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급함이라는 플러그를 올바른 콘센트에 꽂기

그리스도인의 여정

by 밍박사

복음(good news)을 받아들인 이후, 삶이 진정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갈급함이라는 플러그를 알맞은 콘센트에 꽂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급함이라는 플러그는 반드시 말씀이라는 콘센트에 꽂아야 합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정말 많은 대학생들을 만났는데요.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 보니 영적 성장의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두 부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갈급함이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고민이나 걱정이 많지 않은 세대입니다. 물론 각자 처한 환경이나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제 경험으로는 취직, 결혼, 육아를 하기 이전의 삶은 비교적 가볍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 입시라는 매우 중대한 과제로 인해 주님을 붙잡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그 갈급함은 사라지고, 입시를 통과하며 얻은 자유로 친구들과 놀고, 술 마시고, 연애하고, 하고 싶었던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충분히 만족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취업 준비나 시험 준비를 제외하면,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이런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면, “나는 지금 타이밍이 아니야. 이런 게 지금은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은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소원이고 갈망이 있습니다. 다만 이 부류는 그 갈급함이 분산되어 있어 자신이 현재 무언가를 원한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두 번째 부류는 갈급함은 있으나, 그 갈급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상태입니다. 이런 부류는 양상이 아주 다양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갈급함을 자기 개발, 심리 상담, 연애, 혹은 친구 관계 등로 메우려고 합니다. 혹은 갈급함이 너무 크고 괴로운 나머지 오히려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놓습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도 스스로 잡으려고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든데, 말씀이 날 어떻게 해결해?"라고 적대심과 반발심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갈급함이 분산되어 있지 않으면서 하나의 초점처럼 모아진 갈급함을 적절한 곳에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변화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갈급함의 플러그를 ‘말씀’이라는 콘센트에 꽂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이유에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그 문제의 해결책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사람들은 인생에서 아주 큰 문제에 봉착하든, 대단한 문제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허무한 상태이든 상관없이, 자신에게 어떤 '갈망'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말씀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신앙 생활을 하며 늘 이렇게 느꼈습니다. '결국 갈급함을 분산시키지 말고 한 곳에 모으되, 그 초점이 말씀으로 향한다면, 신앙 생활에 있어 최적의 궤도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왔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제 안에 갈급함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저는 술 마시고 친구들과 놀고 연애하며 재미있게 1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흘려보낸 1년이 지나니까, 정말 큰 허무함이 찾아왔습니다. 시간은 지나갔는데 무언가 이룬 것은 없고, 가치 있는 어떤 것도 내 인생에 남아 있지 않은 느낌.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저에게 내재한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정말 맞는 곳에 온 걸까?” 저는 교육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사실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고 경제 관련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경제학과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무한 경쟁의 취업준비에 뛰어들 자신이 없었기에 적당히 수능 점수에 맞춰서, 취업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교육대학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초등 교사를 적게 뽑지 않아서 교육대학에 가면 초등 교사가 되기 비교적 쉬웠습니다.) 물론 제 선택이었지만 막상 와보니 “내가 교사가 되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커졌습니다.


마음속에 분명 갈급함이 있었지만, 그 갈급함은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습니다. 내가 장차 갖게 될 직업과 나의 적성의 궁합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술자리나 친구, 연애 같은 것들로 저의 주의는 금방 분산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별로 갈급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던 것 같습니다.


대학 2년차에 접어들고 조금 더 진지하게 내 생활을 돌아보게 되면서, 허무함으로 대학생활을 채우는 대신 좀더 생산적인 일들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취업을 위한 스펙이 필요 없는 교사 지망생임에도 대외활동을 열심히 하고,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자기 계발서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갈급함이라는 플러그를 '자기 계발'이라는 콘센트에 꽂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변하겠지.”
그런 기대감으로 살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딘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 특정인을 비교하지 않아도 불특정 다수보다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느낌, 그런 왠지 모를 열등감이 저를 계속 짓눌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인생을 성실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그런 저의 마음속은 점점 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평균 이상의 키, 학벌, 집안, 능력 등을 가진 사람이라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남들이 보기엔 아주 배부른 고민으로 보였겠지만, 저는 늘 저보다 더 잘난 사람을 기준으로 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은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은 생각들'이 내 안에 가득차 있었기에 인생에 대단한 문제가 없어도 늘 우울감과 불안, 염려가 나를 옭아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 제가 그토록 매달린, '자기 계발'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에서의 인턴십이 있었는데요. 그 경험을 통해 소심한 제가 대담하게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자신감 없고, 자기 확신도 없고, 여전히 소심했으며, 여전히 나약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 다녀온 사이 교회에서 여름 컨퍼런스가 있었고, 그 컨퍼런스에 참석한 제 교회 친구 한 명이 너무나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친구였고, 어떤 성격이고, 어떤 말투이고,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말씀으로 완전히 변한 것입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드디어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말씀이 진짜 사람을 변화시키는구나.”


그래서 저는 말씀이 있는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게 대학교 3학년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4학년이 되기 직전, 하나님이 교회의 어떤 프로젝트로 저를 인도해주셔서 저는 말씀을 꾸준히 배우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환경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나의 갈급함을 말씀이라는 콘센트에 확실히 꽂았고, 그때 제 인생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하루도 행복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자 일주일에 하루 행복하지 않기가 어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행복이 ‘기본값(default)’이 된 것입니다. 자신감이 커졌고, 담대함이 자라났고, 자기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자기 확신은 불완전한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닌, 내 안에 있는 성령과 말씀에서 오는 확신이었습니다.


대학 4학년 임용고시 준비 기간에도 부정적인 뉴스나 시험 경쟁률에 흔들리던 친구들과 달리 저는 마치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힘든 수험생활에도 지치거나 걱정하지 않고 늘 행복하고 기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부정적인 상황과 환경에도 빼앗기지 않는 기쁨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때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영적 성장은 꾸준히 계속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갈급함이라는 플러그를 말씀이라는 콘센트에 꽂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그 경험을 하면, 인생의 문제를 말씀이 아닌 다른 콘센트에 꽂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입니다. 잠시 다른 곳에 꽂을 때도 있지만, 결국 저는 늘 진정한 해결책인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글로 써볼까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지독한 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