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디까지나 말뿐이었다. 내게 그런 인종차별, 인종주의(Racism)는 먼 세상 이야기였다.
직접 목격하기 전까지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 19')가 대륙을 불문하고 성행 중이다. 주변 CVS Pharmacy나 마트에서 마스크가 품절돼서 구하기 어려웠는데, 인턴 동기와 함께 발품을 팔아서 겨우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음에도 마스크는 곳곳에서 품절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선 정말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미국 질병관리센터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조차 공식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마스크를 쓰면 범죄자나 질병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간혹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대부분 아시아계다.
오른쪽은 CVS Pharmacy에서 구입한 마스크, 왼쪽은 아마존에서 주문한 지 2주 만에 수령한 일회용 마스크.
여하튼 샌프란시스코 파이낸셜 디스트릭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퇴근하고 나면, 세일즈포스타워 환승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내가 거주하는 샌프란시스코 트레저아일랜드라는 곳에는 백인, 흑인, 아시아인(특히 중국인, 한국인), 히스패닉, 아랍 등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퇴근길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날 버스에선 나 홀로 아시아인이었다.
그리고 그 버스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언급하며 중국인을 맹렬히 비난하는 흑인남성을 직접 목격했다(그때 그냥 대응을 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버스 맨 앞자리, 운전자 옆에 서서 이동하는 내내 중국인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며 각종 욕설을 섞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은 제각기 헤드폰을 꽂거나 무심하게 그를 쳐다볼 뿐, 별 대응을 하지 않았다.
듣는 내내 힘들었다. 매우 불편했다. 난 버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던 유일한 아시아계 남성이었다. 흑인남성이 F로 시작하는 워딩으로 중국인들을 반복해서 욕할 때마다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그 흑인남성과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들 역시 나를 중국인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욕설을 내뿜는 흑인남성을 보고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어느 미국의 버스 위에서 나는 유일한 아시아인이라는 외로움을 홀로 마주해야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은 계절성 독감으로만 이번 겨울 8천여 명이 사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미국 본토에서 사망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미국 사회를 집어 삼켰고, 기다렸다는 듯이 사회 곳곳에 내재돼 있던 인종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에 관해 나의 직장 상사, 그리고 중국인 인턴동기들과 다음날 얘기를 나눴다. 백인인 상사는 미국 곳곳에 Racism이 만연하다며, 이곳 캘리포니아는 그나마 덜한 수준이라고 했다. 중부 내륙이나, 도시가 아닌 지방으로 갈수록 더더욱 백인중심적인 사고가 만연하다고 했다.
미국에선 인종주의에 대한 차별의식이 공공연히 존재하지만,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보란듯이 그 불문율을 깨뜨리고 있는 모양새다.
뉴욕에서 아시아계 여성이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흑인남성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보도됐다. 뉴욕 인근 뉴저지주 크레스킬의 한 식당을 방문한 한국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출입금지를 당하기도 했다고.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나온 LA에서는 한 아시아계 중학생이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놀림을 받으며 얻어맞아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한편,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우한교민들을 전세기를 띄워 데려오고, 얼마 전 1차 교민들 모두 격리해제 되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는 뉴스도 접했다. 처음에 수용을 반대했던 아산, 진천 시민들도 따뜻하게 교민들을 맞이하고 배웅해줬다는 감동적인 소식도 들려왔다. 이번에 중국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일본 정부가 프린세스 크루즈호를 방치하는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대한민국. 단언컨대 의료선진국이다. 미국 ABC기자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촬영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인천공항 관계자들이 철저하게 방역을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우리에겐 당연한 건데,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타국 네티즌들도 댓글을 통해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식의 의견을 달았다. WHO에서는 한국이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모범사례라고 언급하며, 공조를 요청했고 우리 측 관계자들이 연구 공조를 위해 제네바로 향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살아보니, 이러한 인종주의를 목격하고, 해외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누군가 한국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잘 이겨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YES라고 하겠다. 그리고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우리도 국내에서 중국인들을 향해 막연하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진 않은지 되물어야 할 것 같다.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을 향해 분노의 화살이 몰리고 있는데, 댓글에서는 중국인들을 비하하는 용어와 함께 과격한 발언들이 난무하고 있다. 경계하자. 모든 인류는 동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