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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일기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고

서로서로 관심을 가지자

by 잔박

아내는 가끔 나의 교양에 놀란다. 이과 출신인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아느냐고 말이다. 사실 나는 매우 현학적인 사람이었어서, 대학생 시절 책을 무척이나 많이 읽었다. 철학, 사회과학, 인문학, 소설을 가리지 않고 읽었었다. 어떤 해에는 도서관에서 200권가량의 책을 빌렸다고 상을 받은 적도 있었으니, 이공계 대학생 치고는 정말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내가 그 책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이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공계 사람들은 교양을 갖추기 위해서 인문학을 익혀야 하지만, 인문학도들은 그러지 않는 것 같아서. 이런 생각도 대학원에 들어가고, 박사 후 연구원으로 살면서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가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는 책을 썼다고 하더라. 다행히 최근에 시간이 좀 생겨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어봤다. 책은 과학 이야기와 인문학 이야기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었다. 사실 과학 이야기는 과학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책을 비과학자가 썼다는 사실, 그리고 과학과 과학자의 이야기를 인문학과 결부 지어 풀어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이 책이 아무쪼록 인문학도들이 과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공계 대학생들도 이 책을 읽어볼 만한 것이, 넓은 분야에 대해서 인문학과 과학을 곁들여서 쓴 책이 이 책 말고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인문학도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업 과학자 입장에서 책에서 찾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몇 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27쪽에서 그는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실을 활용하지 않는 데서 인문학의 위기가 싹텄다고 본다"라고 적었고, 33쪽에서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을 우리 집과 우리 엄마의 진실을 밝혔다고 표현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필자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집과 엄마라는 비유는 이해하기 참 알맞다. 159쪽에서는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적었는데, 이 말은 필자가 예전부터 주변 사람에게 했던 말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 반가웠다. 166쪽에서는 "화학자들은 화학의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 화학자들이 화학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바빠서 교양서를 쓸 시간이 없고, 또 굳이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라고 했다. 정말 그러하다. 서점에 가서 어느 분야 교양서가 있는지 보면, 물리와 생물이 유난히 많다. 그리고 공학자들은 교양서를 많이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 줄 요약하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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