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리를 비워두는 일

by 꿈에서본시인

최근에 세 번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일주일 간격으로 이어진 부고 소식은 이상하게도 나를 현실로부터 조금 밀어냈다. 세 사람 모두 나와 직접적인 인연이 있는 건 아니었다. 친구의 아버지, 동료의 부모, 지인의 할아버지. 각자의 삶이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살다, 어떤 날 같은 시간 안에서 한꺼번에 멈춰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너무도 단순한 문장을 그제야 실감했다. 일상에 너무 깊이 파묻혀 살아오느라, 나는 죽음을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불쑥 들려오는 부고 소식은 늘 나를 낯설게 한다. 죽음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슬픔은 쉬쉬해야 하는 감정이 되었고, 그만큼 쓸쓸해졌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빈소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조문객보다 상복 입은 이들이 더 많았고, 그들의 움직임은 하나같이 조심스러웠다. 누군가는 상주를 대신해 손님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밥상을 차리며 분주히 움직였다. 차려진 음식은 조금 식어 있었고, 밥은 덜 익은 듯 굳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주머니들은 연신 미소를 지으며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셨다. 그 말속엔 슬픔을 덜어내려는 정성과, 예의로 채워야 하는 공백이 섞여 있었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숟가락을 들었다. 조용히 밥을 떠먹는 행위가 그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이상한 의무감 때문이었다.
밥알 하나하나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나는 이 자리에 왜 와 있는지 계속 되물었다. 죽음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애써 무언가를 말해보려 했지만, 적절한 언어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부재를 마주한 자리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더 정확한 감정이 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상주인 동료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평소와 달리 수척한 얼굴이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웃음을 띠려 애쓰는 표정은 차라리 눈물보다 아팠다.
“와줘서 고마워요.”
짧은 인사였지만, 그 말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내가 울컥했다. 위로를 전하러 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가 얼마나 긴 밤을 버텼을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삼켰을지 생각하니, 함부로 다독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일로, 마음을 건넸다.

문상객이 빠져나가고 잠시 적막이 흐르는 틈에, 유가족은 의자에 앉아 손을 모았다. 상 위에 놓인 국화 몇 송이와 향 냄새가 공기 중에 길게 퍼졌다. 누군가의 생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하나의 냄새로 남는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섬뜩하게 다가왔다. 죽음은 늘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향 냄새처럼 그저 우리의 일상 사이를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뒤 또 다른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동료의 아버지였다. 장례식장마다 구조는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누군가는 울음을 참고 있었고, 누군가는 담담하게 식사를 나눴다. 어떤 빈소에는 슬픔이 흘러넘쳤고, 또 어떤 곳에는 이미 모든 감정이 마른 듯했다. 사람마다 슬픔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배웠다. 죽음이 공평하다는 말은 틀렸다. 그 무게는 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그 감당의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나는 유가족 옆에서 절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시끄러운 조문객들의 대화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렸다. 누군가는 직장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골프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순간 이질적으로 들렸지만, 곧 이해가 갔다. 사람은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은 죽음 앞에서도 흘러야 하니까. 그것이 살아 있는 자의 본능이자 의무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검은 옷의 소매 끝에 남은 향 냄새가 따라왔다. 세 번의 장례식을 연달아 다녀오고 나니,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삶과 죽음은 결국 같은 길 위에 있다. 우리가 걷는 모든 발자국 끝에는 언젠가 사라지는 자리가 남는다. 하지만 그 자리를 누군가가 다시 채우고, 기억하고, 말없이 붙잡는다. 그게 남은 자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자리를 비워두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떠날 자리를, 언젠가 내가 떠날 자리를. 그 빈자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죽음과 닮아간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하루를 시작한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평소처럼 차를 내리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죽음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조금씩 비워내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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