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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서본시인 Oct 17. 2024

오늘을 살고 먹는다.

나를 챙기는 도시락에서 오늘을 보낸 나를 느꼈다. 

오늘 하루를 살았다. 별로 특별한 일도 없는 하루였던 것 같은데 세세하게 되새기면 시간과 시간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내일이 되면 금세 잊힐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하루를 보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을 쓰기도 하고, 도움을 받은 고마움에 마음을 쓰기도 했다. 하루를 살며 먹고사는 게 참 힘들다 생각도 했다. 말 그대로 무엇을 먹고 살아간다는 말 가운데 먹는 행위 그 자체는 인간에게 참으로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함을 새삼 다시 생각해 본다.


잠이 예민한 나는 새벽녘 선잠으로 깨었다 잠들었다를 반복하며 늘 아침에 그렇듯이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뜬다. 가을이 깊어간 탓에 아직 어둑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흐리멍덩한 기분으로 잠자리를 무겁게 밀어낸다. 이른 시간임에도 늘어짐을 뒤로한 노력은 도시락 때문이다. 나에게 점심은 외근이 없으면 무조건 도시락이다. 외식하는 것이 어색해서 이직한 회사에서 도시락을 싸고 다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전 직장의 동료가 선물한 나무 도시락통에 항상 나는 밥을 서글서글하게 담는다. 이제는 그 나무 도시락통이 혈서로 맹세를 담은 조약처럼 느껴져 아침이 귀찮고 사 먹고 싶은 무기력이 몰아칠 때마다 스스로를 노려보게 만들어 준다. 

메뉴는 미리 만들어놓은 찬이 있으면 그것과 함께 밥만 메인으로 대충 조합해서 금세 담아내면 되지만, 마땅한 반찬이 없으면 볶음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기 적당하다. 오늘은 반찬이 따로 없어 볶음밥을 준비한다. 모든 요리는 귀한 아침 시간을 쪼개서 잘 활용해야 하기에 조리시간은 20분 내외로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거의 10분 내에 다 끝나지만 설거지랑 뒷정리까지 포함하면 그 정도는 소요된다) 우선 버거운 한통으로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는 양배추를 서걱서걱 썰어낸다. 어슷어슷하게 썰어낸 양배추 조각을 찬물에 후루룩 한번 닦아내고 움푹한 웍에 담아 올리브유를 적당하게 섞는다. 웍에 불을 올려 열기를 더하고 그 사이에 냉동실에 쓱쓱 썰어 얼려둔 대파를 휙하니 웍에 던져버리면서, 또 다른 냉동실 서랍에서 냉동 유부 세네 조각을 꺼내 가위로 길게 잘라서 그릇 한편에 놓아둔다. 유부를 처음부터 볶아내면 기름을 다 흡수해 버려 식감이 좋지 않아 조리 마지막 단계에 넣기 위해 한쪽으로 치워 둔다. 그 사이 냉장고에 미리 넣어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돌려 온기를 더해놓는다. 조금씩 볶아지는 양배추에 후리카케를 툭하니 던져 모양새를 정리하다가 데워진 밥을 더한다. 볶아진 밥과 양배추 그리고 대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굴소스를 조금 넣고 (유리병 안에 꾸덕한 액체가 담겨있어 거꾸로 잡아 밑면을 적당한 힘으로 적당히 밀지 않으면 늘 양 조절 실패로 짠맛을 경험하게 된다) 기분에 따라 간장이나, 소금을 더한다. 메뉴 레퍼토리는 앞에서 소개된 레시피와 거의 비슷하며 양배추가 없으면 계란이나, 김 혹은 미역 그리고 때에 따라 버섯으로 대체된다. 

밥 한 공기로 만든 볶음밥은 어느새 수북한 한 움큼이 되어 도시락을 넉넉하게 채운다. 보온 가방에 담아 오후의 든든함을 담아내면 비로소 뿌듯해지는 일과가 끝난다. 내게는 이제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자신의 끼니를 챙기는 행위가 어느새 당연하고도 귀찮은 과업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아침에 도시락을 준비한다. 대부분은 동료들은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거나, 외식을 한다. (직원식당이 없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매 끼니를 챙겨 오는 나를 신기하다며 한 마디씩 한다. 이처럼 스스로가 스스로의 양식을 챙기는 것이 특별한 행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너무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끼니를 채우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열면 각종 요리가 문 앞까지 전달되는 앱이 있고, 거리를 나가면 식당가가 줄지어 있으며 그것마저도 사치로 느껴지면 편의점이나 가까운 카페에서 식사를 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의 사회는 사람이 식생활을 위해 먹기 위한 요리는 이미 한 개인의 식사를 벗어난 지 오래되어, 그것은 식사 자체는 요식행위가 되고 음식의 유흥이나 트렌드가 더 중요한 시대로 변화했다. 한 시대에 속한 사람으로 꼭 먹어야 하며 올바르고 건강한 식습관이라는 이명아래 학습되거나 규칙이 되어버린 것 같은 식단에 누군가는 맹목적으로 쫓으며 보편화된 정의에 대한 가르침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한다. 그 사이에 발생하는 타인에 대한 비교와 잣대는 불가피한 선택지로 꼬리를 물며 대중화되지 않은 기호에 비난과 배제가 당연하게 동반됨을 묵인한 채로. 


누가 돈 주고 사 먹지도 않을 점심밥을 묵묵하게 입으로 옮겨 넣는다. 유행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가장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메뉴는 주목을 받을 만한 먹을거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침을 할애해서 꾹꾹 담아낸 마음가짐이 한 움큼 느껴지는 이유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나를 챙기면서 하루를 보냈다는 스스로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해서 그런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잘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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