지난주 오두막에 다녀왔습니다. 눈이 녹고 있는 숲속은 망고 십만 마리가 한꺼번에 눈밭을 뛰고 있는지 눈 녹는 소리가 바람의 소리를 이길 정도였어요. 듣기 좋을 만큼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오두막 입구에 <개인사유지_숲길 코스가 아닙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더라고요. 누구의 땅이든 누리는 자의 것 아니겠어요. 새하얀 땅에 서 있는 건 오두막. 멀리서나마 보고 있는 건 제 두 눈. 그리고 그것이 '제이님만의 오두막'임을 영원히 눌러 담은 제 마음. 오두막과 저의 눈과 마음까지 편지에 모두 넣어서 보내니 부디 오늘도 휴식하시길 바랍니다.
아, 월급이 나오자마자 중고 등유난로를 집에 들였어요. 망고의 집에는 따뜻한 담요와 밤에 쓸 온열 방석을 마련했고요. 진작에 구할 걸, 퇴근하고 훈훈한 공간에서 보내는 두어 시간이······ 살아생전 이런 호사가 없습니다. 어르신 우유는 너덜너덜 아니 말랑말랑해져서는 도무지 난로 곁을 떠나지 않아요. 크지 않은 비용으로 커다란 온기를 입으니 추위도 불 붙이는 법을 알아야 물리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직 남은 겨울. 한창 바쁜 시기인 직장에서는 이번 달 초에 부서장이 되었습니다. 급여가 많이 올랐고, 돌봐야 할 동료들도 많이 늘었어요. 갚아야 할 빚이 있지만 봄에는 형편이 조금 나아질 것 같습니다.
<호구>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지난날, 인간에 대한 '히스토리'에 집중하다가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서로에게 반한 이유 때문에 결국은 헤어지게 되었 듯이 상대를 죽도록 이해하려는 것으로 오해를 멈출 수 있겠다는 사실을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끝난 자리에는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의 영역 또는 연인이나 부부라는 관계의 정의는 남지 않고, 여전한 시간을 영유하고 조건이나 계산 없이 바칠 수 있는 '무조건'만 남아서 상대가 내 세상에 있든 없든 살아갑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아요. 나는 누구와 함께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나랑 잘 살다 가려고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 길에는 누가 오고 가도 관계없습니다. 따뜻한 방에 평온한 내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더해 어떻게 살아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호구>로 살다 갈 것이기에 이왕이면 남은 생은 '나한테' 가장 많이 호구짓을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호구 같은 나에게 베풀어주는 '더한' 호구들이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나의 과거는 가여워지지 않습니다. 등신 같은 한 인간이 <나라는 호구>로 이야기를 짓다가 <내가 아닌 이들 또한 호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늠름한 호구'가 되었습니다. 제이님의 지난 일들······ 제가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 그럼에도 제이님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앞으로는 제이님이 자신을 위한 호구로 점점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사람 가족과도, 동물 가족과도 우리는 사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1박에 140만 원짜리 객실에서 연휴를 보내는 이들을 상대하며 지난 설을 보냈어요. 당시에 하루 10만 원이 안 되는 일당을 벌던 저는 내 현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훨씬 가치 있고 값비싸서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그때쯤······
소낙눈이 멈추지 않던 날에
제이님이 모처럼
제게 안부를 물어왔기 때문입니다.
2025.02.16
조해야
⚶개똥도 약에 쓰이는, 우리 집 철학⚶
(이 편지를 조용히 나누었을 당신에게도.)
추운 날을 지켜주어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는 똥구멍이 아닌 입이 찢어지게 '마음 부자'로 지내고 있어요. 잘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 출퇴근에 갇혀서 연재가 늦었습니다. 안부에 답하지 못한 이들에게 종일 편지를 쓰는 중이에요. 이런 글도 괜찮다면 다음 휴무에도 올게요. 당신을 잊은 것이 아니에요.
❙ [개똥철학]은 7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