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강남 8단지 놀이터 vs 강북 철탑 놀이터
“와, 이 놀이터는 테마가 보석인가봐.”
반포 한강공원에 산책을 갈 겸 연일 신고가를 세우는
원베일리 아파트 완공후 구경겸 들른 단지를 지날 때,
여러 테마로 만들어진 단지별 놀이터를 보면서 아내와 난
감탄했다.
내가 어릴 적 우리동네 놀이터는 특별한 이름은 없었고,
근처에 큰 철탑이 있어 통상 철탑 놀이터로 통했다.
바닥은 모래가 다 드러나 거의 시멘트 바닥이었지만,
항상 아이들이 가득하고 정글짐과 구름사다리는 강자만이
살아남던? 강철재질에 친환경과 상관없는 페인트가
원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내는 내 어릴적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같은 서울하늘
아래 너무 다른 문화에 가끔은 신기해 하기도, 또는
놀라기도 한다.)
나는 강북의 동대문구 다세대 밀집지에서 자랐다.
‘맨션’ 또는 '연립'이라 쓰고 ‘재개발 기다리는 다세대’라
읽던 그 시절, '놀이터'는 사실 고정된 장소가 아니었다.
옥상, 골목, 계단, 심지어 주차장도 우리에겐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모이면, 거기가 곧 놀이터였다.
아내는 강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출신이다.
단지 안에는 규격화되고 일정 간격으로 놀이터가 있었고,
안전점검을 마친 놀이기구들이 있었으며, 나름 푹신한(?)
모래가 바닥에 깔려 있는 놀이터는 놀이의 공간이자 정보
교환의 공간이었고, 대부분은 학원가기전 잠시 휴식하는
공간이었다.
강북의 놀이터는 책가방을 던지고 뛰어가서 정글짐을
선점하고 얼음땡으로 시작해서 다방구를 하고, 형과 누나가
오면 피구를 하는 곳이었다. 누가 어디서 사는지 보다는
언제까지 놀다가 갈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쓸데없이 용감했지만, 덕분에 싸우고 화해하고, 울다 웃는
걸 몸으로 배웠다. 이것저것 할 놀이도 많았고 밥먹으러
오라기 전까지는 지칠때까지, 학원시간이 늦어서 아차 싶을
때까지 놀았다.
강남의 놀이터 아이들는 시간표와 계획 속에서 놀았다.
피아노 학원 가기 전 30분, 수학학원 끝나고 15분.
놀이는 틈새에 끼워 넣는 일정이었고, 그 틈이 좁아지면
놀이터는 계획표에서 아예 사라졌다.
내가 하루종일 놀이터에서 온동네 친구들, 형과 누나,
동생들을 만났다면 아내는 정해진 시간, 장소에서 같이
쉬는 시간이 허용되었던 또래를 만났다.
아마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서 시작된 시각의 차이는 지금
아내와 나의 '놀이' 개념에도 영향을 미친것 같다.
■ 지금 우리 아이는?
학교 끝나고, 수학 학원 가고, 돌아와서는 태권도 등
체육활동을 하거나 영어학원을 가고, 가끔 아내가 그랬듯이
다음 스케쥴에 따라서 놀이터에서 잠시 스케쥴이 맞는
아이끼리 논다. 주말에는 실내 키즈 까페에서 친한 엄마들이
아이들을 모집해 예약제로 논다.
어느새 문화가 되었는지 놀이터에는 부모가 동반하지 않은
아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는
그네를 타다가도 아이에게 “조심해!”라고 주의를 주고,
준비하고 나오지 않았는데 모래를 만지면 “손 씻어야지!”
라며 아이를 데리고 근처 수돗가로 데려간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잠시들른 경우는 그렇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놀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놀이터’가 있어도, 놀 시간이 없고 놀 친구가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그건 오늘 날 강남이든 강북이든, 마찬가지다.
� AI시대의 육아 한 줄
AI시대 융합과 협업은 주요 과업이지만 함께 놀면서 다른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융합과 협업능력을 키울 수 없다.
창의력은 그네 위에서 ‘누가 더 멀리 날아가나’ 다투던
순간에 여러 방법을 강구하면서 자란다.
놀이터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관계와 감정이 부딪히는
훈련장이다. 7세 입시와 보호에 갇힌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 시간과 친구'는 미래 시대를 맞이할
아이들에게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러분의 공감( ♥️ )은 큰 힘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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