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Mar 27. 2020

어떻게 평범한 사람은 괴물이 되는가

조주빈 사건에 대한, 그리고 영화 Seven이 주는 통찰력에 대한

 현재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뉴스의 양대 산맥은 코로나 19와 '박사방' 사건의 조주빈이다. 조주빈이 검거되고 그의 신상이 공개되기까지 그가 어떠한 사람인 가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그의 신상이 공개된 후 그를 알았던 사람들의 증언이 속속들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그의 봉사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 대학 기자 시절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에서 알 수 있듯, 왠지 괴물의 형상을 갖고 있을 것만 같은 범죄자는 특별히 대한민국을 뒤흔들 범죄 사건의 주동자로는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25세 청년이었다.


 그가 뒤에 숨어 수많은 여성들을 인스타로 팔로워 하면서도 그런 여성을 '물건화'하고 '도구화'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혹자는 그 이유를 그의 외모에서 찾을지도 모른다. 외모가 어떻든 간에 그는 군대, 학교, 사회에 섞여 살아가도 내면에 그런 괴물이 있다고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평범한 사람이다. 미성년자를 포함하여 알려진 것만 74명의 여성 피해자를 협박해서 차마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엽기적인 성착취물을 제작한 것도 모자라 취재하려는 기자에게 20대 여성이 S본사에서 뛰어내릴 거라고 도리어 협박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사회가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에서 한참 벗어나 '악'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그간의 행적이 밝혀지며 살인 공모죄, 사기죄 등 죄목이 속속들이 추가되고 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조주빈이 목에 깁스를 하고 이마에는 반창고를 붙인 채 나타났을 때, 누군가 중계를 하며 그는 정상적인 사람과는 다르다, 뇌 구조 자체가 다르다,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부르짖었다. 정말 그러한가? 그는 사이코패스 같지만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유영철, 정남규와 같은 사이코패스는 돈을 목적으로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순전히 위해를 가하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들이다.


 지난 1월 S사의 취재에 응한 조주빈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죄책감이 있다. 하지만 하나 묻겠다. PD님이라면 얼마를 주면 사람을 쏘겠냐. 저는 과감히 쏜다. 그에 따른 이익이 있을 경우에는 말이다."


 그는 자기 행동에 대해 합리화를 하고 있다.


 이쯤에서 이 세계에 다시없을 명작 영화 '세븐'이라는 렌즈를 놓고 이 '박사방' 사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세븐'은 브래드 피트, 모건 프리먼 주연의 1995년도 영화다.

출처: 영화 '세븐'

 젊은 피가 끓는 열정적인 형사 밀스(브래드 피트)는 연쇄 살인 사건의 서막을 여는 한 살인 사건을 통해 은퇴를 일주일 앞둔 노장의 형사 윌리엄(모건 프리먼)과 일하기 시작한다. 성경의 7대 죄악인 '식탐', '탐욕', '나태'를 각각 표상하는 3개의 살인 사건을 차례로 접하면서 이들은 이 연쇄 살인 사건이 나머지 죄악인 '교만', '욕정', '시기', '분노'를 뜻하는 4개의 추가 살인 사건으로 완성되리라 짐작한다. 차마 글로도 옮기지 못할 만큼 잔혹하고 엽기적인 살인 방법에 치를 떨며 밀스는 꼭 연쇄 살인마를 잡아 해피엔딩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만약 살인범이 악마가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면 어떨 것 같냐며 반문하는 윌리엄. 오랜 형사 생활을 통해 연륜을 쌓아온 그이기에 그의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고, 어쩌면 혜안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밀스는 늙은이의 투정 혹은 꼬장쯤으로 받아들이며 어쩌다 그런 냉소적인 성격을 갖게 됐냐고 묻는다.


 "나는 무관심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네."

 "삶을 헤쳐나가는 것보다 마약에 의지해버리는 편이 쉽지. 힘들게 버는 것보다 훔치는 게 더 쉽고, 애를 키우는 건 어렵지만 때리는 건 쉽지. 사랑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공을 들여야 해."


 "우린 지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아냐 우린 이곳의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지."


 청와대 국민청원의 최다 기록을 점하는 이 'N번방', '박사방' 사건과 함께 조주빈의 신상, 그의 과거 행적을 접하며 나는 이 영화와 이 장면이 떠올랐었다. 조주빈은 이제 모두가 악마라며 손가락질하고 경멸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그럴 수가 있었냐며 벌레만도 못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마치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는 어쩌면 지하철 내 옆자리에 앉았을 수 있었으며, 군대 후임이거나 고등학교 동창일 수 있었다. 그는 정신 이상자가 아니며 나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어찌 보면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즉, 영화 속 대사처럼 조주빈은 악마가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다. 그런데 그는 어쩌다가 악마나 할 수 있을 행동들을 하게 되었을까?


 그를 알았던 사람은 그가 권력욕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회 봉사 활동을 하며, 기자로 글을 쓰며, 학점 4.0을 맞기 위해 공부하여 자신을 세상에 증명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외모, 학력, 성격에서 스스로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으로 보니 자신의 외부적 조건은 한참 못 미친다. 그는 "돈이면 다 돼"라는 믿음을 키우면서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의 틀을 확고히 한다.


 그는 힘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를 복종했으면 했다. 자신의 피해자가 될 여성이 걸려들기만 하면 어떤 출구도 생각해내지 못할 만큼 압박해서 두려움에 떨게 했고 결국은 자신의 말에 따르게 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취약해진 상대가 자신의 말대로 가학적인 영상을 찍으니 몰래 엿보고 선망했지만 소유할 수 없었던 '여성'을 지배한 것 같아 자신에게 엄청난 힘이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는 정치계, 언론계 인사에게도 손을 뻗으며 사기를 치고는 그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과시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가 과시하고 자랑할 때 상대는 어두운 방구석에서 채팅하고 있는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의 말대로 그는 죄책감을 느꼈다. 아주 처음에는. 하지만 오랜 커뮤니티 생활을 통해 여성을 '도구', '물건'으로 보는 그의 사고 습관 덕에 이제는 그들이 하나의 '수단'이다. 돈벌이 수단이자 나의 욕구를 만족하는 수단. "저는 과감히 쏜다. 그에 따른 이익이 있을 경우에는 말이다." 자기 합리화와 생각의 틀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동정, 연민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감각들이 점점 무뎌진다. 처음에는 100개의 감각 중 100개가 멈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는 무시한다. 다음에는 80개의 감각이 말한다. 또 무시한다. 다음엔 50개. 무시. 30개. 무시. 10개.. 3개..


 처음으로 취재진 앞에 기브스를 하고 모습을 드러낸 그는 '여성 피해자들에게 할 말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입을 다문다. 그는 여성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기를 거절했다. 조금이라도 공감을 한다면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한 합리화, 그동안 자리 잡은 사고의 틀, 나의 존재 이유까지도.


 그러면서도 세 명의 인사 이름을 거론하며 죄송하다고 했다. 정말 죄송했다기보다는, '나 그런 중요한 사람들하고 연관된 사람이야. 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야.'라고 과시한 듯하다.


 연쇄살인범은 살인을 하며 자신의 힘, 영향력을 느낀다고 한다. 상습적인 아동 강간범이 아주 취약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 또한 신체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으니 힘을 느끼기 '쉬워서'일 것이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내가 또 다른 인격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는 잊지 못할 쾌감인 것이다.


 이제 영화로 돌아와서.


 나는 무관심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네


 성착취 텔레그램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 미덕이 된 사회다. 어쩌면 호기심으로, 어쩌면 욕구로 텔레그램의 성착취 영상을 처음 접할 때, 가학적임에 약간의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영상을 만든 조주빈이 느꼈을 그 힘을, 누군가가 나에게 복종할 때 느끼는 어떤 쾌감을 똑같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성욕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겠다. 남녀노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성욕과 그러한 영상을 통해 해소하는 '성욕'은 종류가 다르다) 혹시 모르니 조주빈처럼 직접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겠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지불하고 범죄를 남몰래 구경하면서 타인을 짓밟고 싶은 나의 어두운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내가 직접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니까 법에 걸리지는 않겠지. 기록에 남지도 않을 테고 추적하기도 어렵겠지.


 그들 마음속 어딘가에서 피해자가 고통받는 모습이 끔찍하지 않으냐고,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두라고 미약한 외침이 들려온다. 그럼에도 다음 영상을 클릭한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에 무관심하기를 선택했다.


 삶은 모든 것이 선택이다. 우리는 조주빈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기로 순간순간 선택한 결과를 보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괴물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처음에 느꼈을 동정이나 연민은 그가 무시하기로 선택할수록 점점 멀어지고 아득해진다.


 영화 '세븐'에서 연쇄살인범이 어떻게 저런 끔찍한 일을 하고도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것이다. 그는 자기 합리화의 덫에 빠져 있다. 그래서 맨 정신인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정당성과 의미를 부여하면서 평범한 사람은 괴물이 된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중대한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영화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다만 영화에서 마지막 살인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삶을 헤쳐나가는 것보다 마약에 의지해버리는 편이 쉽지. 힘들게 버는 것보다 훔치는 게 더 쉽고, 애를 키우는 건 어렵지만 때리는 건 쉽지. 사랑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공을 들여야 해.


 양심의 목소리가 들릴 때가 기회다. '법에 걸리니까', '밝혀지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니까' 그게 두려워서 옳은 것을 선택할 땐 이미 늦었다. 현재 진행 중인 성착취 피해자의 삶을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루도 악몽을 안 꾼 적이 없고 하루도 잠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사람 만나기가 두렵다. 남들은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가정도 갖겠지만 그런 정상적인 삶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남자와 정상적으로 사랑하고 성관계를 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그들의 삶을 누가 어떻게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사건들을 그저 나와 종이 다른 어떤 악마의 일이라고 치부할 것은 아니다. 사랑하려면, 옳은 것을 선택하려면 언제나 노력이 필요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살아왔다면 매 순간 옳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을 인정해주자.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생각난다면 이제라도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더 어려운 길을 걸어갈 용기를 내자. 우리의 삶은 보이는 것이 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