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에세이를 가장한 여행 논픽션
내가 두 번째로 읽는 “아무튼,◌◌” 시리즈이다. “아무튼”시리즈의 특징은 간결하며 호흡이 빠른 글로, 판형이 매우 작아 한 손에 쥐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도드라지는 도서이다. 이 책은 어쩌다 보니 최근에 갑자기 알게 된 ‘김병운’ 작가의 저서에서 찾은 가장 얇고 작은 책이기도 했기에, 나는 처음 만나는 작가의 글을 마주하기에 앞서 워밍업으로 그가 어떤 글을 쓰는지 눈여겨볼 요량으로 가장 쉬운 길을 먼저 택했다. (하지만 그의 주력상품은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다) 타이틀에 콕 하니 박힌 ‘방콕’을 바라보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당연히 방에 콕 박혀있는 의미의 ‘방콕’으로 생각했다. (정말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선입견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설마 이런 작은 책에서 여행 얘기를 한다고?? 예상조차 못했음에 분명하다) 때문에 작가가 초반에 미국서부를 향한 비행기 티켓을 돌연 취소하고 환불받았다길래 드디어 방에 콕 박혀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하나 보다 하고 기대할 정도였다.
나는 방콕에 가본 적이 없다. 당연히 방콕이 태국에 있는 도시 이름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다. 다만 나는 그곳이 휴양지로 각광받는 지역이며 또한, 많은 한국인들이 여름휴가로 가는 도시이며 (작가가 방콕 호텔의 수영장에서 만난 여럿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에피소드로 드러난다) 값이 싸고 즐길거리가 많은 장소라는 것에 애석하게도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는 근래에 대마초를 합법화하며 관광산업에 목을 매며 그로 인한 수많은 문제점을 감당해 내는 나라로 인상이 더 깊다. 작가는 애인과 함께 방콕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멋들어진 호텔과 맛있는 음식 소소한 에피소드를 풀었다. 미디어에서는 본인들이 부질없이 노는 자신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며 시청자들의 할 일 없는 눈동자를 소비시키는데, 작가들은 본인이 놀고먹는 글을 쓰면서 이렇게 한 권의 책도 냈다. 유희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은 작가의 갑작스러운 여행기에 (다시 한번 언급하면, 나는 이 책을 여행기로 집어 들지 않았다: 그랬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내 기분 또한 여행에 올라탄 가벼운 마음이 일었다. 작가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작가의 젊은 연륜이 가볍게 글에 녹아서 스르륵 읽히는 문장으로 문서화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그런 유희의 독서가 가끔은 기호로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요즘의 여름 날씨와 함께 딱 알맞은 한 권이 아닐까.
사실 이 책은 방콕이라는 장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은 작가와 작가 애인을 기념하기 위한 글이다. 그와 무엇을 했고 무엇을 추억하고, 무엇을 먹고 경험했는지가 모든 에피소드에 속속히 남아있어서 잔여물을 걷어내지 않으면 겉보기에 마치 시간흐름에 따른 여행일지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밑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건 분명하게 연애 이야기였다. 그럼 타이틀 자체를 변경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무튼, 연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