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vs 잔스포츠
■ 가방의 '폼'를 위해 책을 놓고다니는 패기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우리들 가방은 네모났고 딱딱했다.
그리고 언제나 흙먼지가 뒤덮여 있었다.
그 시절 인기 브랜드는 죠다쉬, 쓰리쎄븐. 움직이는 그림
(홀로그램), 빳빳한 질감이 특징이었다.
나는 특히 일요일 아침마다 보던 애니메이션 ‘히맨’을
좋아했는데, 부모님이 히맨 일러스트가 그려진 가방을
사주셨을 땐 진짜 힘이 솓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가방은 받아쓰기 시험 때 짝과 치팅을 못 하게 하는
즉석 가림판으로도 활약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슬슬 브랜드와 유행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패션의 충격을 받은 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였다. 대원외고는 전국 각지, 특히 서울 강남과
강북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입학한 친구들이 많았다.
강남 출신 친구들과 강북 출신 친구들의 가방은 브랜드와
메는 자세부터 달랐다.
강남 친구들의 당시 유행하던 가방은 주로 루카스였다.
엉덩이 밑까지 길게 늘어뜨린 채 힙합 스타일 교복 바지와
오버핏 상의를 매칭해 자기 스타일을 드러내는 악세사리
처럼 메고 다녔다.(이스트팩은 강남북 공통)
강북 출신 친구들은 장스포츠나 이스트팩 가방을 끈을
최대한 줄여 등에 찰싹 붙이는 식으로 멨다.
마치 거북이 등딱지처럼 보였는데, 이게 더 멋있어 보이기
위해선 가방이 가볍고 납작해야 했기 때문에 책은 손에 들고
다니거나 아예 학교 책상서랍에 넣고 빈 가방으로 다니는
아이러니한 풍경도 연출됐다.
하지만 그때 가방은 가격도 지금처럼 과하지 않았고,
학교 끝나고 학원 다녀올 때까지 가방하나에 담아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멋은 대로, 역할은 역할대로 했다.
학부모의 입장으로 시대의 변화를 느끼는 건 어쩔수 없다.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 때, ‘입학준비금’이 지원되었지만
백화점에서 20만 원 가까운 책가방 가격을 보았을때
나는 솔직히 깜짝 놀랐다.
“이 가격이 진짜 애들 책가방 가격이야?”
가격대비 질과 기능이 월등해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게는 더 나가고, 장식품과 악세사리, 브랜드
로고만 커졌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비싼 가방에 책이나 다른걸 거의 넣지 않고 다닌다는 것.
(라떼는 지우개 따먹기용 지우개, 딱지, 짬뽕공이라도
들어서 가방은 언제나 꽉 차 있었다)
요즘 초등학교는 지필시험이 사라지고,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학교가방은 부모님께 맡기거나 집에 두고 학원가방
으로 바꿔든다.
그 학원가방은 학교 가방 보다 더 무겁고, 책들은 어려우며
부모의 불안과 교육 시장의 과잉이 담긴 ‘학원이름이 적힌'
가방이다.
이런 풍경을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가방이 무거워질수록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더 가벼워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서울 초등학생 10명 중 8명이 하교 후
학원 2곳 이상을 이동하며 학교보다 학원 가방을 더 오래 메고 다닌다고 한다.
“사교육 시간은 늘고, 아이들의 자유 시간과 놀이
시간은 줄고 있다.”
(출처: 서울연구원, 교육통계, 2023
예전에도 그렇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고, 아직도 이공계 노벨상 하나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본다면, 과연 이 방법이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연 무거운 가방은 아이의 불안감일까? 부모의 불안감일까?
■ AI시대의 육아 한 줄 성찰
가방이 무겁다고, 아이가 더 똑똑해지는 건 아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건 ‘정보를 많이 담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걸러내고 연결하는 능력이다.
책을 많이 넣는 아이보다, 한권이라도 책을 깊게 읽고,
생각을 가방 밖으로 꺼낼 줄 아는 아이가 미래 사회의 진짜
전문가가 된다.
여러분의 공감(♥)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