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을 원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제로 인간의 행복을 우리 인간보다도 더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행복을 위한 열쇠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바로 감사와 기쁨입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사를 하게 되면 기뻐하게 되고, 기쁨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행복(happiness)’은 어떤 조건이 주어졌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입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월급이 통장에 들어올 때, 좋은 곳에 여행을 갈 때, 몸이 편안할 때 행복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바뀌면 행복도 바뀝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할 때, 예상치 못한 병원비가 나올 때, 주변 사람들과 다툴 때, 상사가 스트레스 줄 때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조건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불행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불행했습니다. 행복은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좋은 조건이 주어져도 절대 닿을 수 없는 무언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행복이라는 감정은 상대적이고, 조건적이고, 매우 흔들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어떤 불행한 일이 와도,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것이 기쁨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기뻐하라–감사하라”라고 명령하셨을까요?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의 근원으로 연결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상황을 뛰어넘고, 조건을 초월하고,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 안의 하나님이 근원이 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라.”
(로마서 14:17)
그래서 성경은 '행복하라'라고 말하는 대신 '기뻐하라'라고 말하며 기쁨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저는 아직 젊고 자유로운 대학생이었고, 판교 2층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었으며,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화목했음에도 불행함을 느끼고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내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하지 않아서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당시에 일주일에 하루도 행복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감사를 훈련하기 시작하자 일주일에 7일이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있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가 된 것입니다.
제가 감사를 '훈련'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감사를 단순히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적는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지속적으로, 이를테면 24시간한다고 생각하면서 해야 합니다. 저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이 감사를 정말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초등 임용고시는 1년 이상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격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제가 시험 볼 때 지금보다 훨씬 많이 뽑았음에도 떨어지는 사람들은 있었고, 탈락한 사람들은 다음 해에 재도전해야 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를 했습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4학년 학생들의 분위기는 암울합니다. 올해의 TO 전망 뉴스에 멘탈이 쉽게 나가기도 하고, 예민해지는 바람에 같이 스터디하는 친구와 싸우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잠재된 갈등들이 있습니다. 합격만 한다면 원하던 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희망으로 붙잡고 공부하는 것이지, 공부하는 기간 중에는 많은 공부량과 스트레스로 인해 행복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아주 작은 것에라도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밥을 잘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에게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서 감사하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감사하다', '나에게 형제 자매가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감사란 결국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하루 종일 시험 공부를 해야 하지만 이렇게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우리 학교 학식이 맛 없다고는 하지만 2000원에 이걸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등... 누군가에게는 정신 승리로 보일 수 있겠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관점을 좀만 달리하면 감사할 할 것들이 무한히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 감사가 저의 생각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계속 감사를 생각했습니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감사를 생각했고, 그걸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계속 감사를 말로 표현하니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감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함께 스터디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혼자 했으면 이렇게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셔서 감사해요." 감사를 생각만 했을 땐, 그 생각이 불완전하게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겨우 구름을 붙잡아두는 것처럼 저는 그 생각을 가까스로 움켜쥐었습니다. 그런데 감사를 말로 표현하면, 말은 결국 그 생각을 확증하게 되어 감사의 생각은 내 머릿속을 이제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결국은 지혜의 문제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고 문제거리를 찾아 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문제거리만 찾아내지 않고 희망과 감사를 보고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예전에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대유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 말이 언제 나왔냐는 듯 쏙 들어갔는데요. 우리나라의 인적 자원, 기술력, 지정학적 위치, 문화 컨텐츠 등이 현재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이를 이용해 어떤 사업이든 세계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하면 전혀 '헬'이 아니며, 여타 선진국과 비교해도 오히려 가진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 이런 우리나라를 '헬'이라고 여기면 그 사람에게는 정말 '헬조선'이 되고, '헬'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가진 것이 많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기회의 땅이 될 것입니다. 지혜를 통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감사할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어떤 절망 속에서라도 소망과 희망을 찾아내는 관점입니다.
행복은 조건에 따라 흔들리지만 기쁨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감사는 기쁨으로 가는 열쇠입니다. 저는 그래서 행복감도 물론 좋지만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기쁨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누르기 위해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고 기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명령하셨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며, 저는 실제로 그 삶을 경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