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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Aug 23. 2020

네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을

김조하 탐구생활

자존감 편
2


 나는 예쁘지 않다.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 그 기준은 모호하지만 누가 봐도 예쁘다 싶은 얼굴이 따로 있기는 하니 객관적 아름다움이란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 객관적 아름다움의 카테고리에 내 얼굴이 포함되지 않음은 분명하다. 집안이 좋지도 않다. 항상 생활고에 시달려 좋은 음식을 먹지도, 좋은 옷을 입지도 않는다. 딱히 이렇다 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보다 늦은 졸업에, 높지 않은 학점에, 높지 않은 학벌. 이렇게 외모, 집안, 학벌, 능력 뭐 하나 가지지도 않은 내가 왜 스스로에게 애정을 가질까. 대체 왜일까. 


 사실 예쁘지 않은 외모를 가진 것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지 않았다. 어디를 가나 예쁘다는 말을 듣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야무지다, 착하다, 똑똑하다, 용감하다’ 등의 말을 듣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칭찬이나 평가에 기대며 자란다.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아이는 계속해서 예쁘다는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지 않았으니 굳이 그런 말을 계속해서 들을 필요도 없었다. 대신 똑똑해지려 했고, 독립적으로 내 일을 해내려고 했다. 어릴 때도 부모님의 칭찬에 크게 영향받지는 않았지만 역시 어린아이였으니, 자신이 듣는 말을 유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항상 동생을 잘 돌보고, 아이들을 이끌고, 무서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족들은 나를 사랑했다. 엄마가 말하시길, 내가 어릴 때 주변에서 나에게 못난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빠나 고모가 나에게 못난이라고 부를 때마다 당신 눈에는 예쁘기만 한 아이한테 못났다고 하는 것이 속상했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확신했다. 어린 나는 아마 육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아빠가 ‘못난이’라고 부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못났다고 하는 와중에 따뜻한 목소리와 사랑스러운 눈빛을 읽지 못했을 리 없다. 내가 예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음을 어릴 적부터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굳이 예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주눅 들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자라면서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동시에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조기교육 받은 것이다. 물론 태생적인 요인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어린 시절의 내가 크게 혼날 때에도 스스로의 잘못이 없다고 느껴지면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로 종결될 훈육의 상황이 배로 길어지곤 했다. 몇 대 더 맞는 한이 있어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를 똑바로 쳐다봤다고 하니, 태생적으로 주눅 들지 않는 성격을 갖고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성격을 가진 아이가 만약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사랑을 받더라도 예쁘다는 등의 평가식 칭찬만을 받았다면 자존감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가식 칭찬은 위험하다. 어쩌면 오만하기까지 하다. 굳이 필요 없는 칭찬을 입에 바름으로써 그 칭찬을 듣는 사람은 원하지도 않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흔한 상황에서도 불편한 칭찬을 찾을 수 있다. 나 스스로 내 외모를 칭찬하지 않으면 그것이 자기혐오인가? 외모가 출충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을 것처럼, 주변 사람들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굳이 아니라고, 너 예쁘다고 말한다. 그게 더 안 이쁘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뭐 아무튼 그렇게 타인의 외모를 애써 칭찬하고, 자기 비하를 하는 것처럼 여기는 상황이면 나는 괜히 머쓱해진다. 칭찬이나 위로를 받으려 한 말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자기 비하가 아니라, 그런 나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내 얼굴이 어떻다고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리고 싶다는 것인데.


 나는 여전히 예쁘지 않고, 예쁘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에 예쁘다는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필요하면 내가 스스로에게 예쁘다고 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받는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내 곁에 있다. 혹여나 없어진다 해도, 내가 스스로를 사랑해주면 될 일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그토록 당연한 일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모두가 서로에게 불필요한 평가를 하고, 칭찬을 바라고, 입에 발린 말로 불쾌감을 전달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어쩌면 거만할지도 모를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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